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연금 특권층과 하층민


"공무원연금이 잘 돼서 제가 퇴직한 후에 탈 사학연금도 덜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008년 10월 행정안전부가 주최한 공무원연금제도 개선 공청회에서 국민대 M교수가 사회를 보며 내뱉은 말이다. 솔직하지만 부적절한 '망언'이었다. M교수의 희망대로 행안부가 기존 공무원들의 기득권을 최대한 보호한다는 목표 아래 마련한 모순투성이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은 원안대로 국회에 제출됐고 이를 답습한 사학연금법 개정안도 그 뒤를 따랐다.

행안부는 이해당사자와 대타협을 이룬다는 취지를 내세워 공무원노조 측이 구성원의 반을 차지하는 위원회를 만들어 노사협상 방식으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당시 10년 이상 재직자가 받는 첫 연금이 한 푼도 깎이지 않게 된 이유다.

혈세로 지탱 공무원연금 개혁 외면

국민연금은 '그대로 내고 덜(최고 33%) 받는' 개혁을 했고 모든 가입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됐다. 하지만 공무원연금은 10년 이상 재직자가 받는 첫 연금은 같거나 1만~2만원 깎이는 수준에서 그쳤다. 당시 행정직ㆍ교사ㆍ경찰 등 총 재직 공무원 103만명 가운데 68%가 공무원연금제도 개선에 따른 불이익을 거의 받지 않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국민은 노후에 300만원 이상의 공무원연금을 받는 특권층, 120만원 이하의 국민연금을 받거나 그것도 없어 정부에 손을 벌려야 하는 대다수 하층민으로 나뉠 수밖에 없다.

공무원 등에 대한 특혜는 국민의 혈세를 통한 적자 보전으로 이어진다. 공무원ㆍ군인연금 적자액은 2013년 3조2,800억원에서 2018년 8조6,000억원, 2023년 15조5,000억원으로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불과 10년 만에 재정 부담액이 5배 가까이 불어난다는 얘기다. 2030년에는 30조원을 넘어선다.

양대 연금은 낸 보험료의 1.7배를 받아가는 국민연금과 달리 수령액이 최대 3배 많은 구조를 갖고 있다. 양대 연금의 적자는 고령화 추세와 맞물려 해가 갈수록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만큼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부담도 커지고 있다.

2009년부터 공무원연금ㆍ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간 연계제도가 도입된 것도 향후 공무원연금 등에 대한 적자 보전 규모가 커지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한다. 연계제도 도입으로 20년 미만 공무원 재직자들이 퇴직할 때 연금 대신 받던 퇴직일시금이 사라져 단기적으로는 정부 부담이 줄지만 나중에 재직기간만큼 공무원연금을 받게 되면 정부의 적자 보전 규모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는 공적연금 연계제도 시행으로 2030년 16만여명, 2050년 54여명이 추가로 연금 수급자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공무원연금 수급자가 34만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다.

공무원연금제도 개편 과정을 지켜본 기자의 머릿속에는 "공무원ㆍ교수 등 공무원ㆍ사학연금 가입자들이 국민연금까지 재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국민연금제도 개편안을 마련하는 위원회도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마련할 때처럼 위원의 절반을 국민연금 가입자와 사용자단체의 몫으로 배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그게 아니라면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 개혁을 동시에 진행하고 국민연금 가입자인 상당수의 금융전문가 등이 개혁안 마련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

만만한 국민연금만 손보자 할건가

대선을 앞두고 있어 아직 본격화되지는 않았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면 국민연금제도 개편을 둘러싼 논쟁이 또 시작될 것이다. 1988년 제도 도입 이후 1998년, 2007년 두 차례의 연금개혁을 통해 연금 급여액이 크게 깎인 국민연금 가입자 입장에서는 '공무원연금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안 하면서 또 만만한 게 국민연금이냐'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틈만 나면 수십년 뒤 국민연금 재정위기가 닥칠 것이라며 국민연금제도 개편을 주장하는 정부와 학자들은 이미 위기가 닥친 공무원ㆍ군인연금, 국민연금보다 훨씬 빨리 위기를 맞을 사학연금에 대해서는 숨기고, 가리고, 입도 뻥긋 안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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