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기업의 것은 기업에게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해님달님'이란 전래동화에 나오는 한 대목으로 모두들 잘 아시겠지만, 떡 장수 어머니가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 야금야금 떡을 뺏기다 결국 잡아 먹히고 말았다는 얘기다.

어릴 적 들었던 이야기가 문득 생각난 이유는 요즘 정부가 '착한 행동'을 요구하면 기업이 꼼짝 못하고 순응하는 게 흡사 떡 하나씩 빼먹는 듯한 모양새여서 왠지 뒷맛이 개운치 않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주창하는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에 동참하겠다는 기업들의 다짐이 줄을 잇고 있다.

삼성은 미래기술 육성을 위해 대학과 중소 및 벤처기업, 연구소 등의 기초과학과 소재기술,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연구에 1조5,000억원을 투자하고 박근혜 정부 5년간 5만명의 소프트웨어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현대차는 박 대통령의 방미 직전 연간 6,000억원 규모의 광고, 물류 분야 일감을 중소기업에 배정한다는 계획을 발표해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 실천의 분위기를 띄웠다.

LG그룹은 연간 4,000억원의 내부일감을 중소기업들에 개방했고 SK는 내부일감 거래를 14% 줄이고 연말까지 비정규직 5,8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기업들의 '착한 행동'은 정부와 정치권의 압박과 맞물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고 있다. 청와대는 창조경제와 동반성장을 강조하고 여야가 경제민주화 입법 드라이브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기업들이 보조를 맞추는 식이다.

'정부 압박->기업 순응' 공식화

특히 최근 총수가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CJ그룹을 보면서 '압박->순응'공식이 굳어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한다. '대한민국 창조경제를 응원합니다'라는 CJ의 광고와 아르바이트직원 1만5,000여명을 정규직 시간제 사원으로 전환하겠다는 갑작스런 발표를 접하면서 "다음은 또 누가?"라는 자조 섞인 물음을 던지는 재계 인사들이 적지 않다.

기업의 선행은 옳은 일이고 바른 방향이다. 착한 기업이 많아지면 부자에 대한 반감이 줄어들고 기업과 제품의 가치를 높여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모두에게 유익하다. 바로 그 점에 착안해 경영학의 구루로 불리는 마이클 포터는 '공유가치창출(CSVㆍCreating Shared Value)'이란 개념을 통해 기업이윤 극대화를 위한 전략 내에서 사회적ㆍ환경적 가치를 통합하는 경영이론을 정립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에도 착한 기업이 많아지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뭔가 께름칙하게 느껴지는 것은 지금 경제여건과 기업들의 여력이 그럴만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렇게 기업들이 갑자기 선행에 많은 힘을 쏟아 부으면서도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혹시 잘못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얼마 전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우리 경제가 끓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서서히 죽어가는 상황에서 정치권은 기업 활동을 규제하는 법안들을 쏟아내고 있다"며 '포퓰리즘 경제입법 중단을 촉구하는 교수ㆍ대학생 선언'을 발표한 것이 바로 그 예다.

더 큰 문제는 기업의 선행이 기업이미지 개선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창조경제와 동반성장을 위한 기업들의 실천이 검찰 수사 등 공포 분위기 속에서 갑자기 늘어나다 보니 '기업이 착해서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겁을 먹어서 마지못해 나서는 것'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ㆍ기업인 겁주기 그만둬야

심지어 선행은 기업이 하고 생색은 정부와 정치권이 내는 웃지 못할 현상까지 생기고 있다. 그러니 지금 우리 사회의 착한 기업 신드롬은 궤도를 벗어나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선행도 기업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해야 착한 기업 활동의 궤도를 바로잡을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기업의 선행을 압박하는 것, 기업의 선행을 자신의 덕인양 과시하는 것은 명백한 부당행위이므로 바로잡아야 한다. 기업의 것은 모두 기업에 돌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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