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모라토리엄(대외부채 지불유예) 선언과 남미의 금융위기 확산이 세계경제를 압박하던 지난 8월말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빌 클린턴 미 대통령에게 선진 7개국(G7) 정상회담을 갖자는 제의를 했고 클린턴 대통령은 즉각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그후 지난달 30일 국제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G7의 공동성명이 나오기까지는 수개월에 걸쳐 각국 정상들간의 숨가빴던 막후 전화협상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번 G7 성명은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와 빌 클린턴 미 대통령간의 끊임없는 전화접촉의 산물이었다. 두 사람은 국제경제정책에 있어 서로를 굳게 믿고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 외교가들의 평이다.
처음부터 블레어와 클린턴의 생각이 맞아 떨어졌던 것은 아니었다. 두달여전 블레어는 러시아, 남미위기 등 불안정한 국제금융시장에 대처하기 위해 G7 정상회담을 통해 행동방안을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하자고 미국측에 제안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대처할 국제적인 리더십의 공백이 나타나고 있다는 게 블레어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하고 대신 지난달 2일 국제통화기금(IMF)이 외환위기국에 긴급자금을 지원토록 하는 내용의 단독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은 알맹이 없이 설익은 G7 공식회담이 금융시장에 실망감만 안겨줄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자 프랑스는 물론 한스 티트마이어 독일 연방은행 총재가 미국의 일방적인 성명 발표에 발끈하고 나서 G7 공동성명은 물 건너가는 듯 했다.
블레어는 다시 지난달 14일 클린턴에게 전화를 걸어 고든 브라운 영국 재무장관이 작성한 공동성명안을 제시했다. 클린턴은 25일 IMF의 긴급자금 지원 조항을 삽입한다는 조건으로 영국안을 받아들였다. 문제는 여타 선진국 정상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클린턴은 바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마시모 달레마 이탈리아 총리의동의를 얻어냈지만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난색을 표시했다. 결국 클린턴에 블레어까지 가세해 전화통화로 수차례 슈뢰더를 설득, 29일 지지를 얻어내 30일 공동성명을 발표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공동성명안은 새로운 국제금융체제의 대략적인 방향만 잡았을 뿐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제시하지 않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IMF의 긴급자금지원 조항의 경우, 개도국이 해당 자금을 받게되는 기준이 뭔지, 얼마나 빨리 받을 수 있는지 전혀 언급이 없다. 헤지 펀드 규제문제도 어떻게, 어느 수준으로 다룰 것인지 명시하지 않고 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재무장관이 2일 의회연설에서 『공동성명은 40년대 창설된 국제금융체제를 전면 개조하는데 첫 걸음을 내디딘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병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