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투자실패' 결과인 기업 현금탑, 규제혁파로 허물라

대기업의 현금보유가 '현금탑'에 비유될 만큼 비정상적으로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월 말 현재 공기업을 포함한 전체 기업이 내부에 보유한 현금이 503조원에 이른다. 지난해에 비해 27조원이나 늘었다.

대표기업인 삼성전자만 하더라도 지난해 말 54조5,000억원의 현금을 보유해 전년 말의 37조4,500억원에 비해 17조500억원이나 증가했다. 올해도 이변이 없는 한 20조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규모뿐 아니라 증가속도까지 지나치게 빨라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등 현대차 3총사도 같은 기간 5조원 늘어난 35조원의 현금을 보유했다. 투자의 배출구를 찾지 못한 채 쌓여가기만 하는 현금탑은 우리 대기업들이 돈을 비축해두고 경영환경 변화에 대비했다기보다 '투자기회 포착 실패'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입증해주는 대목이다.

물론 기업 측은 인수합병(M&A)이나 대규모 개발사업 등 투자기회를 원천 봉쇄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칸막이 규제를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하지만 기업 스스로도 투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 대기업들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나타난 미국 기업들의 투자기피 증세를 닮아가는 형국이다. 최고경영자(CEO)들은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고 있음에도 그에 걸맞은 개척정신을 발휘하지 못하고 보신주의에만 매몰된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 나올 만하다.

전망도 좋지 않다. 가계와 공공 부문이 2,000조원을 넘는 부채를 안고 있어 추가 유효수요를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대기업의 투자가 필수적이다. 정부는 기업의 현금을 이끌어내는 방법으로 현금투자 장려나 배당유도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기업들이 투자에 나서지 못하는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 보다 적극적으로 규제의 빗장을 풀어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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