자금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제약·바이오 기업공개(IPO) 시장의 한파가 이어지고 있다.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매출 가시화가 빠른 인공지능(AI)의료기기·헬스케어 소프트웨어 기업 위주로 상장이 이뤄지고 있다. 반면 단기간에 매출을 낼 수 없는 신약개발 기업들은 IPO를 철회하거나 공모가를 크게 밑돌면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공모주 시장의 한파로 상장을 철회하는 제약·바이오 기업이 늘고 있다. 바이오 IPO ‘대어’로 꼽힌 오름테라퓨틱은 이번 달 예정된 코스닥 상장을 내년으로 미뤘다. 오름테라퓨틱은 분해제항체 접합체(DAC) 플랫폼을 활용해 신약 후보물질을 연구하는 기업이다. 지난해 11월 브리스톨마이어스큅(BMS), 올해 7월 미국 버텍스 파마슈티컬과 기술수출 계약을 잇따라 체결하며 주목 받았다. 하지만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서 기대 이하의 결과를 받으며 상장철회를 선택했다.
IPO 기대주로 꼽힌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연내 상장 예정인 AI 신약개발 기업 온코크로스와 국산 37호 신약 ‘자큐보’를 보유한 제일약품(271980)의 신약개발 자회사 온코닉테라퓨틱스는 모두 희망 공모가 범위 하단보다 낮은 공모가를 확정했다. 방사성의약품 개발 기업인 듀켐바이오도 희망 범위 하단보다 34.9% 낮은 8000원으로 공모가를 확정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제약·바이오 업계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 코스닥 시가총액 1위 알테오젠(196170)을 필두로 리가켐바이오(141080), HLB(028300) 등 바이오 종목의 강세가 두드러졌지만 신약개발 기업들은 IPO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기술특례상장사 중 신약개발기업은 비만치료제를 보유한 디앤디파마텍(347850), 줄기세포치료제를 개발하는 이엔셀(456070) 등 뿐이다. 기술특례상장은 성장성·기술력은 있지만 당장 이익을 못 내는 기업들의 IPO 문턱을 낮춘 제도다. 뚜렷한 수익원 없이 막대한 신약개발 자금이 필요한 바이오 기업의 주된 IPO 통로로 꼽힌다.
김명기 LSK인베스트먼트 대표는 “현재 상장한 신약개발사들 대부분 시총 1000억 원이 안 되는 상황에서 신규 상장하는 회사들이 공모가를 높게 받기는 어렵다”며 “거래소가 미래 불확실성 때문에 신약개발 기업들을 보수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반면 AI의료기기·소프트웨어·바이오소재 등 확실한 매출 기반이 있는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성공적인 IPO를 거쳐 시장에서도 주목 받고 있다. AI 희귀질환 진단 기업 쓰리빌리언(394800), 생체 현미경 등 세포 이미징 장비·분석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토모큐브(475960)가 대표적이다. 엑셀세라퓨틱스(373110)는 세포 배지, 엠에프씨는 원료의약품 제조를 전문 분야로 내세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신약개발사들은 기술수출·계약금 규모 등에 따라 주가가 움직이는데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의료기기 등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는 매출이 숫자로 당장 눈에 보이는 점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창원 쓰리빌리언 대표는 “기술성 평가에서 성장 가능성이 매출로 증명 되는지를 엄밀하게 보는 것 같다”며 “서류를 보완할 때 매출 성장 계획·고객 베이스 등을 구체적으로 제출했다”고 말했다. 쓰리빌리언은 2022년 거래소 상장심사 문턱에서 자진 철회했다가 2년 만에 재도전해 지난달 코스닥에 입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