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시대 삼성의 승부수] 이병철 ‘관리경영’·이건희 ‘준비경영’ 넘어 이재용식 ‘선택과 집중 경영’ 선보인다

흔히 2세는 창업 세대를 뛰어넘기 힘들다고 말한다. 2세 체제로 넘어가 성장은커녕 무너지는 기업도 많다. 삼성그룹은 이제 3세대로 넘어가기 직전에 와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할아버지가 만들고 아버지가 키운 삼성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은 오랜 기간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스타일은 현장경영을 중시하고 철저히 확인하는 방식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많이 배웠다. 이병철 선대 회장과 이건희 회장으로 이어진 최고경영자의 DNA도 흐른다. 미래 먹거리는 이재용 부회장의 핵심 키워드다. 삼성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키는 막중한 임무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지난 6월 1일, 서울 순화동 호암아트홀에 취재기자 100여 명이 몰려들었다. 호암아트홀 로비에는 취재수첩과 볼펜,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25회 호암상 시상식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참석한다는 건 뉴스였다. 로비에선 이 부회장을 만날 수 없었다. 불발이었다. 이 부회장이기자들과 마주치지 않는 2층 출입문으로 행사장에 입장했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수상자들이 상을 받을 때마다 밝은 표정으로 박수 치며 그들을 격려했다. 공식 축사나 발언은 없었다. 시상 행사가 끝나자 기자들은 다시 로비를 향해 달려나갔다. 이재용 부회장이 걸어나가는 곳을 향해 질문이 쏟아졌다. 이 부회장은 미소 띤 얼굴로 답을 대신했다. 취재진과 이 부회장 사이 거리가 팔 하나 길이만큼 좁혀졌다. 이 부회장은 로비 한쪽에 임시로 만들어놓은 벽 바로 앞까지 걸어갔다. 갑자기 벽에서 문이 열렸다. 이 부회장이 빨려 들어가듯 걸어 들어갔다. 문은 바로 닫혔다. 취재진은 닫힌 문만 바라보며 웅성댔다. 그리고 서서히 흩어졌다. 이재용 부회장은 우리가 모르는 세상으로 다시 사라졌다.

이날 이 부회장은 아버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대신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해 사실상 행사를 주관했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공익재단 ·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직을 전날 승계한 데 이은 첫 대외 행사였다. 이재용 부회장은 실질적으로 삼성의 총수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을 대내외에 보여줬다. 두 재단은 삼성 창업주인 고( 故) 이병철 선대 회장이 설립했다. 그동안 재단 이사장은 별일이 없는 한 삼성그룹 총수가 맡는 게 관례였다. 따라서 이재용 부회장을 지켜보고 있는 모든 이들은 그의 삼성그룹 회장 승계가 임박했다고 보고 있다.



이재용의 역량
사실 경영권을 잇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경영권을 물려받은 뒤에 어떤 일을 할 것 인가가 중요한 거죠. 이재용 부회장 스스로가 여기에 굉장한 부담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글쎄요, 아직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지 않을까요?”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비즈니스 세계는 다른 어떤 곳보다 상황이 급변한다. 중요한 건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해 기업이 대처할 수 있는 위기관리 능력을 갖췄는지 여부다. 그리고 그 핵심은 최고경영자의 역량에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로 승진하면서 임원이 됐다. 2003년엔 상무로 승진한 데 이어 2007년에는 전무(최고고객책임자 CCO)가 됐다. 2009년에는 부사장으로, 2010년에는 사장으로, 그리고 2013년에는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승진을 거듭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나선 시점은 2007년으로 보인다. 전 삼성메디슨 직원 C 씨의 말이다. “그때부터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을 본격적으로 챙기기 시작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당시 삼성전자 소속이었을 때였어요. CCO 조직 외에도 전략기획실 각 팀장이 그룹 현안을 이재용 부회장(당시 전무)에게 보고했으니까요. 삼성경제연구소에서도 이재용 부회장 주재로 회의가 열리곤 했습니다.”

당시 삼성전자 최고고객책임자였던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해외 협력선들을 관리하고 새로운 협력관계를 찾아 나서고 있었다. 사실 이 부회장은 이전에도 경영상 중요한 역할을 한 적이 있다. 이 부회장은 과거 소니와 합작해 S-LCD를 만드는 데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 대표이사를 역임했던 A 씨가 말한다. “소니는 당시 삼성전자와 경쟁 관계에 있었죠. 소니가 경쟁사인 삼성과 손 잡는 데 내부 반대의견이 많았어요. 하지만 이 부회장이 적극적으로 나서 설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8세대 LCD패널 생산라인을 중국에 건설할 때도 이 부회장의 공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글로벌 LCD패널 기업들은 중국 정부의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 부회장은 2010년 시진핑 당시 중국 국가 부주석(현주석)과 두 차례 면담했다. 결국 삼성전자가 중국 내 LCD패널 공장 설립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 사장 시절에도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당시 애플은 삼성스마트폰 사업을 견제하고 있었다. 결국 애플은 2011년 10월 미국 등 주요 국가 법원에 삼성 스마트폰의 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며 소송에 들어갔다. 애플은 삼성이 자사 제품을 모방하고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삼성전자 수뇌부는 애플과 소송전을 시작할 것인가를 놓고 막판까지 격론을 벌였다. 애플은 삼성전자의 최대 고객이기도 했다. 2011년 한 해 동안 삼성에서 부품을 약 9조 원 이상 구매해갔다. 이런 애플과 소송을 벌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만난 후 수년간 이어져 왔던 애플과의 글로벌 특허분쟁을 미국 내 소송으로 축소하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이 부회장의 경영 능력에 물음표를 붙이는 시각도 있다. 그의 경영 능력을 객관화할 만한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터넷 벤처사업 실패는 늘 꼬리표처럼 이재용 부회장을 따라다닌다. 지난 2000년 이 부회장은 ‘닷컴’ 열풍에 맞춰 인터넷 벤처 사업에 뛰어들었다. 금융과 정보통신을 결합한 ‘ e-삼성’ 이다. 그는 ‘ e-삼성’ , ‘ e-삼성인터내셔널’ , ‘ 가치네트’ 등 14개 회사를 연이어 세웠다. 하지만 몇 해 지나지 않아 사업을 접어야 했다. 당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실패한 닷컴 기업을 살리는 쉬운 방법은 아버지의 재벌 회사에 떠넘기는 것’ 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e-삼성’의 꼬리표를 떼기 위해서라도 굵직한 성과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상조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 부회장이 경영전반에 나서면서 과감함이 돋보인 건 맞지만, 아직 그에 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라며 “이 부회장이 이론의 여지가 없는 성과를 보여주기 전까지는 승계구도가 완결됐다고 말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이건희의 반도체’처럼 이재용식 성공 스토리가 만들어져야 이 부회장 승계에 반론의 여지를 남기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재용의 임무
이재용 부회장에게 주어진 임무는 그동안 핵심 사업으로 그룹을 먹여 살려 온 반도체, 스마트폰 사업 이후를 어떻게 준비하느냐다. 지금 삼성그룹은 새로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전환점에 놓여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지금까지 자신만의 경영 스타일로 삼성을 이끌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 경영의 전면으로 부상한 이후 가장 큰 변화는 과거와 달라진 사업전략이라는 평가가 많다. 특히 삼성그룹의 사업 구조 개편은 이재용 부회장이 추구하는 삼성의 방향성을 가늠케 해준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하반기 패션과 소재사업이 공존하던 옛 제일모직의 패션부문을 삼성에버랜드로 넘겼고, 소재사업은 삼성SDI와 합쳤다. 삼성에버랜드 역시 건물관리사업을 에스원으로 매각했다. 이후 삼성에버랜드는 제일모직으로 사명도 변경했다. 비록 무산되긴 했지만,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도 추진했다.

계열사 중 경쟁력과 시너지 효과가 떨어진다는 진단이 나온 회사는 과감하게 정리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11월 방산 계열사인 삼성테크윈 · 삼성탈레스와 화학 계열사인 삼성종합화학 · 삼성토탈을 한화그룹에 넘겼다. 각 사업부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선택과 집중’에 나선 결과였다. 삼성과 한화의 빅딜은 이건희 회장 유고 이후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주도한 굵직한 의사결정으로 평가된다.

방산 · 화학 계열사 매각 결정에 앞서 열린 회의에서 많은 임원이 매각반대 입장을 밝혔다는 소문도 전해진다. 당시 이재용 부회장은 ‘우리는 과연 핵심 계열사를 제외한 회사들을 얼마나 챙기고 있는가’를 자문했다고 한다. 결론은 비주력 계열사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변화는 이 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 대표이사를 역임했던 A씨가 말한다. “한화그룹과의 빅딜 같은 사안이 이 부회장의 결정 없이 이뤄질 수 없죠. 최근 삼성의 변화는 사실상 이 부회장의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하겠죠.”

하지만 사업구조 재편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취해온 ‘ 선택과 집중’ 전략은 불안 요소를 안고 있다. 강한 소속감을 드러내 온 ‘삼성맨’들에게 불안이라는 불씨를 남겼다. 삼성그룹 계열사 고위 임원을 지낸 B씨가 말한다. “합병이든 빅딜이든 어찌 됐건 그곳에 속했던 직원들 중엔 옷을 벗는 사람들도 나오죠. 어떻게 보면 이재용 부회장이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사업은 정리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물론 중후장대한 사업이 점차 중국에 밀려 경쟁력을 잃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언제 또 환경이 바뀔지 모르는 일이에요. 고부가 사업으로 변신할 수도 있는 겁니다. 선대에서 힘들게 일으킨 사업을 쉽게 접는 모습을 보면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

세계적인 그룹의 총수로 등극한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영광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이냐 하는 고뇌가 필수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다. 국내외 직원만 해도 50만 명이 넘는 데다 매출액도 2014년 기준 380조 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삼성그룹의 행보는 국가 경제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학교 경영학부 교수가 말한다. “반도체, 스마트폰 등 기존 사업수성도 쉬운 일은 아니죠. 스스로 변신을 통해 2등과의 격차를 유지하는 건 매우 힘든일입니다. 노키아를 보세요. ‘ 아차’ 하는 순간 무너졌습니다. 거대한 기업이 무너지면 국가 경제가 힘들어져요. 국가 리스크를 개별 기업이 책임져야 하는 굉장히 어려운 과제가 주어진 상황입니다.”



이재용의 삼성
삼성그룹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은 1938년 ‘삼성상회’를 설립하면서 오늘날 거대기업 삼성의 씨앗을 뿌렸다. 이건희 회장은 그 위에 ‘글로벌’이라는 탑을 쌓았다.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다시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비전이 요구되고 있다. 단순한 수성만으로는 곤란하다.

삼성그룹은 2010년 5대 신수종 사업을 발표했다. 바이오 · 제약, 의료기기, 2차전지, 태양광, 발광다이오드(LED)다. 이 5대 사업을 그룹의 새로운 캐시카우로 키운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대규모 투자에도 2차전지를 제외하면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 태양광은 사실상 철수 작업을 진행 중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묶인 LED 역시 방향을 새로 설정해야 할 처지다.

그나마 삼성SDI가 맡고 있는 리튬이온 2차전지는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 스마트폰 · 전동공구 등에 들어가는 소형 2차전지 분야 세계 1위인 삼성SDI는 전기차 배터리를 BMW · 폭스바겐 · 아우디 등 독일 3대 완성차 업체에 모두 납품한다. 어느 정도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이재용 부회장도 힘을 실어주고 있다. 삼성SDI는 지난 2월 오스트리아 자동차 부품사 마그나 슈타이어의 전기차 배터리팩 사업 부문을 인수하기로 했다.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닌 회사다. 삼성SDI로서는 전기차 배터리팩 수주에 따른 매출 증가와 수익성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또 다른 희망은 바이오 · 제약과 의료기기 사업이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11월 있었던 계열사 매각에서 제약 및 바이오와 밀접한 삼성정밀화학과 삼성비피(BP)화학은 제외했다. 삼성그룹이 5대 신수종 사업 중 하나였던 바이오 · 제약, 의료기기 분야를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건희 회장이 그룹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해 이제 막 사업 초기 단계에 진입한 바이오 · 제약, 의료기기 사업 등을 안착시켜 새로운 그룹의 먹거리로 키우는 것은 이재용 부회장 몫이다. 그런데 바이오 · 제약과 의료기기 사업에서는 온도 차가 보인다.

전 삼성메디슨 직원 C씨가 말한다. “바이오 사업은 잘되고 있어요. 특허 만료된 약품을 복제해 대량생산하는 바이오 시밀러 사업이 주력입니다. 삼성이 가장 잘하는 사업방식에 딱 맞아요. 그다지 혁신적이진 않지만, 대규모 투자로 설비를 갖추고 규모로 승부를 낼 수 있는 분야죠. ‘치킨게임’을 벌여 경쟁자들을 고사시키고 1등을 차지하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반도체 파운드리(공장이 없는 반도체 회사의 칩을 위탁 생산하는 업체) 사업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바이오 · 제약 사업은 2011년 삼성전자와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이 출자해 설립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주도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다국적 제약사인 BMS · 로슈 · 머크 등과 바이오시밀러 위탁생산 계약을 잇달아 체결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인천 송도에 짓고 있는 15만 리터 규모의 제2 공장이 완공되면 세계 3위권의 생산 설비를 갖추게 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판매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 3월 10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자사 바이오시밀러 ‘SB4’의 판매 허가를 신청했다. SB4는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 ‘엔브렐’의 복제약으로 지난해 전 세계에서 9조 원 이상 팔렸다. 국내에서 삼성이 시장에 내놓은 첫 바이오시밀러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1월 유럽의약국(EMA)에도 판매 허가를 신청했다.

반면 의료기기 사업은 물음표를 달고 있다. 삼성은 2011년 인수한 메디슨(현 삼성메디슨)을 중심으로 의료기기 사업을 벌이고 있다. 삼성은 GE · 필립스 · 지멘스 등 의료기기 시장 메이저 기업들이 성장해온 방식처럼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2011년 이후 계속 역성장 중이다. 삼성이 가장 싫어하는 게 역성장과 시장점유율 하락이다.

전 삼성메디슨 직원 C씨가 말한다. “메디슨 인수 이후 사업이 잘 안 되고 있어요. 의료기기는 다품종 소량생산 사업이에요. 자동차를 예로 들면 티코부터 벤츠까지 다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삼성은 자기들이 하면 다 잘될 줄 알았던 거죠. TV 사업과 다르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영업 현장에선 딜러들을 쥐어짜거나 재고 밀어내기를 하고 있어요. 이건 원래 삼성이 제일 싫어하는 사업 방식이죠. 영업 현장 반응도 싸늘합니다. 이건희 회장이 완전히 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거나 최지성 부회장이 그룹을 떠날 경우 이재용 부회장이 의료기기 사업에서 손을 뗄 거라는 소문도 돕니다.”

이재용의 삼성은 장기적으로 전자를 중심으로 하는 정보통신기술(ICT) · 제조 이외에 금융사업을 확대할 청사진도 갖고 있다. 작년 10월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지분을 0.1%씩 사들이며 금융 사업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의 주요 금융 계열사 지분을 확보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이즈음부터 이 부회장과 삼성의 금융 사업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 부회장은 작년 10월 말엔 일본 최대 손해보험사인 도쿄해상화재보험과 중국 국영 보험사인 중국인민재산보험공사(PICC) 대표 등을 삼성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에 초청해 만찬을 주재하며 금융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삼성의 주요 금융 계열사 사장들이 배석했다. 지난해 5월에는 삼성생명 서울 지역 영업담당 사업부장 등 10여 명을 만나 현안을 챙기기도 했다. 당시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은 그룹 내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회사”라며 우량 설계사 등 핵심 인력 위주로 생명보험사업을 운용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가 말한다. “금융사업 등 삼성의 계열사들을 모두 챙긴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 부회장이 전자산업뿐만 아니라 자산운용 · 보험 등 금융업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삼성은 이미 지난해 5월부터 금융사업 재편에 나서면서 글로벌 금융 시장 공략을 준비해왔어요.”

지난해 5월 삼성의 금융 지주사 역할을 하는 삼성생명이 삼성자산운용 지분을 100% 확보한 것이 시작이었다. 당초 삼성생명의 삼성자산운용 지분은 5% 남짓에 그쳤다. 나머지 지분은 다른 계열사나 이 부회장 일가에 흩어져 있었다.

삼성생명은 이를 모두 사들여 100% 자회사로 편입했다. “양사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삼성자산운용을 세계적 자산운용사로 성장시키기 위한 목적”이란 게 삼성 측 설명이었다.



이재용의 참고서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고 키우는 과정이 순조로울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힘듭니다. GE의 변신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어요. GE는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바꿔서 위기를 헤쳐나갔어요. 이재용 부회장은 2002년 GE 크로톤빌 연수원에서 연수를 받았죠. 삼성물산의 최치훈 사장도 GE 출신입니다. GE를 참고하면 좋은 경영전략을 개발할 수 있다고 봐요.” 윤창현 서울시립대학교 경영학부 교수가 말한다. 실제로 이재용 부회장은 GE를 배우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창현 교수가 언급한 최치훈 사장은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 전무로 재직할 당시인 2008년 삼성전자 프린터사업부 사장으로 삼성에 합류했다. 최 사장이 삼성전자에 입사한 건 “GE를 배우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뜻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사장은 GE에서 18년을 근무하며 한국인 최초로 GE 본사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괄사장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최 사장은 잭 웰치 GE 회장의 신임을 얻어 GE에너지 글로벌 영업총괄 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800년대 후반에 설립된 GE는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123년간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다. 그 배경에는 높은 수익을 창출하는 핵심 자산일지라도 환경 변화에 따라 과감히 정리하는 끊임없는 사업구조 재편 노력이 있었다. 사업구조 재편은 기업의 장기적인 목표와 전략을 정의하고 그에 부합하는 핵심 사업과 그렇지 않은 비핵심 사업을 나누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재용 부회장이 단행한 한화와의 빅딜이 자연스레 겹쳐 보이는 대목이다.

GE에게도 생존을 위협받는 큰 위기가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GE 주가는 전년 고점 대비 33%나 폭락했고, 기업 부도 위험을 알리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 수치는 수직 상승했다.

윤창현 교수가 말한다. “원인은 GE캐피털이었습니다. 1981년 잭 웰치 회장이 취임한 후 급성장한 GE캐피털은 전체 그룹 자산의 50.3%를 차지할 만큼 확고한 수익모델로 자리 잡았어요. 그러나 상업용 부동산과 소비자 금융 대출자산이 많았던 GE캐피털은 리먼브라더스 사태 여파로 부실이 심화해 심각한 유동성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기업어음(CP) 상환을 연장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부도설까지 돌았죠.”

잭 웰치 시대와 제프리 이멜트 시대를 가르는 확연한 변화는 사업 다각화에 있었다. 사실 이멜트 회장은 취임 때부터 웰치 전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사업 포트폴리오의 근원적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20년 넘게 쌓아온 ‘경영의 달인’ 잭 웰치의 아성을 단번에 넘기란 역부족이었다. 그는 조용히 변신을 위한 새로운 사업 부문 구축을 준비했다. 이멜트 회장은 칼을 뽑았다. ‘자를 것은 자르고, 가지고 갈 것은 가져간다’는 선택과 집중의 위기대응에 나섰다. 우선 위기의 진원지인 GE캐피털의 유동성 확보에 주력하며 사업구조를 전면 개편했고, 그 규모도 대폭 축소했다. 굴지의 미디어 · 엔터테인먼트 업체인 NBC유니버설도 팔았다. 핵심사업의 초점을 에너지, 헬스케어, 항공 등 최첨단 기술 인프라 쪽에 맞춘 그는 5년에 걸쳐 기존 비핵심 계열사들은 매각하고, 새로운 핵심사업을 사들이면서 1차 사업부문 조정을 진행했다. GE는 비로소 에너지, 항공, 헬스케어 등 기술 인프라 기업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됐다.



이재용식 경영
우리는 지금 장님 코끼리 만지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삼성 이너 서클(조직의 핵심층) 안에 있는 소수를 제외하곤 누구도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서 정확히 모르고 있어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시중의 루머가 확대 재생산된 것들뿐입니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가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외부 활동이 잦은 편이다. 하지만 실제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기회는 거의 없었다. 이재용 부회장이 올해 1월 19일 삼성그룹 신임 임원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내놓은 메시지는 “올해도 열심히 도전하자”였다. 한국 최대 그룹의 실질적인 리더가 던진 화두치고는 너무나 평범했다. 수필집까지 펴낸 데다 매년 신년사나 기념사를 통해 자기 자신의 생각을 알려온 아버지 이건희 회장과 달리 이재용 부회장이 속내를 털어놓은 적은 별로 없었다.

이재용 부회장이 그나마 자기 심경을 말해 기사화됐던 건 2009년 9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기능올림픽 당시였다. 기자들이 “일이 많은데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내가 피 곤하다고 불평할 자격이 있겠는가. 운 좋게 좋은 부모, 훌륭한 선배(경영진)를 많이 만나서 이 자리에 있다. 삼성 경영자들은 기업에 헌신하고 충성심이 강하고 현명하다. 이분들과 수십만 명의 삼성 임직원분들이 함께 잘해주리라 믿는다. 물론 부담스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라고 말했다.

전 삼성메디슨 직원 C씨가 말한다. “아버지가 회장으로 있는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아직 세간의 관심을 받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이 부회장은 앞에 나서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들 의견을 경청할 줄도 알고요. 사내 평판이 나쁘지 않았어요.”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기업을 키웠고 모든 경영 현안을 직접 챙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병철 회장은 직접 디테일한 부분까지 챙기는 ‘관리경영’이라는 전형을 제시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을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바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항상 미래를 내다보는 ‘준비경영’을 강조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행보를 보면 어느 정도 스타일을 알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자신이 직접 챙겨야 할 사안이 있다면 현장으로 달려가 문제를 해결하는 ‘현장경영’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승진한 다음 날 그는 삼성전자 구미 공장을 찾았다. 구미 공장은 20년 이상 삼성의 휴대전화를 만들어 온 휴대전화의 메카다. 삼성이 세계 휴대전화 시장 1위에 오른 것은 구미 사업장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캐시카우를 만들어 내는 현장을 둘러보고 1만여명의 직원들을 독려하면서 부회장으로 승진한 의미를 새롭게 새겼다. 지난해 7월엔 미국 아이다호에서 열린 ‘앨런앤드코 미디어 콘퍼런스’에 참석해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를 직접 만났다. 이후 한 달 만에 양사는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특허 소송을 전격 취하한다고 발표했다.

이 부회장의 실용주의도 눈에 띈다. 로이터는 최근 이재용 부회장의 지난 1년을 조명하는 기사에서 ‘강철같은 실용주의(steely pragmatism)’라는 표현을 썼다.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비전을 제시하는 스타일인 반면에 이 부회장은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경영에 나서고 있다는 설명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부회장에 대해 “삼성의 유력 후계자인 이 부회장은 아버지보다 더 사교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의전을 대폭 없애고 공항 출입국 때나 조문을 갈 때도 수행원 없이 직접 가방을 들고 다닌다. 지난해에는 해외 사업장에서의 과도한 의전 절차에 대해 수차례 지적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그룹 계열사 사장단과 고위 임원들에 대한 의전도 금지했다.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을 비롯한 그룹 수뇌부로부터 주요 사안에 대해 문자와 이메일로도 수시로 보고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형식적인 대면 보고를 줄이고 즉각적인 보고를 할 수 있는 소통 창구가 가동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재용의 숙제
여전히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지난 1년간 비교적 위기를 적절히 관리했다는 게 한 시각이고, 이 부회장 역량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게 또 다른 시각이다. 지난 1년간 삼성그룹을 운영한 것은 삼성 시스템과 훌륭한 전문경영인들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 계열사의 한 직원은 말한다. “삼성엔 훌륭한 전문경영인이 참 많아요. 그래서 버틸 수 있는 겁니다. 최지성, 윤부근, 신종균 등이 은퇴하는 시점에 과연 이재용 부회장이 방향을 잘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솔직히 의문이에요. 옛날 윤종용 부회장이 사내 방송을 통해 월간 스피치를 하면서 매번 위기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삼성이 얻어맞고 있잖아요. 이재용 부회장이 겸손해 보이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건 좋은데 카리스마 있게 그룹을 끌고 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 대표이사를 역임한 A씨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내놨다. “삼성그룹 지휘체계는 이 부회장과 핵심 전문경영인들이 상의하는 집단체제로 몇 년간 더 지속될 겁니다. 사실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서도 이 편이 나을 수 있어요.” 윤창현 서울시립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이재용 부회장이 10년 이상 전문경영인들과 일해왔잖아요. 삼성 같은 거대한 그룹을 혼자서 어떻게 이끕니까? 검증된많은 참모들이 그대로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재용호도 안정적일 겁니다. 참모들이 축적한 경영 역량을 꿰어서 자신의 목걸이를 만들어야 합니다.”

삼성은 이제까지 이재용 체제로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에만 매몰되어 있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성공적인 경영권 승계를 이루기 위해 더욱 중요한 건 이재용 부회장이 제시하는 새로운 비전이다. 이건희 회장을 뛰어넘는 독자적인 리더십 구축도 필요하다. 새로운 비전은 현재 삼성의 최대 사업인 스마트폰을 뛰어넘는 미래 성장동력 창출과 맞물려 있다. 이병철 선대 회장이 “그룹의 미래를 걸었다”며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고,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 사업을 세계 제일로 끌어올리며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이재용 부회장도 신수종 사업을 토대로 그룹의 성장을 견인해나가야 한다. 무거운 짐이자 숙제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가 던진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삼성의 경영승계는 한국 경제의 절반이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삼성이 잘 되느냐 못 되느냐에 따라서 한국 경제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삼성이 잘못되면 앞으로 우리 경제는 10년은 흔들릴 겁니다. 그런 점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그 이후 삼성은 매우 잘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재용 부회장 스스로가 그걸 만들어야 합니다.”



이재용과 엘리엇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그룹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엘리엇 암초’를 만나 고전하고 있다. 삼성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발표한 데 대해 미국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삼성물산 지분 7.12%를 가진 엘리엇이 지분을 내세워 합병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을 상대로 주총 결의 금지 가처분 소송과 자사주 처분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주총 결의 금지는 합병 결의가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원천 봉쇄를 해달라는 뜻이다.

자사주 처분 금지는 삼성물산이 ‘백기사’ KCC에게 자사주 5.76%를 넘기는 시도를 봉쇄하고 우호지분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에 있다. 엘리엇은 1:0.35인 지금의 비율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었다고 주장한다. 제일모직 주식 1주가 삼성물산 주식 3주와 맞먹는다. 엘리엇은 자산총액을 따져봐도 지난해 기준 삼성물산(29조 5,058억원)이 제일모직(9조 5,114억 원)의 3배 규모이며, 삼성물산 가치가 가장 낮게 평가될 수 있는 시점에 합병을 발표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측에 제일모직과의 합병비율을 1:1.6으로 높여달라는 제안을 냈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상장회사는 합병 시에 주식시장의 시세로 합병 비율을 판단하는 국내법상 전혀 하자가 없다”며 “건설업계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모두 1배 미만일 정도로 업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삼성물산 주가만 저평가된 것이아니다”라고 반박한 상황이다.

국내법상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은 별다른 하자가 없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합병비율 기준을 주가가 아닌 자산가치로 따진다. 과거 엘리엇이 미국 법원 등에 아르헨티나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낸 사례로 볼 때, 엘리엇은 이 문제를 투자자-국가 소송(ISD)으로 몰고 갈 가능성도 있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가 말한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2대 주주입니다. 주식투자를 하는 건 돈을 벌기 위해서죠. 엘리엇을 비난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가진 주식을 정상적으로 평가해달라는 거니까요. 국내에서 엘리엇이 이기기는 힘들 거예요. 세력의 차이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엘리엇이 ISD로 몰고 가면 문제는 좀 심각해집니다. 엘리엇이 미국 정부에 구제를 요청하면 국제문제가 됩니다. 삼성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결국 지난 6월 19일 삼성물산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법정에서 맞붙었다. 양측의 변호인단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물산의 자사주 5.76%를 KCC에 매각한 것에 대한 정당성을 놓고 날 선 공방을 펼쳤다. 재판부는 조만간 추가로 양측의 서면자료를 받은 뒤 7월 1일까지 두 가처분 사건의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글로벌 인맥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이라는 엄청난 자산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엄청난 인맥이라는 자산도 갖고 있다. 인맥이 많다고 비즈니스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큰 자산임에는 틀림없다. 하버드대학교 비즈니스스쿨에서 경영학박사(DBA)를 수료한 그는 국내 인맥뿐만이 아니라 막강한 글로벌 인맥을 갖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북미와 아시아, 유럽 등을 다니며 글로벌 기업 경영자들과 유력인사들을 만나 인맥을 쌓았다. 나아가 세계 경제의 핵심으로 떠오른 중국 지도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다지고 있다. 지난 3월 말, 이재용 부회장은 베이징으로 출국했다. 그는 현지 삼성 사업장을 둘러보고 하이난 성 보아오에서 막을 올린 보아오 포럼에 참석했다.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인 보아오 포럼은 형식적으로는비정부 기구인 보아오 포럼 사무국이 주최하는 행사지만 실질적으로는 후원자인 중국 정부가 자국 주도의 국제여론형성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보아오포럼에 참석하기 전 중국 베이징에서 CITIC(중신)그룹 창쩐밍 이사회 의장을 만나 삼성과 CITIC그룹 간 금융사업 협력 확대 방안에 대해 협의하면서 중국 내 금융 사업을 챙기는 모습도 보였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지속적인 만남을 갖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7월 시진핑 주석의 국빈 방문 때 삼성전자 전시관을 직접 안내했고, 같은 해 8월 난징 유스올림픽 개막식에서도 시 주석을 접견했다.

지난 5월 12일 이재용 부회장은 이탈리아 투자회사 엑소르(Exor) 이사회에 참석했다. 엑소르는 이탈리아의 자동차 제조 기업인 피아트-크라이슬러그룹의 지주회사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2012년 5월부터 엑소르 사외이사로 활동했고 최근 3년 임기의 사외이사로 재선임 추천을 받았다. 지난해 7월 미국 아이다호 주 선밸리에서 개최된 앨런앤드코 미디어 콘퍼런스에서는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 구글 CEO 래리 페이지와 만났고 한 달여 뒤 삼성전자와 애플은 미국을 제외한 독일과 영국 등에서 특허 소송을 취하했다.

이밖에 미국 스포츠용품 업체 언더아머의 케빈 프랭크 CEO, 스위스의 다국적 제약기업 로슈의 세베린 슈완 CEO, 마르틴 빈터코른 폴크스바겐 회장, 조 케저 지멘스 회장, 호주의 광산재벌인 지나 라인하르트 회장 등 글로벌 기업인들과도 친분을 다지고 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어떻게 변했나
2년간의 숨 가쁜 구조개편 레이스 이재용 부회장 지배력 대폭 강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2013년 말까지만 해도 굉장히 복잡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순환출자 연결 고리만 30여 개가 넘었기 때문이다. 순환출자는 ‘A → B → C →A’ 식으로 계열사 간 지분 보유가 맞물려 핵심기업의 지분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순환출자 고리가 약해질 경우 경영권 방어에 취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삼성그룹은 2013년부터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정리하기 위해 지배구조 개편을 시작했다. 같은 해 7월 삼성물산이 삼성엔지니어링의 주식을 대거 매수하면서 그 시작을 알렸다. 이후 비슷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계열사 간 지분 정리와 소수 지분 매각, 인수합병 등이 이어지면서 삼성그룹의 얽히고설켰던 지배구조가 2014년 중반에는 비교적 단순한 모습으로 정리됐다.

잔가지를 많이 쳐내긴 했지만 여전히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는 복잡했다. 이건희 회장 일가가 45.6%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에버랜드를 중심으로 두 개의 순환출자 구조가 섞여 있는 모습이었다. 삼성그룹은 ‘삼성에버랜드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삼성SDI → 삼성물산 → 삼성에버랜드’ 라인과 ‘삼성에버랜드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삼성카드 → 삼성에버랜드’ 라인의 두 개 순환출자 구조로 지배되고 있었다.

2014년 7월 순환출자 구조는 그대로 유지된 채 삼성에버랜드의 이름이 제일모직으로 바뀌었다. 2014년 3월 삼성SDI가 옛 제일모직을 흡수하면서 ‘제일모직’이라는 이름이 완전히 사라졌다가 4개월 만에 다시 부활한 것이었다. 2014년 3월 이전의 제일모직과 2014년 7월 이후의 제일모직은 전혀 다른 기업으로, 현재의 제일모직은 삼성에버랜드가 담당하고 있던 삼성그룹 순환출자 지배구조의 정점 역할을 하고 있다.

2014년 12월 삼성카드가 제일모직(같은 해 7월 이름을 바꾼 옛 삼성에버랜드) 지분 전량을 계열사가 아닌 일반인에게 공개 매각하면서 삼성그룹 순환출자 구조의 한 축인 ‘제일모직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삼성카드 → 제일모직’ 라인이 정리됐다. 삼성그룹의 그룹 지배 방식은 ‘제일모직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삼성SDI → 삼성물산 → 제일모직’의 순환출자 구조로 단일화됐다.

올해 5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계획이 발표되면서 최근에는 ‘제일모직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삼성SDI → 삼성물산 → 제일모직’의 순환출자 구조도 일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합병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통합) 삼성물산 → 삼성생명 → 삼성전자’로 더 단순한 그림이 그려진다. 물론 이 경우에도 소수 지분 관계가 얽혀 있긴 하다. 하지만 (통합)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생명 3개 회사를 정점으로 하는 최상위 삼각 지배 축이 공고해지면서 순환출자 구조는 의미가 없어지는 대신, 이들 3개사가 삼성그룹 내 다른 계열사에 미치는 지배력은 이전보다 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일련의 삼성그룹 지배구조 변화는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 해소 외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가(家) 3세들의 그룹 지배력 강화와도 맞물려 있다. 특히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은 삼성가 3세들의 그룹 지배력 강화 행보에 화룡점정이 될 전망이다.

박선호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말한다. “삼성그룹 내에서 계열사 지분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곳은 삼성물산입니다. 삼성가 3세들은 그동안 제일모직을 통해 그룹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는데, 제일모직은 삼성생명 하나에만 연결돼 있어 지배력 행사가 여의치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힘이 닿는 연결고리로 보자면 삼성물산에 비할 바가 못 되죠. 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친다고 생각해보세요. 제일모직의 대주주였던 삼성가 3세들은 합병 법인에서도 자연스레 최대주주가 됩니다. 삼성가 3세들이 삼성물산의 계열사 지분을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그룹 지배력이 훨씬 더 커지게 되겠죠. 두 회사 합병 이후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정리가 훨씬 더빨라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유입니다.”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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