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는 첨단기술 제국

EMPIRE OF TECH

밥 아이거 Bob Iger는 디즈니 CEO로 재임했던 지난 10년 동안, 최고기술책임자 역할을 상당 부분 함께 수행했다. 그 결과 루카스필름 Lucasfilm과 픽사 Pixar, 마블 Marvel, ESPN 같은 멋진 혁신을 성공시키며 ‘디즈니 은하계’를 창조할 수 있었다.
by Michal Lev-Ram


캐주얼한 회색 스웨터를 입었는데도, 밥 아이거(63)는 어딘가 기계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입 모양은 자로 잰 듯 일자에 가까웠다. 얼굴은 차가운 합금으로 만든 듯했으며 머리 모양도 물론 완벽했다. 깜박이는 작은 불빛으로 장식된 중절모와 붉은색 테의 3D 안경을 쓰고도 전혀 신 나 보이지 않는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우리는 캘리포니아 주 버뱅크 Burbank에 위치한 아이거의 사무실 인근, 디즈니 이매지니어링 Imagineering 연구소를 방문 중이었다. 아이거는 연구소 내 가상현실 체험 공간인 디시 Dish로 들어갔다. 창문이 없고 곡면 벽으로 이뤄진 방이었다.곧, 아이거의 주변이 숲으로 변했다. 하나하나가 픽셀 수백만 개로 구성된, 만화적인 느낌의 울창한 녹색 나무와 밝은색 꽃들이 벽 위에 떠 있었다. 아이거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눈앞에 있는 가상의 나무 한 그루에 기대려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가장자리에 나란히 서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아이거가 이끄는 경영진의 일원들과 가상의 숲을 창조해낸 기술자들이었다-이 안도의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거는 즐거워하고 있었다.


디시는 기본적으로 교통수단 등 각종 미래 체험을 위한 시험장이다. 이곳에서 디즈니 테마파크가 개발 중인 최첨단 기술을 소개하는 2시간짜리 투어가 시작된다. 월트 디즈니 사의 CEO로서 아이거는 이매지니어링 연구소를 자주 찾아왔었지만, 이날 방문은 여느 때와 조금 달랐다. 1년에 한 번 화학공학자, 소프트웨어 개발자, 로봇 연구자 들이 이곳의 연구 부서-디즈니의 5개 연구부서 중 하나이다-에 모여 각자 가장 과감한(운이 좋다면 상품성도 갖춘) 아이디어를 공식적으로 CEO에게 소개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약 929㎡ 넓이의 디시에는 최신 그래픽 및 오디오 장비가 최근 새롭게 설치되어 투어의 출발점으로 삼기에 적당했다. 가상 숲을 만들어 낸 초고속 컴퓨터 네트워크는 초당 60회씩 3D 이미지를 업데이트해, 아이거가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눈앞의 장면이 바뀌었다. 동시에 고해상도 프로젝터가 높이 약 4.3미터의 벽면에 수백만 픽셀로 이뤄진 빔을 쏘았다. 대부분의 가상현실 체험실 벽 모서리는 각이 졌지만, 디시의 벽 모서리는 둥글게 처리되어 있어 더욱 몰입감을 높여 주었다. 이 3D 기술은 플로리다의 디즈니 월드(Walt Disney World Resort) 같은 곳에 설치되기에는 아직 비용이 지나치게 높은 데다 운영상의 난점도 많다(한 번에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는 놀이시설이라면 대기열이 얼마나 길어지겠는가). 하지만 언젠가는 근처 놀이공원에 가상 숲이 등장하는 날이 올 것이다.

물과 전등으로 푸른 하늘을 재현하는 실험처럼, 디즈니는 언제나 사실적인 영상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1937년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를 제작할 땐 배경에 시각적 깊이를 더하기 위해 멀티플레인 카메라 multiplane camera를 도입했다. 1963년에는 디즈니랜드 ‘마법의 티키 룸(Enchanted Tiki Room)’에 전기로 작동하는 지저귀는 새들을 설치해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로봇 분야의 선구자가 되기도 했다. 창업자 월트 디즈니가 60여 년 전 혁신 담당 부서로 이매지니어링을 처음 만들었을 때만 해도 가상현실 체험관은 말하는 동물만큼이나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상현실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술과 엔터테인먼트가 간헐적인 제휴를 넘어 서로 떼놓을 수 없는 관계로 변해왔다(물론 이에 대한 논쟁도 때론 있었다). 넷플릭스 Netflix부터 유튜브까지, 현대 소비자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즐기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모바일과 인터넷의 인기는 점점 높아져만 가고, 아마존 프라임 Amazon Prime이나 구글 익스프레스 Google Express처럼 주문한 제품을 빠르게 받을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그 결과 소비자는 이제 롤러코스터를 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도 시간 낭비로 여기게 됐다.

이런 추세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아이거는 여러 최신 기술에 대규모 조기 투자를 단행했다. 이런 모습은 때때로 디즈니의 비즈니스 모델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이거는 2005년 CEO에 취임했다. 그가 최초로 내린 지시 중에는 ABC(디즈니 산하 방송사)의 인기 드라마인 ‘로스트’와 ‘위기의 주부들’을 아이튠스에 올리라는 내용도 있었다. 당시로선 전례가 없는 결정이었다. 이듬해에는 인터넷에 TV 프로그램 전편을 무료로 제공해 또 한 번 새로운 장을 열었다(디즈니는 ABC 외에도 ESPN, 픽사, 마블 엔터테인먼트, 루카스필름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디즈니월드에서 사용 중인 RFID 칩내장 손목 밴드, 인터랙티브 모바일 앱, 영화 촬영용 드론 등 수많은 기술에도 투자하고 있다.

사실 디즈니의 주요 성공작 중 창조적인 신기술을 통해 탄생하거나 재탄생하지 않은 것을 찾기란 쉽지 않다. 2013년을 휩쓴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경우, 애니메이터들은 눈보라 속에서 흔들리며 빠른 속도로 굴러가는 스노우볼에서 눈 입자가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먼저 수천 개의 눈 입자 모양을 만든 후 각각의 눈 입자를 서로 결합시키는 방식의 알고리즘을 적용했다. 그 결과 ‘겨울왕국’ 속 겨울 장면은 매우 실감 나게 묘사되었다. “콘텐츠와 기술, 그중 한쪽에 집중하는 회사는 많이 있다. 하지만 디즈니만큼 두 가지 모두에 집중하는 회사는 드물다고 생각한다.” 2010년부터 디즈니 이사회에 참여한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 Sheryl Sandberg의 말이다.

아이거의 주변은 콘텐츠와 기술 양쪽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아이거는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두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결심은 의도적이었다. 실제로 현재 디즈니에서 가장 CTO 역할에 근접한 인물은 바로 아이거 자신이다. 지난 10년 동안 보여준 그의 경영 행보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 가운데 한 가지가 바로 이 지점이다. 이젠 미디어 기업이 기술 기업의 사고방식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미디어 기업 CEO도 CTO의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디즈니에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지난해 11월 디즈니는 2013년보다 8% 성장한 연 매출 488억 달러를 올려 4년 연속 매출 신기록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아이거가 이끄는 디즈니의 총주주수익률(TSR)은 S&P 500대 기업 평균인 104%를 훌쩍 뛰어넘는 341%를 기록했다.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브랜드들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 2009년 디즈니가 인수한 마블 엔터테인먼트는 2014년 영화계의 최대 흥행작 다섯편 중 두 편을 배출했으며,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대 흥행작인 ‘겨울왕국’도 여전히 엄청난 수익을 안겨주고 있다.

놀이공원 입장부터 기념품 판매까지 다양한 기능을 갖춘 RFID 칩 내장 손목밴드 ‘매직밴드 MagicBand’에 투자한 효과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매직밴드를 찬 방문객의 평균 소비 금액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높은 상황이다(디즈니는 구체적인 액수는 밝히지 않고 있다).

아이거의 모든 투자가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다. 디즈니의 게임 사업부가 적자를 탈출하기까지는 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아이거의 성과에 만족한 디즈니 이사회는 지난해 10월, 2016년 만료 예정이었던 아이거와의 계약을 2018년까지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결과 아이거는 자신이 주도한 최대 투자 프로젝트 중 하나의 성공 여부를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2012년 루카스필름을 인수한 이후 첫 스타워즈 영화인 ‘깨어난 포스(The Force Awakens)’가 올해 말 개봉될 예정이다.

그때까지 아이거에겐 후계자 선정, 기업구조 개편(소비자 제품 부문이 인터랙티브 게임 부문을 흡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 같은 할 일이 밀레니엄 팰컨 Millennium Falcon *역주: ‘스타 워즈’에 등장하는 우주선 만큼이나 산적해 있다. 또 올해 안에 중국 내 첫 디즈니 테마파크를 개장할 예정이다. 55억 달러가 투자된 이 프로젝트는 세계 시장을 상대로 아이거의 경영 능력을 검증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아이튠스를 발 빠르게 활용해왔지만, 아이거는 아직 ESPN 생중계와 개봉영화 신작을 망라하는 다양한 콘텐츠의 최적 디지털 유통 방식이 무엇인지는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기술에서 변하지 않는 건 단 하나,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미디어·엔터테인먼트 대기업의 성공은 이제 과거 어느 때보다도 어떤 플랫폼, 어떤 기기에, 언제 승부수를 띄우느냐에 달려 있다.

아이거와의 첫 만남은 지난해 10월 말 어느 아침에 이뤄졌다. 그는 사무실 책상에 기대선 채 노트북에서 재생되는 영상 중계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손에는 화면이 꺼진 아이패드가 들려 있었다. 사무실에 설치된 대형 TV 스크린에서는 굿모닝 아메리카 Good Morning America *역주: ABC의 유명 아침 뉴스 프로그램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이거는 그때 “멀티태스킹 중”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지난 1974년 뉴욕 ABC 방송사 기상캐스터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현재 직원 18만 명을 거느린 세계 최대 미디어 기업의 수장이다. 새벽 4시 반부터 운동을 한다는 것과 칼 같은 시간 엄수로도 유명하다. 이 기사를 위해 인터뷰에 응한 수십 명의 디즈니 내부 관계자 및 전 직원 들은 아이거를 “업무에 관여하면서도 자율권을 주는 리더”라고 평가했다.

그가 선임되기 전, 최소한 외부에선 아이거를 차기 디즈니 CEO 1순위라 생각하지 않았다. 전임자 마이클 아이스너 Michael Eisner는 80년대 휘청거리던 디즈니를 살린 일등공신이었지만, 공개적으로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사내의 주요 인물들과 불화를 빚어 비난을 받기도 했다. 로이 E. 디즈니 Roy E. Disney(두 명의 디즈니 창업자에겐 아들이자 조카이다)와 주주를 포함한 전직 이사회 멤버들과 아이스너 간의 갈등, 적대적 인수 시도 등으로 디즈니는 한동안 홍역을 치렀다. 그 후 2005년 초, 아이스너는 사임을 발표했다. 임기 만료 1년 전이었다. 이사회는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 조용히 후임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때 외부 후보 몇 명과 함께 딱 한 명 내부 후보로 떠오른 인물이 아이거였다. 당시 COO였던 만큼 CEO 후보로 자연스레 꼽힐 만했지만, 아이거는 이사회의 마음을 얻기 위해 디즈니의 변화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이후 몇 달 간 설명해야 했다.

창조적 콘텐츠에 대한 투자, 세계시장 진출 확대, 기술적 혁신이라는 3개의 ‘기둥’이 그가 제시한 전략의 핵심이었다. 이사회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2005년 10월 아이거는 CEO에 취임했다. 그리고 버뱅크 시내 팀 디즈니 Team Disney 빌딩-총면적이 20만㎡가 넘는 영화 촬영소 내에 위치해 있다-6층에 있는 널찍한 스위트룸형 집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취임 직후, 그는 일련의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다. 전략계획 부서에 집중됐던 정책결정권을 각 사업부에 나눠준 것도 그중 하나였다. 한 CTO에게 전체 사업부 관리를 도맡기는 대신, 사업부별로 한 명씩 따로 선임했다. 궁극적으론 자신이 회사 전체의 기술 부문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아이거는 이에 대해 “각 사업 부문이 더러 실패하더라도 본사에서 파견한 감시자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계속 실험하고 도전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디즈니의 각 사업부 CTO들은 정보 공유와 현안을 토의하기 위해 몇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회의 장소는 코네티컷 주 브리스톨 Bristol의 ESPN본사, 시애틀의 디즈니 개발 센터 등 다양하다. 최근 몇 년간 CTO 협의회는 일종의 개발자 경연대회인 해커톤hackathon을 열었고, 베스트 오브 디즈니 Best of Disney라는 연례 심포지엄을 개최해 전 직원에게 50가지 새로운 혁신을 소개하기도 했다. 또 여러 디지털 기기에서 통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용자 ID를 개발하는 등 기술이니셔티브에 참여했다. 최근에는 드론을 디즈니의 사업 모델과 접목하는 방안, 예컨대 드론에 고해상도 카메라를 장착해 미식축구 경기장에 띄우는 아이디어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디즈니는 지난해 여름 드론 관련 특허를 다량 출원한 바 있다(현재 만료되지 않은 디즈니 특허의 84%가 아이거의 재임 기간에 출원됐다).

ABC 텔레비전 그룹 ABC Television Group의 CTO 빈스 로버츠 Vince Roberts는 이를 “만반의 준비를 갖춰 미래를 예측하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CTO 협의회는 디즈니 기술적 실험의 상당 부분을 지원하고 있다. 이사회에 IT전문가가 여럿 있지만, 그들은 대형 투자 관련 결정을 최종적으로 내릴 권한이 있는 아이거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샌드버그와 블랙베리 CEO 존 첸 John Chen에 이어 2013년 말에는 트위터와 스퀘어 Square *역주: 모바일 결제 업체의 공동창립자인 잭 도시 Jack Dorsey가 디즈니 이사회에 합류했다.

도시는 “디즈니는 예전부터 단순히 기술을 활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항상 신기술을 창조해왔다”며 “아이거는 한동안 디즈니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방식을 통해 기술과 긴밀한 관계를 재구축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디즈니 이사회에 수혈된 실리콘밸리 DNA와 CTO협의회 덕분에, 아이거의 주변에는 벤처 기업을 여러 개 출범시킬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노하우를 지닌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그중에서도 아이거의 사고방식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간관계는 한 CEO와 맺은 6년간의 우정이었는데, 바로 고(故) 스티브 잡스와의 관계였다.

픽사의 본사는 캘리포니아 주의 한적한 도시 에머리빌 Emeryville에 자리 잡고 있다. 본사 건물 내의 탁 트인 대형 홀에는 ‘몬스터 주식회사’, ‘카’, ‘토이 스토리’의 캐릭터 들이 실물 크기 모형으로 전시돼 있다. 약 700명의 애니메이터, 프로덕션 매니저, 기획자들이 먹고, 일하고, 놀이를 즐기는 이 건물은 스티브 잡스가 직접 설계했다. 그는 존 래시터 John Lasseter, 에드 캐트멀 Ed Catmull과 함께 1986년 픽사를 창립했다.

잡스가 생전에 썼던 2층 사무실에서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캐트멀은 픽사와 디즈니의 기묘하고 긴 관계를 회상했다. 픽사는 조지 루카스 George Lucas의 영화사에서 갈라져 나온 회사였다. 아이스너가 CEO에 올랐던 1984년 당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사업부는 붕괴하기 직전이었다. 새 CEO는 이 사업부의 부활 작전에 돌입했다. 영화 제작량을 두 배로 늘리고, 당시만 해도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 경험이 없는 신생 기업이었던 픽사와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협력의 일환으로 디즈니는 픽사와 컴퓨터 애니메이션 시스템을 공동 개발했다. 이후에는 수익의 일부를 나누는 조건으로 픽사가 제작한 영화의 마케팅과 배급을 담당한다는 데에도 합의했다.

이후 ‘토이 스토리’부터 ‘니모를 찾아서’까지, 픽사는 히트작을 잇달아 쏟아냈지만 디즈니와의 관계는 점점 악화됐다. 예술적 견해 차이도 원인이었지만, 여러 관계자에 따르면 아이스너와 잡스 간의 불화가 더 큰 이유였다. 캐트멀에 따르면, 아이스너가 이끄는 디즈니는 픽사의 히트작 ‘토이 스토리’의 후속편을 만들기 위한 전담팀을 꾸리고 서클 세븐 Circle 7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당시 픽사는 7편의 애니메이션을 만든 상태였다. 픽사의 세 공동창업자는 디즈니가 작지만 성공 가도를 달리던 자신들의 회사를 조롱하려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캐트멀은 “우리 작품의 후속편을 디즈니가 만든 다는 사실 자체로도 언짢았는데, 이름까지 서클 7이라고 붙여 더욱 화가 났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후 입주한 건물의 주소에서 따 온 이름임이 밝혀졌지만, 이미 관계는 악화되고 난 후였다. 두 기업의 관계는 점점 경색되고 있었다.

아이스너는 이 사건에 대해 포춘과의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러나 한 측근은 잡스와 아이스너가 픽사와의 재계약 문제를 두고 서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을 뿐, 적대 관계까지는 아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2005년 아이거가 CEO에 취임하면서 픽사와 디즈니의 관계가 전환점을 맞았다는 사실이다. 아이거는 공식 발표가 나기 전 잡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취임을 알렸다. 아이거는 “나는 그에게 두 회사의 관계가 그동안 얼마나 악화됐는지 잘 알고 있으며, 잡스 쪽에선 앞으로도 별 변화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란 걸 증명해 보이겠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잡스는 아이거의 말을 한번 믿어 보기로 하고,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만나자고 제안했다. 아이거는 이를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생기를 잃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제작 부문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픽사가 꼭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애플 CEO가 매우 중요한 기술적 파트너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캐트멀은 “잡스는 그때 아이거가 자신의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증언했다. “그 후 몇 년간, 두 사람은 진정한 동반자로 거듭났다. 이전에는 잡스가 원했지만 갖지 못했던 그런 종류의 관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거는 디즈니-애플 간 동맹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잡스에게 증명할 기회를 얻었다. 취임한 지 불과 며칠 후, 아이거는 캘리포니아 주 쿠퍼티노 Cupertino에 위치한 애플 본사를 방문했다. 그리고 당시 시작 단계였던 아이튠스에 디즈니 콘텐츠를 공급한다는 계약에 직접 서명했다. 2005년 10월, 공식적으로 CEO에 취임한 지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아이거는 잡스와 함께 연단에 섰다. 캘리포니아 주 베이 에리어 Bay Area에서 열린 5세대 아이팟, 일명 ‘비디오 아이팟’의 정식 출시 기념행사였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당시 음악만 판매하던 아이튠스 스토어에서 앞으론 ABC의 TV 프로그램을 구매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두 CEO가 이 계약을 성사시키는 데는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로써 발생한 광범위한 파급효과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아이거는 “당시 자회사와 유통사, 방송 관련 조합 들까지 반발이 대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덕분에 잡스와의 관계에 변화가 일어났고, 픽사와의 관계도 훨씬 나아졌다.”

2006년 초, 디즈니는 74억 달러에 픽사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인수 조건으로 캐트멀과 래시터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부문을 총괄하게 됐다. 픽사의 최대주주였던 잡스도 디즈니의 최대주주가 됐다(현재도 그의 아내 로린 파월 잡스 Laurene Powell Jobs가 최대주주이다). 잡스는 2011년 타계하기 전, 자신이 사망하면 애플 이사회 자리를 아이거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거는 현재까지 이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아이거는 “잡스와 나는 칠판을 앞에 두고 여러 아이디어에 대해 종종 대화를 나누었다”고 회상했다. “사업에 대한 깊은 사색이었다. 미디어의 본질은 결국 콘텐츠와 기술의 교차점에 존재하게 되어 있다. 사진과 카메라의 관계에서 볼 수 있듯이, 결국 핵심은 스토리텔링이다.

이 같은 부분에 대해 잡스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디즈니와 애플 간의 관계는 잡스 사후에도 이어졌고, 해를 거듭할수록 깊어지고 있다. 디즈니는 아이폰과 아이패드용 앱을 가장 먼저 출시한 미디어 기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최근에는 디즈니 매장에서 애플의 새로운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애플페이 Apple Pay의 결제도 가능해졌다. 또 미키 마우스가 그려진 애플의 스마트 워치도 올해 초 출시될 예정이다. 애플의 현 CEO 팀 쿡은 아이거를 “눈 앞의 일을 제쳐 둘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며 “디즈니의 전통을 잘 알지만 이에 집착하지는 않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픽사 인수 후에도 아이거는 대형 M&A에 머뭇거리지 않았다. 2009년에는 43억 달러에 마블을 인수했고, 3년 후에는 40억 달러에 루카스필름의 새 주인이 되었다. 그 결과 루카스필름의 특수효과 부서인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앤드 매직 Industrial Light & Magic(ILM)에 속한 수백 명의 기술자가 디즈니의 일원이 되었다. TV, 테마파크, 영화를 망라하는 디즈니의 브랜드들은 필요한 모든 기술적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예컨대 ILM은 현재 픽사가 제작 중인 신작 애니메이션에서 코끼리 상아를 실감 나게 구현하는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루카스필름, ILM, 픽사, 마블의 인수는 아이거의 첨단기술 연구인력에 힘을 보탠 것 외에도 디즈니의 확실한 수익창출원이 되었다. 하지만 ILM의 사장 린웬 브레넌 Lynwen Brennan은 이 혁신적인 기업들이 한데 모이면서 얻은 가장 큰 장점은 손익계산서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차이를 감히 말하자면, (최근 유행처럼 쓰이지만 불명확한 개념인) 기업문화를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정말 디즈니는 변했다. 브레넌은 디즈니에서 ‘시너지’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디즈니는 우리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추구할 수 있도록 매우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그렇다고 문화가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는 뜻은 아니다. 디즈니의 주요 사업 분야 중 한 곳은 한동안 사람들이 사고 싶어하는 것을 제대로 팔지 못했다는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게임과 웹사이트를 담당하는 인터랙티브 부문은 재작년까지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10억 달러가 넘는 손실을 기록했다. 인터랙티브 부문 총책임자 지미 피타로 Jimmy Pitaro는 당시 조직이 너무 방대했으며 너무 많은 일을 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또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회사는 이 사업부에 무관심했다. 전직 디즈니 중역 중 한 사람은 “회사 주가를 올리는 데 공헌한 경험이 별로 없어 사내에서 영향력이 미미했던 탓에 뛰어난 인재들을 끌어오는 일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리해고와 조직개편을 거친 후, 인터랙티브 부문은 2014년 마침내 안정을 되찾았다. 콘솔 게임 등 시대에 뒤처진 제품 라인은 퇴출되었다. 또 현실의 장난감을 온라인에서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인터랙티브 게임 인피니티 Infinity를 1억 달러에 인수했다. 모든 개발을 자체적으로 하는 대신, 외부 개발자들과 대규모 라이선스 계약을 맺는 쪽을 선택했다. 일본 기업 라인 LINE *역주: NHN의 라인을 의미한다이 퍼즐게임 썸썸 Tsum Tsum의 모바일 버전을 개발한 것이 그 좋은 예다. 이 게임에는 도널드 덕, 구피 등 디즈니 유명 캐릭터들의 유아 버전이라 할 수 있는 동그란 인형 형태의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액정 클리너로 사용 가능한 썸썸 캐릭터 인형은 작년 초 일본 출시 후 280만 개 이상 팔리며 히트 상품이 됐다. 총 다운로드 횟수 2,100만 회를 돌파한 썸썸은 iOS와 안드로이드 양쪽에서 일본 시장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디즈니의 인터랙티브 부문은 매출 13억 달러, 이익 1억 1,600만 달러라는 무난한 성적을 기록하며 2008년 독립 이후 첫 흑자를 기록했다. 아이거는 “큰 성공을 거두고 싶다면 조기에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은 역동적이고 기술 변화는 너무나 빠르다. 그래서 투자가 늦으면, 과거에 검증된 무언가에 투자했다가 큰 변화로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디즈니도 상당한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교훈만은 확실히 얻었다.” 그러나 인터랙티브 부문은 아직 시장에서 발 빠른 추격자가 아닌 선도자로 발돋움하지 못하고 있다. 유명 건설 게임 마인크래프트 Minecraft의 개발사 모장 Mojang을 인수했다면 목표에 성큼 다가설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그 또한 힘들어졌다(지난해 9월 마이크로소프트가 25억 달러라는 훌륭한 금액에 모장을 손에 넣었다). 오히려 인터랙티브 부문이 디즈니의 소비자 제품 부문에 흡수될 듯하다. 소비자 제품 부문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장난감, 태블릿용 게임 등 각종 IT 제품을 개발하는 부문으로, 인터랙티브 사업보다 규모가 더 크다. 그간 프리미엄 콘텐츠는 케이블의 고가 요금제에 포함돼 제공됐다. 하지만 이제 TV업계는 어떻게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테마파크와 영화로 잘 알려진 디즈니지만, 사실 가장 수익률이 높은 사업은 ESPN과 ABC가 소속된 미디어 네트워크 부문이다. 1996년 두 방송사를 인수한 아이스너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내야 한다. 보고 싶은 방송을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시청할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선택하는 소비자의 수가 점점 늘면서, 패키지 형태가 아닌 개별 콘텐츠의 판매를 늘려 달라는 요구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2월부터 디즈니는 ‘어디서나 즐기는 디즈니 영화(Disney Movies Anywhere)’라는 앱을 출시하면서 소비자들에게 영화 콘텐츠를 직접 판매하기 시작했다. 또 넷플릭스 Netflix 류의 업체들과 협력해 온라인 전용 영상 콘텐츠의 제작에도 나섰다. 지난해 5월에는 유튜브 채널 네트워크인 메이커 스튜디오 Maker Studios를 5억 달러에 인수하며 온라인 전용 콘텐츠에 대한 과감한 투자도 이어갔다. 하지만 경쟁을 극복하고 아이거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가장 큰 기회는 현재로선 가장 함락하기 힘든 성이기도 한 ESPN에서 찾을 수 있다. ESPN의 여러 채널이 제공하는 스포츠 생중계는 수많은 소비자가 아직도 케이블에서 패키지 상품을 구매하는 주요 이유이다. 대표 채널 ESPN을 시청하는 가구 수만도 9,500만에 달하고 있다. 이런 가치를 지닌 브랜드라면 컴캐스트 Comcast *역주: 미국의 대표적인 케이블 회사를 통해 24시간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콘텐츠별로 나눠 소비자에게 직접 서비스를 공급해도 여전히 시청자의 사랑을 받을 확률이 높다.

ESPN은 올해 개최될 크리켓 월드컵 Cricket World Cup을 콘텐츠 개별 제공의 시험장으로 삼을 것으로 예상된다(ESPN 측은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고 있지 않지만, 협상 중이라는 소문이 업계에 돌고 있다). 그러나 콘텐츠 개별 제공 방식으로 스포츠 생중계를 제공해 충분한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증거는 없다. 아이거는 여전히 ‘묶어팔기’에 대한 신뢰를 표시하면서, 실험적인 태도를 다소 줄이고 있다. 아이거는 지난해 11월 투자자들과의 통화에서 “가정에선 여전히 채널 패키지 구매가 가장 흔한 방식”이라며 “당분간은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리라 예상한다”고 밝혔다. 일부 전문가는 이에 동의하고 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 메릴린치 Bank of America Merrill Lynch의 미디어 전문 베테랑 애널리스트 제시카 레이프 코헨 Jessica Reif Cohen은 “시대에 뒤처질 생각은 없겠지만, ESPN은 여전히 채널 패키지 판매의 핵심 요소다.

주요 미디어 기업들은 앞으로도 유료 TV 사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가격 면에선 여전히 패키지 판매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가격 산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거와 디즈니가 그간 상당히 고민한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와 잠깐이라도 대화를 나눠 보면, 지금 그가 직면한 과제는 훨씬 막연하고 난해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바로 쉽게 바뀌는 소비자의 마음을 잡는 것이다. 아이거는 ‘소비자 경험’ 등의 용어를 자주 사용했다. 아이거의 다른 경영 목표와 마찬가지로, 그는 이번에도 전 세계의 (스마트폰에 푹 빠진 스포츠 팬부터 칠면조 다리 *역주: 디즈니랜드의 인기 간식를 뜯는 관광객까지) 수많은 중산층과 디즈니의 관계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IT를 선택했다. 플로리다에 위치한 디즈니월드가 아이거의 이런 전략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일 듯하다. 올랜도 Orlando 시 인근의 약 103㎢ 습지에 세워진 이 거대한 테마파크는 연간 약 1,900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상당수가 밝은색 손목밴드를 차고 다닌다. 파란색과 분홍색 밴드가 가장 인기가 높으며, 보라색을 새로 추가해 달라는 요청이 가장 많다고 한다. 방문객이 놀이공원에 입장할 때, 미키 마우스 모양의 단말기에 밴드를 갖다 대면 단말기에 자동으로 불빛이 들어온다. 디즈니월드 내에 위치한 26곳의 리조트 객실에 입실할 때도, 공원 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가판대나 상점에서 공주 모자와 대형 추로스 churros *역주:밀가루 반죽을 막대 모양으로 만들어 기름에 튀겨낸 에스파냐의 전통요리를 살 때도 같은 방식이 적용된다.

여느 기업들과는 달리, 디즈니는 웨어러블 기기 열풍을 불러일으킬 ‘킬러 앱 killer app’이 등장하길 마냥 기다리는 대신 직접 만들어 냈다. RFID칩이 장착된 매직밴드를 출시한 것도 약 1년 전이다. 짧은 기간임에도 현재까지 약 900만 명 이상이 이 매직밴드를 사용했다. 디즈니에 따르면, 매직밴드 사용자의 75%가 테마파크 방문 전에 마이매직플러스 MyMagic+웹사이트에서 밴드를 ‘체험’하고 있다. 사용자는 매직밴드를 신용카드 및 패스트패스(최대 3개 놀이기구를 줄 서지 않고 바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예약 제도)와 연동시킬 수 있으며, 심지어 음식 예약도 할 수 있다. 새로운 놀이기구를 설치하는 과정과는 달리, 매직밴드를 도입하는 과정은 점진적이고 반복적이었다. 디즈니월드 리조트 내 2만 8,000개가 넘는 객실의 도어록을 교체해야 했다. 디즈니월드 내 여기저기에 수백 개의 인터넷 접속 지점을 설치해 매직밴드용 무선통신망을 갖추기도 했다.

디즈니 임원들은 매직밴드에 개인정보가 저장되지 않으며, (많은 이들의 추측과는 달리) 공원 내 미아 찾기에서도 매직밴드가 사용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매직밴드를 통해 더욱 다양한 고객 관련 데이터를 발굴해 가는 과정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방문객의 소비 경향을 파악하기가 쉬워졌다. 디즈니는 매직밴드를 적용한 후 관광객의 디즈니랜드 내 지출이 늘었다고 이미 발표한 바 있다. 디즈니가 보유한 크루즈 선박 라인 등 다양한 영역으로 매직밴드 사용을 확대하는 것이 이 회사의 다음 목표다.

디즈니의 테마파크 및 리조트 사업부문 사장 톰 스태그스 Tom Staggs는 “세상에 상상력이 남아 있는 한 디즈니랜드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고 역설한 월트 디즈니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 말을 디즈니랜드에 계속 새로운 놀이기구가 등장할 것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지만, 그보다 더 넓은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디즈니랜드는 계속 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54세인 스태그스는 아이거의 임기가 끝나는 3년 후, 차기 CEO 자리를 두고 경쟁할 예상 후보 중 한 명이다. 지난 2009년 아이거는 최고재무책임자(CFO)였던 스태그스에게 당시 테마파크 및 리조트 사업부문 사장 제이 래술로 Jay Rasulo와 자리를 맞바꿀 것을 제안했다. 또 다른 차기 CEO 유력 후보였던 ABC의 사장 앤 스위니 Anne Sweeney는 이달 중으로 회사를 떠날 예정이다.

이매지니어링 연구소를 방문한 날, 스태그스와 래술로는 아이거가 디시의 새로운 3차원 영상과 상호 작용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상하이에 건설 중인 새 디즈니랜드의 거대한 성 ‘마법의 동화책(Enchanted Storybook)’을 복제한 영상이었다. 내부에 공연 무대와 지하 보트 유람 시설을 갖춘 새 성은 디즈니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환상적인 성과라 할 만했다. 그러나 디즈니의 92년 역사에서 ‘마법’을 현실에 옮겨온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닌 듯싶다. 아이거가 3D 성의 뾰족한 탑과 금빛으로 반짝이는 복도를 살펴보는 동안, 픽사의 공동창립자이자 최고창의성책임자(Chief Creative Officer)인 래시터의 말이 떠올랐다. “예술은 기술에 도전하고, 기술은 예술에 영감을 준다.” 서로 상생 관계에 있는 두 힘, 기술과 예술 간의 균형 유지는 디즈니의 안팎에서 빠르게 변화가 일어나는 이 시점에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비록 얼굴은 무표정해도, 아이거는 예술과 기술의 완벽한 균형을 찾아내는 과정을 즐기는 듯 보였다.

아이거의 대규모 투자
아이거는 기술, 콘텐츠,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한 대규모 투자에 과감히 나섰다. 그의 지휘 아래 디즈니가 투자를 진행한 대표적인 분야들을 살펴보자.

74억 달러 픽사
55억 달러 상하이 디즈니랜드
43억 달러 마블
40억 달러 루카스필름
10억 달러 매직밴드
5억 6,300만 달러 플레이돔
5억 달러 메이커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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