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주의(Unilateralism)에서 비롯된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 이제 미국에 국제주의(Internationalism)로의 회귀를 강요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미국이 5월1일 이라크전 종전을 선언한 후 이달 26일까지 미군 사망자(139명)가 전쟁 중 사망자(138명) 규모를 넘어서자 미 원로 정치가들과 민주당은 일방주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으며 부시 행정부 내에서는 이라크 문제 처리를 둘러싼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런 비판을 외면하고 초조감을 억누른 채 일단 중단 없는 대 테러 전쟁을 외치고 있지만 이에 귀 기울이는 미 국민은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26일 바그다드에서 미군 1명이 숨져 이라크가 미국의 수렁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고조되자 부시 대통령은 세인트루이스에서 재향군인회 총회 연설을 통해 “테러 앞에서 뒷걸음질은 더 많은 테러를 부를 뿐”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우리는 새 개념의 전쟁을 채택했으며 어느 나라도 문명과 혼돈 사이의 중립지대에 남아 있을 수 없다”며 예의 `이분법`과 선제공격전략의 유효함을 강조한 뒤 “이라크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는 보다 많은 자원이 투입돼야 한다”며 국민에게 인내를 당부했다.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WMD)를 찾아내지 못한 그는 연설에서 대량살상무기(WMD) 문제를 거론조차 하지 못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날 미 원로 전략가들과 민주당, 행정부 내의 분위기를 상세히 전하면서 부시에 대한 공격이 날로 힘을 얻고 있다고 보도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이라크 문제에서 더 이상 미국의 일방주의적 처방이 통하지 않고 있다”며 “이제 우리는 혼자 행동할 것인지 아니면 국제사회와 함께 결정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도 “미국이 프랑스 러시아 등에 이라크 통치권 일부를 분할해주지 않고서는 추가파병을 위한 유엔 결의안을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의 이라크 전후처리 전략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드세지고 있다. 럼스펠드 장관이 추가 파병 없이 현재의 13만6,000명의 미군으로 이라크 안정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히자 존 케리, 존 메케인 민주당 상원의원 등은 “정치적 입지와 자존심만을 생각해 병력 증강이라는 군사적 판단을 무시하고 있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특히 부시 행정부 매파에서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는 신보수주의자들도 위클리 스탠더드지를 통해 “향후 위험요소는 미국이 이라크에 충분한 자원을 투입하지 않는 것”이라며 럼스펠드를 겨냥했다. 이 신문은 또 이라크 문제와 팔레스타인 문제 등을 연관 지어 중동질서 재편을 꾀하는 콘돌리사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이라크 문제를 단기적 국익차원으로만 바라보는 럼스펠드 간 이견도 크게 노정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