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평화 더 미룰수 없다] 1-1.극한대립,누구에게도 도움안돼

“세계 각지에 투자할 곳은 많다. 굳이 노조가 강성으로 알려진 한국을 투자처로 선택할 이유가 없다.” 최근 한ㆍ일 자유무역협정(FTA)을 논의하는 양국간 재계회의를 위해 한국을 찾은 일본 게이단롄(經團連)은 “조속한 한ㆍ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해 일본기업의 투자가 시급하다”는 한국 재계의 요구에 대해 `강성노조`를 내세워 일축했다. 전투적인 한국의 노사관계는 해외자본 유치에 큰 걸림돌이다. 나아가 국가신용도 저평가에 따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자초하고 있다. 중국의 비약적인 성장, 갈수록 거세지는 통상압력 등‥. 한국은 5년, 10년후 과연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이제 `한국=강성 노조`라는 등식을 깨뜨려야 한다. 서울경제가 `산업평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시리즈를 시작하는 까닭은 단순하다. 노사가 공동 보조와 화합을 통해 성장기반을 보다 탄탄하게 다지지 않고서는 공멸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투적 노사관계로 경제는 `피멍`= 지난해 5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친 화물연대의 운송거부, 7월 철도노조의 파업, 6월 조흥은행노조의 대형 줄파업이 이어졌고, 파업기간도 좀처럼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장기화했다. 특히 현대자동차의 노사분규는 주5일 근무제 도입이 주요쟁점으로 떠오르면서 63일이나 지속됐다. 기업도 노조를 대화와 타협 보다는 강경책으로 대응했다. 기업들은 `공장을 해외로 옮기겠다`는 으름장에 그치지 않고, 법이 허용하는 손배소ㆍ가압류 등을 적극 활용하는 한편 노사분규에 대한 사용자의 대항권 강화를 정부에 촉구했다. 우리 노사는 누구의 지적이랄 것 없이 아주 최근까지도 `앞을 가린 채 마주 달리는 열차` 같았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포기하거나 기권하지 않는 한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무한 대결 구도` 속에선 대화나 타협, 화합이란 교과서 속의 수식어일 뿐이다. 최근 산업자원부의 `제조업 부문 노사분규 생산차질액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노사분규로 생긴 생산차질액은 2조4,972억원, 수출차질액은 10억5,300만달러에 달한다. 대형사업장인 현대차의 생산차질액은 1조3,852억원, 기아차는 5,544억원으로 전체 제조업 생산 차질액의 각각 55.5%와 22.2%를 차지했다. “노조 등쌀에 못견디겠다”며 해외로 떠나는 국내기업들도 늘고 있다.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지난 2000년 156억9,700만달러에서 2001년 118억7,000만달러, 2002년 100억달러 아래로 주저앉았다. 지난해 한국기업의 대중국 투자액은 44.9억달러로 전년대비 65.1%가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국에 대한 외국인투자 총액이 535.1억 달러로 전년 동기대비 1.4%증가에 그쳤음을 감안하면 `한국 제조업의 중국도피`가 절정을 향해 치닫는 모습이다. 이현석 대한상공회의소 상무는 “노조의 강성기류가 가라앉지 않는 한 제조업의 해외이탈은 앞으로도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노사 첨예대립…접점은= 극한을 향해서 치닫던 노와 사 양측 모두에서 최근 `해빙`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신임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우리 노동자들은 과도한 투쟁으로 지쳐있는 상태”라며 대화 중심으로 노사협상을 풀어나갈 것임을 시사했다.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 신임 회장도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과거와 같은 방식의 노사관계는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며 “노사가 합의해 기업이나 근로자 모두 살 수 있는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이나 미국은 노사평화를 위해 100년, 200년간 피비린내 나는 투쟁을 겪었다. 우리는 엄밀하게 말하면 민주화투쟁이 본격화했던 지난 1987년부터 이제 겨우 17년 가량 지났을 뿐이다. 한국의 노사가 화합하기까지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노사정위원회 한 관계자) 한국의 노사문화엔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것을 노ㆍ사ㆍ정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는 말이다. 관건은 해법과 시기. 다행스럽게도 최근 개별 사업장을 중심으로 화해와 협력의 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올해초 현대차는 임원정기인사를 통해 현장주의자인 전천수 사장(울산공장장)을 대표이사로 전격 발탁했다. 윤국진 기아차 사장은 최근 신임 이희범 산자부장관과의 회동도 뒤로 한 채 노조와의 대화를 최우선으로 챙겼다. 경영의 대상이 아닌 협력 파트너로서 노동자들을 대하겠다는 프嗤?군더더기 없이 보여준 실천사례다. 노조 역시 투쟁보다는 대화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기아차는 내수침체를 탈출을 위한 거리판촉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등 지난해와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아차 노조 관계자는 “지난해 격심했던 투쟁에서 노사갈등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었다”며 “올해는 대화를 통한 노사화합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노사 양측의 열린 인식이야말로 `한국식 노사문화의 접점`을 성공적으로 찾을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다. <특별취재팀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