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고환율 막겠다고 해외송금 제한, 과도한 관치 아닌가

8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8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고환율 방어를 위해 국민연금을 소방수로 동원한 데 이어 무증빙 해외송금 한도를 연간 총 10만 달러로 제한하기로 해 논란이 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8일 은행·비은행권으로 나뉘어 있는 무증빙 해외송금 한도를 통합하고 이를 모니터링할 ‘해외송금 통합 관리 시스템(ORIS)’을 내년 1월부터 본격 가동한다고 밝혔다. 현재 무증빙 해외송금 한도는 은행은 연간 10만 달러, 증권사·카드사·핀테크 등 비은행권 금융기관은 연간 5만 달러다. 다만 비은행권 금융기관은 관련 시스템이 없어 ‘쪼개기’로 무증빙 해외송금하는 사례가 빈번했던 만큼 앞으로는 모든 금융기관의 송금액을 합쳐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모든 금융권에 통합 시스템을 깔고 외환시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취지는 공감할 수 있다. 문제는 정부의 드러난 명분의 이면에 달러 수요를 억지로 눌러 환율을 방어하겠다는 얕은 속내가 보인다는 점이다. 해외 주식 투자를 위한 자금이나 유학생 자녀의 학비, 생활비까지 총량으로 규제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최근 정부가 고환율의 원인을 서학개미의 탓으로 돌리거나 국민연금의 외환시장 개입을 종용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 조치는 과도한 관치라는 비판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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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은 1%대 저성장이 고착화하는 데다 국내 증시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의 확장 재정으로 대규모 유동성이 풀린 탓도 있다. 근본 원인을 방치한 채 현상만 통제하는 것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주고 정책 신뢰를 떨어뜨릴 뿐이다. 한국은행이 내년부터 시중통화량(M2) 통계에서 수익증권 등 각종 금융 상품을 제외하도록 방침을 정한 것도 옳지 않다. ‘돈을 풀어 환율을 자극했다’는 비판을 통계 변경으로 회피하려는 꼼수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고환율을 막겠다고 국민의 해외송금을 틀어막는 것은 개방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서학개미를 고환율의 주범으로 매도하는 행태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과감한 노동·교육·연금·금융 등 구조 개혁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매진할 때다. 누구나 한국 시장을 믿고 투자할 수 있게 되면 고환율 문제도 자연히 해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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