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혁신 금융·디즈니가 위기의 '마블' 구해냈다

B급 캐릭터들 담보로 메릴린치, 5억달러 투자
아이언맨 등 영웅 탄생
"장래성 있다" 캐릭터 사들인 디즈니 선견지명도 한몫



미국에서 개봉한 지 3일 만에 1억달러에 가까운 수익을 올린 캡틴아메리카 흥행과 어벤저스2 한국 촬영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마블엔터테인먼트의 성공 스토리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한때 파산까지 갔던 마블의 부활 배경에는 B급 만화 캐릭터들을 담보로 5억달러를 빌려주는 미국의 혁신적인 금융 시스템과 마블을 인수하고도 영화제작에 자율권을 보장한 디즈니의 노하우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최신호에서 'B급 영웅들의 마블 구하기'라는 제목으로 마블의 재기 스토리를 커버스토리로 자세히 소개했다.

만화책 전문 출판사로 지난 1940년대 설립된 마블사는 만화책뿐 아니라 헐크·스파이더맨·엑스맨 등의 주인공들을 앞세운 TV 시리즈로 호황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출판만화 시장이 위축되고 난 이후에는 보유하고 있는 스파이더맨·엑스맨 등의 캐릭터를 폭스·소니 등의 영화사에 라이선싱해주면서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천수답식 수익구조로 인해 급기야 1989년에는 파산보호신청을 하기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엑스맨과 같은 알짜 캐릭터들은 남의 손에 넘어가고 한물간 캐릭터들만 회사에 남게 됐다.

위기에 처한 마블을 구한 '히어로'는 다름 아닌 마블사가 수십년간 만화책을 내면서 쌓아둔 캐릭터들이었다. 물론 A급은 아니었지만 주요 인물 숫자만 해도 8,000여개, 주변 인물까지 하면 1만개가 넘는 마블사의 캐릭터는 그들만으로도 하나의 우주인 '마블 유니버스'를 이룰 정도로 무궁무진했다.

그러나 그 자체만으로는 별 수익을 내지 못하던 마블사의 캐릭터들을 전세계 영화계를 휩쓰는 영웅으로 살려낸 데는 미국의 혁신적인 금융 시스템이 큰 역할을 했다. 방대한 캐릭터를 활용해 자체 영화제작에 나서려는 마블에 투자한 곳은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IB)이었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뱅크오브아메리카로 넘어갔지만 당시만 해도 미국 1·2위를 다투던 대형 IB였던 메릴린치는 마블의 캐릭터들을 담보로 2005년 5억2,500만달러를 빌려줬다. 이 자금은 마블스튜디오 설립의 종잣돈이 됐다. 이후 마블스튜디오는 캐릭터 고유의 특성은 살리되 최근 트렌드에 맞게 '마블 유니버스'의 영웅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아이언맨·토르·인크레더블헐크 등의 영화를 꾸준히 제작,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디즈니도 마블의 부활에 날개를 달아줬다. 미키마우스·백설공주·라이언킹과 같이 생명력을 다한 캐릭터 때문에 고민 중이던 디즈니는 장래성 있는 캐릭터의 저작권을 보유한 스튜디오들을 대거 사들이는 중이었다. 캐릭터는 바로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디즈니는 2009년 40억달러에 마블을 인수하면서도 대신 영화제작 시스템에는 손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마블사는 최고경영자(CEO)뿐만 아니라 만화가까지 참여하는 6인의 '크리에이티브 위원회'에서 영화제작의 큰 방향을 정한다. 마블사에서 결정하면 디즈니는 사후 승인하는 식이다. 만화가까지 영화제작에 참여하는 창의적 시스템은 마블에 맡겨두고 디즈니는 테마파크, 캐릭터 사업 등의 부대사업으로 막대한 부가가치를 챙겼다. 디즈니의 자본이 결합되면서 영화제작 규모는 커지고 수입도 극대화됐다. 디즈니 인수된 후 제작된 아이언맨3·어벤저스는 각각 15억달러와 12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디즈니는 이들 캐릭터를 활용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마블사의 무궁무진한 스토리는 끝나지 않았다. 올여름 마블의 신세대 영웅들이 단체로 출동하는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가 개봉될 예정이며 어벤저스2도 내년 흥행몰이를 예고하고 있다. 케빈 페이지 마블 CEO는 "마블의 영웅 캐릭터들를 활용해 만들 영화에 대한 계획을 이미 오는 2028년 제작분까지 세워놓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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