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빅2 종자기업 운명이 엇갈린다

[Special Report Ⅱ] 종자기업

국내 종자시장 빅2 기업인 농우바이오와 동부팜한농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지배구조 변동의 풍파를 심하게 겪은 농우바이오는 최근 농협경제지주에 인수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은 반면, 동부팜한농은 동부그룹의 유동성 위기로 계열 분리 및 매각 절차에 돌입하면서 회사의 앞날을 장답할 수 없게 됐다.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국내 종자업체 수는 1,400개가 넘는다. 하지만 품종 육성 전문성과 경쟁력을 갖춘 업계는 10개 안팎의 극소수이고, 이 중에서도 시장점유율이 10%를 넘는 곳은 농우바이오와 동부팜한농 단 두 곳에 불과하다. 지난해 기준 두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농우바이오가 23%, 동부팜한농이 18%로 사실상 두 기업이 국내 종자시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기업은 최근 상반된 길을 걷고 있어 눈길을 끈다. 농우바이오는 2013년 창업주인 고(故) 고희선 명예회장이 별세하면서 회사 경영권이 매물로 나오는 등 홍역을 치렀으나, 지난해 농협이 최대주주에 이름을 올리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동부팜한농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동부팜한농은 동부그룹의 지원 아래 급성장해 2012년 몬산토코리아의 종자사업부까지 흡수하며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2013년에는 시장점유율이 20%대 중반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최근 동부그룹이 어려워지면서 계열 분리 및 매각 작업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

농우바이오, 외환위기 이후 업계 1위로
우리나라 종자산업 역사에서 1998년은 대위기의 해로 기억된다. IMF 외환위기 때문에 경영이 어려워진 국내 종자업체들이 줄줄이 해외에 매각됐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 종묘업계의 맏형 흥농종묘와 3위 기업 중앙종묘가 세미니스(현재는 몬산토에 인수됨)에 팔려나갔고, 2위 기업 서울종묘와 4위 기업 청원종묘도 각각 노바티스(현재 신젠타)와 사카타에 인수합병됐다.

내로라하던 국내 종자업체들이 줄줄이 다국적 기업으로 넘어갔지만 업계 5위였던 농우바이오는 달랐다. 당시 농우바이오도 심각한 경영 위기를 겪고 있었지만, 고희선 농우바이오 명예회장은 다국적 기업들의 인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농우바이오만이라도 토종기업으로 남아 종자 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이후 농우바이오는 불과 몇 년 만에 외국계 기업들을 제치고 국내 시장점유율 1위 종자업체로 성장했다. IMF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활용한 덕분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업체 관계자는 말한다. "농우바이오의 성장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건 IMF 위기였다고 봅니다. 상위 4개 기업이 해외로 매각되면서 이들 기업에서 퇴사한 고급 인력들을 고스란히 다 흡수했거든요. 이후 종자사업 역량이 몰라보게 일취월장했습니다."

지배구조 변동 후유증 겪어
농우바이오는 최근 IMF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큰 위기를 겪었다. 시작은 2013년 8월 고희선 명예회장의 갑작스런 별세였다. 당시 고 회장의 나이는 64세(1949년생). 상속을 준비하기에는 비교적 이른 나이였다. 때문에 고 회장 유가족이나 농우바이오 측에선 상속과 관련된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고 회장의 작고로 그가 가지고 있던 농우바이오 주식 649만 주(전체 지분의 45.4%)가 유가족에게 상속됐다. 문제는 1,000억 원이 넘는 상속세였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유가족은 경영권을 포함한 지분 매각을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농우바이오는 지배구조 변동의 풍파를 심하게 겪었다. 몬산토, 골드만PE 등 외국계 자본이 유력 인수 후보자로 떠오르면서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일부 자산운용사나 사모펀드들의 경영권 흔들기도 심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3년 11월에는 5년 동안 이어진 동부팜한농과의 참외 품종 보호권 침해 소송에서 패소했다. 동부팜한농은 바로 다음 달인 12월 62억 원 규모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경영권 매각 본입찰이 시작되기도 전에 터진 대형 악재였다. 동부팜한농의 손해배상 요구 금액인 62억 원은 2013년 농우바이오 당기순이익(115억 원)의 절반이 넘는 금액이었다. 연이은 악재에 고희선 명예회장 별세 전인 8월 초까지만 해도 3만 원대 초반이었던 농우바이오 주가는 속절없이 떨어져 같은 해 12월에는 2만 1,100원까지 급락했다.

농우, 농협경제지주 날개를 달다
위기에 빠져 있던 농우바이오에 구원의 손길을 내민 건 농협경제지주였다. 지난해 3월 실시된 본입찰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농협경제지주는 같은 해 9월 농우바이오 지분 52.82%를 인수하면서 농우바이오의 최대주주가 됐다. 오동진 농림축산식품부 종자생명산업과 사무관은 말한다. "IMF 이후 정부에선 국내 종자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긴 시간이 흘러 이제야 비로소 국내 종자산업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국내 1위 기업인 농우바이오가 넘어간다고 하니 그냥 두고 보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농우바이오가 가지고 있는 중요 품종들의 권리가 외국계 기업에 팔리는 것도 우려했을 거고요."

업계에선 농우바이오가 농협경제지주 아래로 들어가면서 성장에 한층 더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주류를 이룬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말한다. "결과적으론 호재가 됐습니다. 든든한 뒷배경이 생겼으니까요. 지난해 12월 있었던 제주도 지역 농가 피해 보상도 그 규모가 동부팜한농의 손해배생 요구 금액보다 큰 70억 원이었지만 별다른 악재가 되지 못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유상증자라도 해야 했을 텐데 이번엔 농협은행에서 50억 원을 차입하는 것으로 별 탈 없이 지나갔죠. 올해 3월엔 이상욱 농협중앙회 농업경제대표가 농우바이오에 예산과 인력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글로벌 톱10 종자회사로 만든다면서요.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단 격 아니겠습니까."

국내 종자업계 빅2 체제의 시작
"종자주권, 15년 만에 되찾았다." 2012년 9월 13일 주요 국내 언론들은 동부팜한농의 몬산토코리아 종자사업부 인수를 이렇게 대서특필했다. 몬산토코리아가 우리나라 종자산업에서 가지는 의미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IMF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 1위 및 3위 종자업체였던 흥농종묘와 중앙종묘를 세미니스가 인수했고, 이 세미니스를 다시 몬산토가 인수하면서 만들어진 회사가 몬산토코리아였다. 따라서 동부팜한농의 몬산토코리아 종자사업부 인수는 우리나라가 종자주권국으로서의 자존심을 되세우는 일이기도 했다.

당시 몬산토코리아는 국내 종자시장에서 2위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국립종자원 자료에 따르면, 몬산토코리아는 2012년(동부팜한농과 몬산토코리아 종자사업부는 2013년부터 회계를 같이함) 종자사업에서 415억 원 매출을 올려 동부팜한농(179억 원)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실적을 기록했다. 동부팜한농은 이런 몬산토코리아를 흡수해 단번에 종자업계 2위 기업으로 뛰어올랐다. 국내 종자업계 빅2 체제의 시작이었다.

매각 진행 중인 국내 2위 기업
엄청난 성장세로 농우바이오와의 순위 역전을 코앞에 뒀던 동부팜한농이었지만, 최근 동부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3월 31일 동부그룹은 "동부팜한농 재무적 투자자들과 동부팜한농이 계열 분리 및 매각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동부팜한농 내부에는 이를 뜻밖으로 받아들이는 의견이 많다. 동부팜한농 한 관계자는 말한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습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동부팜한농에 보이는 애착도 상당했거니와 회사도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었거든요. 재무적 투자자들이 꽤 강하게 계열 분리 요청을 했었나 봅니다. 지금 이대로 가면 그룹 리스크가 동부팜한농에도 전이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룹 측에서도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게 우선이었을 테니 합의했을 거고요."

동부팜한농 인수에는 오릭스프라이빗에쿼티코리아가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릭스프라이빗에쿼티코리아가 일본계 금융자본인 까닭에 업계에선 또다시 종자주권에 위기가 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 종로5가역 인근에서 종묘상을 운영하고 있는 한 소매업자는 "업계 2위인 동부팜한농이 외국계에 팔린다면 참 허탈할 것 같다"며 "워낙 영세한 업체들 가운데 (큐모가 큰) 특출한 한두 군데 업체인데 이런 기업들이 해외에 넘어간다면 우리나라의 종자주권 수호도 어려워지는 것 아니겠느냐"고 걱정을 했다.

동부팜한농 관계자는 아직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계열 분리 신청을 해놓은 상태여서 현재 동부팜한농의 경영권은 재무적 투자자들이 행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각 등의 사안에 대해선 동부그룹도 어느 정도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콜옵션(정해진 시점에 미리 약속된 가격으로 특정 자산이나 상품을 살 수 있는 권리) 등을 붙여서 나중에 되사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는 말이죠. 지금은 인수의향자들을 상대로 가벼운 이야기만 오가고 있는 상황이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저희는 어떤 식으로든 빨리 결정이 나서 회사가 다시 정상화되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IMF 외환위기와 종자주권]
1998년 국내 종자시장 점유율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상위 4개 기업들이 모두 외국계 기업에 팔려나가면서 국내 종자보급률이 형편없이 떨어졌다. 업계에서는 IMF 외환위기 당시 다국적 기업의 국내 종자보급률(쌀 제외)이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80%까지 치솟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사실상 종자주권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특히 청양고추 품종 보호권을 가지고 있던 중앙종묘가 멕시코계 기업 세미니스에 인수돼 '청양고추를 먹을 때마다 해외에 로열티를 지불해야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땐 국민들의 종자주권 상실감이 극에 달하기도 했다.

[종자주권 상실 우려 다시 커지나?]
동부팜한농이 외국계 기업에 넘어가면 다시 종자주권을 상실할 것이란 우려가 많다. 이에 대해 오동진 농림축산식품부 종자생명산업과 사무관은 과한 걱정이라고 지적한다. "지금은 IMF 외환위기 때와 상황이 매우 다릅니다. 정부에선 국내 종자산업 육성 의지를 가지고 그동안 많은 노력을 해왔기 때문에 지금은 국내 종자업체들의 수준이 굉장히 많이 올라왔습니다. 아주 크진 않아도 강소기업이 많아졌다는 얘기죠. 내부 자료에 근거해 추산했을 때, 동부팜한농이 외국계 기업에 넘어간다고 해도 국내 종자시장에서 다국적 기업들이 차지하는 시장점유율 비중은 30% 정도 밖에 안되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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