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 은행회관 8층 집무실에서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장을 만났다. 한국금융연구원은 100% 은행이 출자했지만 출범 당시 재무부가 관여해 만들어졌다. 사실상 준정부출연기관에 가깝다. 그런 만큼 새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경제 금융 정책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 원장에게 국내 금융 산업 현안과 경제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하제헌 기자 azzuru@hk.co.kr
사진 윤관식 기자 newface1003@naver.com
정부가 내건 창조경제를 지원하기 위해 창조금융연구센터를 만들었다. 창조금융연구센터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창조경제가 찐빵이라고 한다면 창조금융은 앙꼬(팥소)라고 할 수 있다. 창조경제는 그동안 해오지않았던 분야를 개척하자는 것이다. 당연히 돈이 들어가야 한다. 투자가 되어야 연구개발이나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 창조금융연구센터는 창조경제에 쓸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고 어디로 집행할지 연구한다. 창조경제가 장기적인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자금 조달, 집행, 지원 형식 등 많은 이슈를 다룬다. 금융 역시 창조경제의 대상이다. 금융이 새로운 상품, 새로운 기술을 접목할 수 없을까 고민하는 것 역시 창조금융연구센터가 할 일이다.
국내 금융기관 글로벌화가 취약하다. 메가뱅크는 탁상공론으로 끝날 것인가.
메가뱅크가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이는 것 같다. 시중에서는 메가뱅크를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우리나라 은행들의 자산규모는 300조 원 규모로 대략 전 세계 70위권 정도 된다. 10위권 경제를 가진 나라의 은행이 70위권이라는 건 너무 균형이 맞지 않는다. 70위권 은행 두 개를 합치면 30위권 정도 된다. 여전히 10위권 경제에 비하면 작다. 30위권 은행 하나가 생기는 것을 가지고 메가뱅크라고 하는데, 나는 농담 삼아 ‘그럼 다른 글로벌 은행은 기가뱅크냐’고 묻곤 한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메가뱅크는 기가뱅크보다 훨씬 작다. 두려워할 존재가 아니다. 다만 무리하게 메가뱅크를 하자는건 아니다. 부드럽게 흐름을 타가면서 만들어야 한다.
메가뱅크에 대한 두려움은 왜 생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금융이 위기의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느냐는 거다. 은행이 커지면서 합병하는 데 대한 거부감이 생겼다. 그래서 ‘금융이 실물을 지원하면서 천천히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화 되어 있는 것 같다. 사실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보완을 하면 된다. 독과점 문제가 증대하면 그걸 좀 줄여줄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은행 자본금이 커지면 이제까지 못하던 것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글로벌화 행보에 여유가 생긴다. 밖으로 진출할 때 훨씬 수월해진다. 70위권 은행이 못하던 것을 30위권 은행은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생길 수 있다. 이런 것도 감안해서 봐야지, ‘커진 은행이 두렵다. 그래서 안 한다’같은 식이면 너무 아쉽다는 거다. 문제점만 보지 말고 긍정적인 측면을 함께 보자는 얘기다. 허심탄회한 접근이 중요하다.
국내 금융산업이 저성장, 저금리, 저수익에 빠져들고 있다. 국내 금융산업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해야 하나.
금융이 잘못해서가 아니다.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한풀 꺾였기 때문이다. 어려워진 실물이 금융에 반영돼서 저성장이 나타나고, 금리는 성장률에 연동이 되기 때문에 당연히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은행들은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역시 해외를 통해서다. 일본 빅3 은행(미쓰비시UFJ은행, 스미토모미쓰이파이낸셜그룹, 미즈호 파이낸셜그룹)의 자본금을 합친 액수가 우리나라 전체 은행 자본금의 4배 정도 규모다. 3곳 모두 합병을 통해 ‘기가뱅크’가 되었다. 이들은 유럽계 은행이 떠난 자리를 치고 들어가 무역금융을 장악하고 있다. 지금 돈을 많이 벌고 있다. 심지어 항공사를 대상으로 항공기 리스 사업도 한다.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전통적 분야 사업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지금 4대 지주회사로 가다가 머뭇거리는 상황인데, 큰 은행을 만들어 밖으로 나가면 성공할 것이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봐야 한다. 금리가 낮아져서 국내 은행들의 예대마진이 너무 줄었다. 올해 1분기 국내 은행들의 순이익은 1조8,000억 원이었다. 작년 1분기에는 3조 3,000억 원이었다. 대략 반토막이다. 충격적인 성적이다. 금융이 가라앉고 있는 느낌이다. 금융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논의가 나와야 하는 시점이다.
최근 일본 국채를 둘러싸고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부작용 문제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만약 아베노믹스가 실패해 일본 재정위기로 연결되면 우리나라는 도매금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지금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일본계 자본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때 우리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아베노믹스가 잘돼도 우리에게 힘들고, 안돼도 나빠지게 생겼다. 일본은 아베노믹스로 2년 내 2%까지 인플레율을 올리겠다고 말한다. 인플레율이 높아지면 금리도 높아진다. 그런데 아베노믹스가 추구하는 건 단기금리는 높아지더라도 장기 채권금리는 낮게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채권을 사들여서 채권금리는 낮추고 단기금리만 올리겠다는 건데 그건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최근 주가 하락이 일어난 건 결국 시장이 이런 메커니즘을 못 믿겠다는 신호가 나타난 것이다. 단기금리가 올라가는데 어떻게 장기금리가 내려갈 수 있나. 일본 국채가치가 떨어지면 일본 국채를 들고 있는 기관은 당연히 금융 손실을 입는다. 또 일본 국채를 새로 발행할 때는 금리를 높여야 한다. 새로 발행되는 채권 금리가 높아지면 재정압박이 온다. 이미 발행된 채권 평가가치가 떨어지면 금융 압박이 오게 된다. 그래서 겁난다고 일본 채권을 팔아 치우는 거다. 주가도 떨어지고….
아베노믹스가 전개되는 양상을 보면 처음엔 조금 반짝 하다가 지금 주춤하는 상황이다. 아베노믹스는 벌써 성장 촉진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만약 현 일본 집권당이 7월 선거에서 이긴다면 일본은 계속 아베노믹스를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다. 마음껏 돈을 찍기도 어렵고, 마음껏 재정지출을 확대할 수도 없고, 성장전략이 효과를 내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결국 제한적 성공 정도가 최대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금융연구원에서 JP모건 동경지점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초빙해 세미나를 했는데 그가 이런 의견을 내놨다. ‘2년 내 2% 인플레 인상은 절대 안될 것이다. 일본 임금 수준이 너무 낮아서다. 임금이 오르지 않으면 인플레를 인상할 수 없다. 월급이 올라가야 하는데 일본 노동자 중 비정규직, 시간제 근로자가 40% 가까이 차지한다. 급여가 오르지 않아서 물가가 안 오르는 거다.’ 2% 인플레 인상은 간단치 않은 일이다. 우리 수출 기업들은 일단 버텨봐야 한다. 경쟁력을 강화한다거나 환 헷지를 한다거나 하는 개별기업들의 노력밖에 대응책이 없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경기부양을 위해 앞으로 추가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미국이 출구전략을 생각하고 있어 상황이 변하고 있다. 미국이 출구전략에 나서면 우리는 금리를 낮추고 돈을 찍어낼 수 없다. 미국 출구전략이 어느정도 가시화 되는가가 변수다. 우리 입장에서는 복잡하다. 당분간 기준금리가 이 상태에서 고정될 공산이 크다. 엔저는 기준금리 인하요인, 미국 출구전략은 인상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간에서 고착상태로 한동안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미국 출구전략의 시작이 이르면 9월이라는 얘기도 있고, 아니면 연말일 거라는 얘기도 있다. 어떻게 될지 두고 봐야 한다. 우리 내부적으로만 보면 경기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더 떨어트릴 여지가 있지만 유럽도 봐야 하고 미국, 일본도 다 봐야 한다. 모니터링 하면서 한 타임 늦게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국내 실질 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계속 하락하면서 저성장 우려가 커졌다. 윤 원장의 경기바닥론에 대한 견해가 궁금하다.
해외 요인이 너무나 중요해졌다. 우리 내부 사정만 보고 바닥을 쳤다 안 쳤다 말할 수 없는 시대다. 현재로서는 일본이 조금 나아지고 있는 상황이고, 중국이 7.7% 중반, 미국이 2% 정도 경제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이제 최악을 벗어났다고는 볼 수 있는데, 문제는 힘차게 올라갈 것인가, 아니면 맥없이 올라갈 것인가이다. 바닥을 친 건지 아닌 건지 헷갈릴 정도로 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닥을 쳤지만 느낌이 바로 오지 않는, 예전처럼 확실한 회복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미국이 재정악화 돌파구로 조세피난처를 통한 역외 탈세 적발을 강화하고 있다. 조세피난처 규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조세피난처인 나라들은 과거 식민지 섬나라들이다. 먹고 살 방법 차원에서 만들어낸 게 조세피난처다. 글로벌 은행들이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절세 방안으로 조세피난처 이용을 제안하기도 했다. 비즈니스에서도 캐쥬얼하게 이용됐다. 거기에 5조 달러가 들어가 있다고 하니 많은 액수이기는 하다. 경제가 좋았을 땐 그 정도는 봐주곤 했지만 이제 재정위기가 오니까 분위기가 달라진 거다. 우리나라는 원화를 달러로 바꿔야 하기 때문에 조세피난처에 들어가 있는 규모가 크지는 않다. 전 세계가 제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실 그동안 눈감아 왔던 부분도 있었다. 이제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니까 칼을 뽑은 거다. 올 게 온 거다.
개인적인 질문이다. 물리학을 전공하다가 경제학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경제학과로 학사편입했다. 데모가 극심하던 시대에 학교를 다녔는데 대자보에 경제학적 개념이 많이 쓰여 있었다. 내용은 좌파적인 관점에서 논하고 있었지만 눈에 띄었다. 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화두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매력을 느꼈다. 이후 시카고에서 공부하면서 중도 보수적 학문 성향을 갖게 되었다.
윤창현 원장은…
▲1960년 충북 청주 ▲1979년 대전고 ▲1984년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1986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93년 미 시카고대 경제학박사 ▲1993~1994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1995~2005년 명지대 경영 무역학부 교수 ▲2005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2012년~ 한국금융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