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의 한 사무실. 사람들이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앞다퉈 매도주문을 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창문 밖에서는 거대한 항공기가 건물을 금방이라도 덮칠 듯한 기세로 다가오고 있는데도…. 지난 2001년 9·11 테러 당시 눈앞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돈 벌기에만 골몰한 월가의 탐욕스러운 자본주의를 빗댄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이다. 당시 장 카뷔가 그린 만평이 테러 희생자들을 모욕했다는 거센 비난에 휩싸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치적 메시지를 중시하는 만평은 보는 이들에게 촌철살인의 맛과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한 조각의 만평은 때로는 타성에 젖어 있는 세상을 각성시키는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프랑스 지리학자 장크리스토프 빅토르는 "민주국가에서 만평가는 웃음과 산소를 공급한다"며 "만평이야말로 가장 날카롭고 신랄한 무기"라고 갈파했다. 우리가 과거 독재 시절에 아침마다 권력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조롱하는 만평을 들여다보며 묘한 쾌감을 느꼈던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지나치게 비틀고 빈정거리다 보면 뜻하지 않게 논란을 빚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만평 대상을 성적으로 비하하고 신념이나 신앙까지도 희화화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몇 해 전에는 덴마크의 한 신문이 이슬람 예언자인 무하마드를 심지에 불붙은 폭탄을 머리에 휘감은 털보 모습으로 묘사해 문명 충돌의 위기를 불러오기도 했다. 표현의 자유라는 대전제야 지켜져야 하겠지만 타인의 신념과 금기에 대한 풍자가 도를 넘어선다면 역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샤를리 에브도가 최근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아일란 쿠르디를 맥도날드 햄버거 광고와 함께 그린 만평을 실어 논란을 빚고 있다. 난민 문제에 대한 서구사회의 무관심을 반영했다 해도 연민의 대상인 아이를 웃음거리로 삼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아무리 만평이라도 많은 이들에게 불쾌한 느낌을 안겨주는 행위는 삼가야 할 듯하다. /정상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