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역내 경제공동체인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구상이 시작부터 미국에 제동이 걸렸다.
3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는 10~11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선언문 초안에서 중국이 주장했던 FTAAP의 구체안이 모두 삭제됐다고 보도했다. WSJ는 협상 관계자들을 인용해 APEC 정상회의 종료 후 발표되는 코뮈니케(공동선언문) 초안에서 'FTAAP의 타당성(예비) 조사 개시'와 '2025년 FTAAP 타결목표'라는 중국 측 제안이 빠졌다고 전했다. WSJ와 접촉한 관계자들은 "선언문 작성을 협의하던 지난 8월 미국 측 대표가 '미국은 FTAAP 협상 개시 신호가 선언문에 들어가는 데 대해 절대로 합의할 수 없다'며 분명한 선을 그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이 성과 없이 양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관측이다. 한 소식통은 "코뮈니케는 아니지만 부속합의서에 FTAAP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내년에도 지속적으로 논의한다는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며 "미국도 개최국 프리미엄을 가진 중국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앨런 볼라드 APEC 수석 디렉터도 "APEC에서 FTAAP에 대한 논의가 모두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FTAAP가 APEC 내에서 진행되는 다른 무역협정들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WSJ는 중국이 처음에는 미국 측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나 결국 지난달 중순 회원국에 돌린 초안에서 논란이 되는 문구들을 삭제했다고 관계자들의 말을 전했다.
FTAAP 협상의 실질적인 개시를 알리는 '타당성 조사'는 중국이 이번 베이징 APEC 정상회의에서 거둘 가장 큰 성과로 꼽혔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맞서 다소 낮은 수준이지만 TPP에서 소외된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을 FTAAP의 틀 안에 묶어두겠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중국의 전략을 미국이 순순히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관측이었다. 프레드 버그스텐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TPP가 출범하면 중국은 역내무역에서 1,000억달러(약 107조5,000억원)의 수출이 증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TPP를 견제할 수밖에 없다"며 "미국은 FTAAP가 TPP와 동시에 추진될 경우 아태지역 국가들이 교착상태인 TPP에 관심을 덜 가질 것이라는 점을 우려했다"고 지적했다.
양국 간 경제 패권다툼은 FTAAP뿐만 아니라 중국이 세계은행(WB)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의 대체 개발은행이라고 주장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서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미국은 노골적으로 한국과 호주의 AIIB 참여를 제지하며 "AIIB는 다른 개발은행의 기준을 약화시키고 중국 기업들의 수익만 챙길 뿐"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버그스텐 선임연구원은 "미국도 AIIB에 참여해 내부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며 "(미국은) 중국이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리더십을 보일 경우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거부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