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끼(내수) 잡으려다 자칫 집토끼(수출)를 놓칠 수 있다"
정부가 수출과 내수의 균형발전을 내세워 환율하락(원고)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가운데 자칫 내수부양에 집착하다가 일본 장기불황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외환당국이 잦은 구두개입을 통해 달러당 1,020원 방어선을 어렵게 사수하고 있지만 과거와 달리 사실상 원고 현상을 용인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이유도 내수 위주의 성장동력 회복이라는 거시정책에서 비롯되고 있다.
일본의 불황 사례는 현 시점에서 시사적이다. 30년 된 일본 장기불황의 첫 단추는 1985년 플라자합의였다. 당시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엔화의 평가절상을 요구했고 일본은 미국 측 요구를 받아들였다. 일본 입장에서는 수출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내수가 수출의 공백을 어느 정도 메울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1달러당 250엔대까지 갔던 엔ㆍ달러 환율은 1년 만에 150엔대로 추락했다. 엔화 가치가 급등하자 당장 일본 수출기업의 이익이 급감했다. 일본의 수출은 플라자합의 이후 33개월간 감소세를 이어갔다. 일본은 이에 따라 내수부양을 위해 잇따른 대책을 내놓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대책들은 일본 경제의 거품 양산→거품 붕괴→디플레이션으로 귀결된다. 일본 경제가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최악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 근원을 따지고 보면 플라자합의에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우선 일본 중앙은행은 채산성 악화에 따라 고전하는 일본 기업을 위해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했다. 일본 저금리 정책의 시작이다. 1986년부터 1년여간 일본의 기준금리는 연 5%에서 2.5%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기업으로 흘러가길 의도했던 돈은 자산시장에 몰렸다. 1989년 말 닛케이지수 주가수익비율(PER)은 70배로 뛰어올랐고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은 100%를 훌쩍 넘었다. 반면 기업들은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면서 일본 내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심화됐다.
재정정책에 있어서도 일본 정부는 안이하게 접근했다. 정치권의 포퓰리즘, 영구적인 재정지출 확대로 199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37%에 불과하던 일본의 정부부채 규모는 지난해 말 현재 238%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전문가들은 수출과 내수의 균형발전이 궁극적인 목표가 돼야겠지만 내수 회복세가 워낙 더딘 만큼 이를 감안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원ㆍ달러 환율이 떨어지면 원자재 수입이 늘면서 투자가 증가하고 수입품 가격이 내려 소비도 더 많이 할 것 같지만 실제 환율과 내수는 별 관련이 없다"며 "오히려 잘못하면 수출까지 망가지면서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