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너희가 어린이를 아느냐

세계적으로 어린이가 존재했던 기간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부모의 양육과 보호를 필요로 하는 생물학적인 차원이 아닌, 「어린이」라는 하나의 사회적인 계층이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는 얘기다.어린이에게 나이를 세어주는 풍습은 오래 되지 않았다. 태어나서 얼마 동안은 낮은 생존 가능성 때문에 아직 살아있는 것으로 취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린이 생일 잔치는 불과 200년 전만 해도 생소한 행사였다. 중세까지 어린이는 7살이면 끝났다. 어린이가 말을 제대로 구사하는 나이가 7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세까지 사내 아이는 7살이 되면 사랑 능력과 전쟁 능력만 빼고 모든 부문에서 한 사람의 어엿한 남자로 받아 들여졌다. 어린이와 어른을 구분하는 중요한 차이점은 어른은 어린이가 알기에는 적절하지 않는 정보를 소유한다는 것이다. 중세까지 어린이가 따로 존재하지 않은 것은 어른들이 정보를 독점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는 어른들이 정보를 독점하는 좋은 방법을 제시했다. 인쇄술이다. 이에 따라 어른은 어린이를 부모나 교사의 감시 아래 책 공부에 묶어 두고 정보를 제한할 수 있었다. 20세기 들어 등장한 TV는 어린이와 어른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TV 때문에 어른은 정보를 독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어린이에게 적절하지 않는 프로그램에 매기는 12·15·18 따위의 숫자(나이)는 오히려 어린이가 갖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표가 되어 버렸다. 이것은 어린이의 순진성이 사라졌다는 단순한 사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TV에 나타나는 욕설·폭력·음란 행위·알코르 중독·마약 복용·근친 상간 같은 부적절한 정보를 어린이가 잠깐 엿본다는 사실을 훨씬 초월한다. 실제로 이같은 TV 프로그램에 노출된 어린이의 사춘기 연령이 빨라지고 있다. 여자 어린이의 월경과 남자 어린이의 몽정이 빨라지고 미혼모의 나이가 갈수록 어려지는 것이다. 「빨간 마후라」도 마찬가지다. 어린이가 사라지고 있다. 인쇄술 때문에 어린이가 등장했다면 TV 때문에 어린이가 사라지는 것이다. 청소년 범죄를 화장실에 숨어 담배를 피우는 여드름 많은 일부 문제아가 일으키는 사건으로 생각하는 것은 과거의 순진한 낭만이 됐다. 컴퓨터는 어린이가 어른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게 만들었다. 인터넷으로 미국 국방부의 컴퓨터에 들어가 해킹을 하고, 컴퓨터 바이러스를 뿌려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다. 범죄인 줄도 모르는 어처구니 없는 장난이다. 이뿐 아니다. 히틀러를 흉내낸 비밀 결사조직을 만들어 총기 난동을 부리고, 「천국의 문」처럼 황당한 미신에 빠져 엄청난 사건을 저지른다. 그들은 이제 어른도 모르는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수단을 가졌다. 정보의 역전이 일어난 것이다. 어쩌면 총을 쥐는 것보다 더 위험하지 않을까? 이제 사이버 키드(CYBER KID) 세대는 당돌하게 기성세대에게 물을 것이다. 너희가 인터넷을 아느냐? /許斗永 차장(기획특집팀) HUHH20@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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