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즐겁게] (원숭이이야기) 지혜로움의 상징..가족애도 극진

2004년 갑신년(甲申年)은 원숭이 해다. 원숭이는 한국을 비롯한 불교 문화권에서 지혜로움과 잔재주를 상징하고 극진한 가족애를 지닌 섬세한 동물로 인식돼 왔다. 불교문화권에서는 원숭이를 건강과 성공, 수호의 힘을 갖고 귀신을 쫓는 역할도 한다고 믿었다. 우리나라에서 통일신라시대부터 무덤의 호석(護石)으로 갑옷을 입은 원숭이 상(像)이 자주 사용된 것도 이러한 믿음과 관련이 있다. 원숭이는 새끼를 애지중지하는 습성도 있어서 고려시대에 제작된 청자나 청화백자에서 어미가 새끼를 꼭 껴안고 있는 모자상(母子像)이 자주 등장한다. 원숭이는 그림 속에서 장수의 상징이나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소재로 자주 나타나기도 한다.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작자 미상의 그림에는 천도 복숭아를 든 두 원숭이 가족이 나오고 장승업의 `송하노승도(松下老僧圖)`에는 스님을 보좌하는 원숭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원숭이는 한국 문화 속에서 지혜로우면서도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약점`을 지닌 동물로도 인식됐다. 사람을 꼭 빼 닮고 간사스러울 정도로 흉내를 너무 잘 내 한국에서는 종종 기피동물로 여겨졌다는 게 민속학자들의 설명이다. 한국인들이 원숭이띠가 아닌 `잔나비띠`로 부르는 관행은 그 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것. 속담이나 구비문학과 탈춤 등 한국의 민속문화 속에 나타나는 원숭이는 크게 `빨간 엉덩이`로 대표되는 신체적 특징을 담고 있거나 잔꾀, 재주 등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다. 술을 많이 마셔 얼굴이 붉게 된 사람을 두고 `원숭이 낯짝 같다` `원숭이 볼기짝 같다`는 속담이 생긴 것이나 능숙한 사람도 자만하면 실수하기 마련이라는 의미로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속담이 생겨난 것이 그 예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 어두워 일을 그르치는 것을 뜻하는 고사성어 `조삼모사(朝三暮四)`에서도 잔꾀를 부리지만 결국 어리석음을 벗어나지 못하는 원숭이가 주인공이다. 원숭이는 봉산탈춤과 강령탈춤, 양주별산대놀이 등 탈춤에도 등장한다. 봉산탈춤의 경우 넷째 마당 노장춤에 원숭이가 등장하지만 여기에서는 음란한 동작으로 소무(小巫)와 함께 춤을 추다 쫓겨나는 역할을 한다. 탈춤에 등장하는 원숭이들은 인간의 외설스럽고 음험한 인간의 행동을 흉내내는 역할로써 인간들의 비행을 풍자와 해학으로 묘사한다는 게 민속학계의 설명이다. 원숭이의 구슬픈 울음소리도 한국 고전 시가나 문학에 자주 묘사된다.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將進酒辭)` 가운데 “한잔 먹새근여… 곳 것거 산노코 <박태준기자 jun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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