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난 날개지만 나는 법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경기도 안산 반월공단 8단지. 트럭에 물건을 싣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빠쁘다. 출입구 옆에는 「동양와이퍼시스템(대표 김인규)」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오토 썬」이라는 브랜드로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에서 품질을 인정받으며 자동차 와이퍼에 관한한 최고라 자부하는 회사다. 32년 역사를 이어오며 이제는 세계 유수의 자동차업체들로부터 OEM유혹을 받고 있지만 『내 상표로 팔아야 제값을 받는다』며 거절하고 있을 정도다.
직원들의 얼굴에서 1년전 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도 우렁차다.
2월에만 42만 피스(40여만 달러)를 외국으로 실어보냈다. 선적계획이 빼곡한 칠판에 적힌 3월 수출량만 60만피스다. 『이달에도 수출때문에 국내 수요 14만 피스는 못 채워줄 것 같다』는 성백명(成百明) 상무의 설명이다.
『지난해 부도만 맞지 않았다면 자금을 빌려 설비를 늘렸을 텐데….』 成상무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역력했다.
동양와이퍼시스템에 악몽이 몰아친 때는 지난해 4월. 바로 전년까지 90여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꾸준히 흑자를 냈던 동양으로서는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成상무는 『잘못된 경영이나 경영자의 부도덕 때문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받았던 어음은 부도나고 채권이 회수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156만달러짜리 신용장을 받아 수출입은행에서 12억원을 받기로 했지만 보증기금에서 보증서를 내주지 않아 물거품이 됐다. 더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동양의 전체 채무액은 48억원이었지만 실제 부도금액은 겨우 6억. 「품질보증업체, KS업체, 특허·실용신안 등 72건 보유」라는 기록이 허무해졌다.
부도직후 3달동안 공장을 멈춰야 했다. 『2년동안 10억원을 들여 개발한 신제품이 곧 나오는데…』라며 발을 굴렸다.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채권단을 설득했다. 월급도 못받은 직원들이 보험·적금을 해약해 운영자금으로 써달라고 2,700만원을 모아왔다. 김인규사장은 동생이 암에 걸려 받은 보상금 700만원까지 보탰다. 눈물이 났지만 직원 20명도 내보냈다.
다행이 이런 노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수출이 재개됐고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채무액 48억원 가운데 28억원을 갚으면서 일부 채권자들은 회수를 미뤄줬다. 한 독지가는 아무 조건없이 3억7,000여만원을 대기도 했다.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 설연휴때는 밀린 월급도 한꺼번에 지급했다. 『감격스러워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다.』고 한 직원은 그때를 돌이켰다.
밀려드는 주문에 일요일도 없다. 특허를 받은 첨단 어댑터(와이퍼 부품)에 공기역학적 설계를 해 고속주행때도 잘 닦이는 신제품은 인기몰이 중이다.
그렇다고 자만하지 않았다. 대리급은 20%, 사원급은 10%의 임금을 깎았고 임원들은 50%를 반납했다. 1일 2시간 더하기 운동도 벌이고 있다.
동양은 올해 국내시장 점유율을 현재 20%에서 5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각오다. 해외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기 위해 미국 빔(BEAM)사와의 합작건도 진행하고 있고 말레이시아·태국 합작공장 설립도 추진중이다.
『운전자금 2억원 정도와 시설투자비만 지원된다면 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기술력과 제품력을 보고 금융권이 대출을 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成상무의 목소리가 허공의 메아리로 흐르지 않길 바라며 문을 나섰다.
(0345)491-1271 【안산=박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