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증권사 등장에 각 사업분야 경쟁력 점검
NH, 자산관리·IB 강화… 한투, 인터넷銀 잰걸음
삼성, 고액자산가 집중… 현대, 부동산금융 주력
중소형사는 M&A 추진… 특화증권사 지정 경쟁
"고만고만한 증권사들이 난립하던 전국시대는 끝났습니다. 자산관리(WM), 기업금융, 기업공개, 인수합병(M&A), 트레이딩,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온라인 등 한 분야라도 1등이 아닌 증권사는 결국 사라질 겁니다."
미래에셋증권의 KDB대우증권 인수로 금융투자업계에 위기감이 확산되며 생존을 위한 증권대전이 연말부터 여의도를 달구고 있다. 자기자본 8조원 규모의 초대형 증권사의 등장은 단순히 덩치에서 나오는 파워를 넘어 인지도와 맨파워를 중시하는 금융투자업계에서 급속한 고객 쏠림을 불러올 수 있어서다.
5대 대형 증권사는 물론 국내 56개 증권사 중 상당수가 지난 22일 미래에셋이 대우증권 인수 후보로 유력해지자 긴급 임원회의를 열고 각사에 미칠 영향을 점검하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한국 증권업계가 적당히 나눠 먹는 시절은 가고 피 말리는 경쟁 속에 일류만 살아남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신호다.
현재 국내 금융투자업계 최대 자본력을 자랑하며 투자은행(IB)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NH투자증권은 미래에셋과 대우의 조합이 가시화하면 당장 IB 사업이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감이 팽팽하다. NH투자증권은 '최선의 수비는 공격'을 대응전략으로 세워 선제적 공세에 나서기로 했다. 우선 자산관리를 앞세운 미래에셋과 IB 강자인 대우가 시너지를 만들기 전에 먼저 'WM+IB' 시장에 깃발을 꽂는다는 계획이다. 자산관리 영업과 상품기획 업무를 통합하기로 했으며 확대되는 연금시장을 전담할 영업본부도 최근 신설했다. 농협은행 PE(프라이빗 에쿼티)단을 인수해 PE 본부로 확대하고 IB 사업 산하에 둬 덩치도 키우고 있다.
대우증권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신 한국투자증권은 카카오와 함께 1호 인터넷은행 출범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자산관리와 채권영업 강화를 추진하고 있는 한투는 자회사인 한국투자캐피탈 지분 100%를 모회사인 한국금융지주에 매각해 인터넷은행 사업을 위한 지배구조 정리와 실탄 마련을 한꺼번에 끝냈다. 삼성증권은 국내 최고 브랜드인 '삼성'을 앞세워 고액 자산가에 집중된 WM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윤용암 사장은 금융자산 30억원 이상의 고객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연말 경영진에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증권은 미래에셋과 경쟁하던 자산관리 부문이 대우의 가세로 밀리기 전에 '핵심 고객'을 다지는 한편 새 수익원으로 부상한 M&A 금융을 강화해 IB 경쟁력을 높일 태세다.
매각 이슈로 주춤했던 현대증권은 부동산금융 및 자산유동화 부문에 집중해 명가 재건을 꿈꾸고 있지만 유동적인 지배구조 문제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현대증권 관계자는 "노사가 재도약을 위해 협력을 강화하려는 상황에서 외부에서 큰 폭풍이 예고돼 내실을 더욱 단단히 하자는 공감대는 확산되고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내년에는 중소형 증권사 간 M&A를 통한 몸집 불리기와 구조조정이 불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이엠투자증권 인수와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을 1조7,000억원 수준으로 키운 메리츠종금증권은 3조원 이상까지 규모를 키운다는 목표로 다른 증권사 인수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지주도 자회사인 KB투자증권의 생존을 위해서는 중대형 증권사 인수가 절실해 현대증권 등을 인수 리스트에 이미 올려놓고 있다. 최근 사모펀드가 인수한 LIG증권과 리딩투자증권은 언제든 다시 매물로 나올 수 있고 이베스트투자증권과 골든브릿지증권도 M&A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는 상태다.
몸집 키우기가 쉽지 않은 중소형사나 중견 증권사는 사업 특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금융당국이 내년 1·4분기에 지정할 중소·벤처기업 특화 증권사를 놓고 대신·IBK·SK·코리아에셋 등 10여곳이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고 내년 중 출범할 헤지펀드 운용 증권사를 선점하려는 경쟁도 가열되고 있다. 일찌감치 해외 기업 IPO에 차별화된 실력을 키워온 신한금융투자는 이 부문에서 독보적 위치를 점하기 위해 최근 인도네시아 증권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미래에셋의 대우증권 인수를 계기로 '증권업 라이선스'만으로 회사를 유지하던 시대는 막을 내릴 것"이라며 "내년부터 국내 소형 증권사는 물론 외국계 증권사조차도 문을 닫거나 철수하는 곳이 속속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민구·박준석기자 mingu@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