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필연

소설은 현실을 재구성한 세계다. 소설은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세계를 표본으로 삼지만 그것을 그대로 옮겨 놓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인생관, 개성, 취향이 밑받침된 창작의도에 따라 그럴법한 상황으로 맞추고 꾸며놓은 세계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소설이 그려놓는 세계는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존재할 법 같은 세계이며, 따라서 소설적 현실과 실제의 현실은 다르다.그런데 꾸며놓은 소설적 현실이 실제의 현실보다 더 깊은 인상과 더 절실한 현실감을 가슴에 안겨주는 까닭은 무엇일까. 소설의 세계와 흡사한 영화의 세계를 미루어 생각해 보면 좀더 분명해진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소설처럼 꾸며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실제로 경험하는 세계속의 삶에서 보다 더 진실되고 더 현실감이 진한 삶을 영화속에서 만난다. 무엇 때문일까. 여러가지 조건들이 모여서 그런 효과를 이루어놓는 것이겠지만 중요한 요소로 우연성과 필연성을 꼽을 수 있겠다. 우주의 생성문제를 비롯해서 인간세계의 사소한 만남과 헤어짐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 배후와 근저에 그것들을 이끌어가는 근원적인 힘 또는 섭리가 우연성인가 필연성인가. 그 해답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경지에서라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의 현실인 자연과 인간사회를 살펴보면 우연과 필연이 뒤엉크러져 있다. 따라서 소식이 끊어졌던 고향친구를 지하철 승강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일이 부자연스럽지 않다. 하루동안에 이런 우연과 몇차례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우연들은 인간의 삶과 세계를 해석할 수 없는 돌연적인 상황으로 인식하게 한다. 그런데 소설의 세계는 우연을 배제한다. 우연을 다루지 않을 수 없지만 우연을 중간에 돌출시키지 않고 서두에 전제로 등장시켜 우연을 필연으로 전환시킨다. 우연이 사건의 원인이 되고 그 원인이 결과를 낳으며 그 결과가 다시 다음 사건의 원인이 되는 인관관계의 질서를 형성한다. 인과관계의 질서는 필연의 질서이며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사회운동도 정치도 성공을 거두려면 설득력을 지녀야 한다. 그리고 그 설득력은 우연성을 배제하고 필연성을 획득하는 데서 비롯된다. 원인과 결과가 뚜렷한 인과관계가 밑받침된 필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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