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연간 근로시간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권이다. 1주 근로시간이 1953년 48시간에서 1989년 44시간, 2003년 40시간으로 순차 단축됐다. 2018년 연장근로를 포함한 1주 간 최대 근로시간이 52시간이 되는 등 법정 근로시간은 줄어들고 있지만, 실제 일하는 ‘실근로시간’은 관행과 조직문화의 영향으로 여전히 국제기준보다 길다. 실근로시간 단축은 초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본격화되는 시대적 요구이자, 생산성을 높이고 인재를 유지하기 위한 기업의 생존 전략이 된다.
실근로시간 단축은 현행 근로기준법상 제도를 충분히 활용하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먼저 연차휴가 사용 확대를 통하여 연차휴가 소진률을 제고하는 것이다. 휴가를 돈으로 보상 받는 것이 아니라, 휴가의 본질에 맞게 휴식을 취함으로써 실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연차휴가 취득요건 완화와 근속연수에 따른 연차일수 확대, 연차휴가 사용촉진제도의 개선 및 연차휴가 청구나 사용을 이유로 하는 불리한 처우 금지 등을 근로기준법에 명문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하였다. 또 업무의 특성과 근무 형태에 따라 근로기준법상 선택적 근로시간제나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같은 유연근무제를 적절히 활용하여 근무시간을 재조정하고, 이를 통해 실근로시간 단축을 도모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근로시간 ‘단축’ 그 자체가 아니라 효율성을 높이는 업무 방식과 조직문화의 ‘개선’이다.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밀도 있게 일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보고 절차 간소화, 회의 시간 제한, 반복 업무의 자동화 등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부터 시도할 수 있고, 작은 변화가 모이면 유의미한 생산성 향상을 만들어낸다. 인공지능(AI) 등 기술의 활용을 통한 업무의 자동화·전문화도 좋은 방안이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오래 앉아 있으면 일을 잘하고 늦게까지 남아 있는 직원이 성실하다는 인식이 있고, 이러한 인식은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성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불안을 야기한다. 산업의 특성에 따라서는 장시간 근로가 효율적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장시간 근로는 오히려 생산성과 혁신을 저해한다는 보고가 많다. 조직 전체의 인식 전환에 더하여, 일한 시간이 아닌 성과 중심의 관리와 평가체계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실근로시간 단축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오래 일하는 방식은 시대적 트렌드에 맞지 않고, 인재 확보나 지속적인 성과 창출을 기대하기 어렵다. 실근로시간 단축을 ‘규제’가 아니라 업무 ‘혁신’의 기회로 바라보는 기업만이 새로운 경쟁 환경에서 앞서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