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누르고 조급하게 안정을 되찾으려는 시도는 도움이 안됩니다. 분노를 주변 사람들과 대화로 표출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올바른 치유방법입니다."
한국심리학회 재난심리위원인 금명자(54·사진)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 사고 피해자는 물론 국민들이 가지는 분노는 자연스러운 심리상태로 성급하게 안정과 회복을 바라는 것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은 빨리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도, 돌아가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며 "특히 사고 피해자나 생존자들은 쇼크 상태라는 것부터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찍 심리치료를 병행해야 한다는 일부 여론에 대해서는 "치료는 적어도 사고 후 6개월, 1년 이상을 지켜본 후 실행해야 한다"며 조기치료 논의에 우려를 나타냈다.
금 교수는 "특히 희생자 가족과 생존자에게 뭘 질문해서도, 요구해서도 안 된다"며 "제대로 먹고 자도록 살펴보고 지켜보는 게 주변 사람들이 우선 할 일"이라고 말했다.
재난사고 경험자나 가족들은 1단계로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의심·부인의 심리상태를 거쳐 2단계로 분노, 그리고 스트레스 정도가 심해지면 우울 단계로까지 발전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분노의 감정을 억누르려는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주변 사람들은 사고 피해자나 가족이 자신을 해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관찰하고 심리전문가와 연결시키는 중간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금 교수는 사고 피해자들의 심리회복은 길고 긴 싸움이라고 설명했다. 정신적 충격은 보통 6개월까지 가고 6개월을 넘으면 급성 스트레스 장애를, 증상이 1년 정도 지속된다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진단하게 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자연재해·교통사고·테러 등 사고를 겪은 뒤 발병하는 정신질환인데 사고를 직접 경험한 사람은 물론 사고를 당한 친구나 가족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도 겪을 수 있다.
그는 참사를 지켜본 국민들도 넓은 의미의 '생존자'라고 정의했다.
금 교수는 "화가 나는 감정에 대해 서로 공감하고 애도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할 것"이라며 "다만 '화 나는 것'과 '화 내는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화 나는 것'은 수용해야 하지만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폭발한 분노는 흥분의 상태를 의미하고 합리적 생각을 방해한다"며 "분노나 죄책감이 폭력적으로 분출하지 않도록 서로 지지해주고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난사고 예방과 초기 인명구조의 실패와 같은 정부의 시스템 부재는 재난심리 대응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금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사고가 터지면 각종 심리치료 관련 대책팀들이 만들어지는데 여전히 심리전문가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는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심리학회 재난심리위원회는 사고 후 구성한 비상대책위를 운영하고 있다. 심리상담사 자격증 보유자 등 상담요원들을 특별교육시키고 경기도교육청·대한적십자사와 파견지·규모 등을 협의하고 있다. 이미 450여명의 상담요원 교육을 마쳤으며 긴급전화를 설치 완료해 피해가족이나 주변인들은 심리학회(02-567-0103)나 적십자사(02-3705-3700)로 문의·상담이 가능하다.
금 교수는 "비대위는 상담요원들에게 사고 피해자에 대한 심리 접근방법을 중점적으로 교육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주변인들이 인내를 가지고 지켜봐주고 피해자가 서서히 극복할 수 있는 환경조성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난사고에 대비한 정부 차원의 심리대책 기구를 상설화하는 것도 앞으로의 숙제"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