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대재앙] 2부. 인구강국으로 가는 길 <3>기업, 뒷짐을 풀어라

일·육아 병행 가능한 '가족친화적 직장문화' 정착 시급
직장내 탁아소 전국 1% 불과… 사기업 여성 혜택 거의 못 받아
육아휴직제도 등 활용도 높여 출산 장려… 근로환경 조성해야


지난 1월 한 정보기술(IT) 중소기업에 취직한 이모(32)씨는 7개월 만인 최근 직장을 그만뒀다. 2년 전 아이를 낳은 뒤 큰 마음을 먹고 재취업했지만 육아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어 눈물을 머금고 사표를 썼다. "친정 아버지가 편찮으셔 신세를 지는 것은 꿈도 못 꿔요. 어린이집에서는 적응을 잘못하고 그렇다고 육아 도우미를 쓰자니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고…." 아이를 워낙 좋아해 둘째를 갖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지금 남편 벌이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직장 내 어린이집이 있으면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그런 직장을 얻는다는 것은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하다. 저출산 문제 해결에는 가장 먼저 국가가 나서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큰 힘이 되는 것은 다름아닌 기업이다. 여성들의 사회진출 욕구가 갈수록 높아지고 교육비 등 육아비용이 과거와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높아지는 상황에서 여성이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것은 인구문제 해결의 열쇠다. 출산 후에도 의지만 있으면 손쉽게 취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회사에 다니면서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경우 출산의지가 높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직장 탁아소는 전국 1%'=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이 사내 보육시설이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전체 보육시설 3만3,499개 중 직장 보육시설은 고작 350개로 1% 남짓할 정도로 현실은 열악하다. 상시 여성근로자 300인 혹은 상시근로자 500인 이상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 해당하는 기업 533개 중 보육시설을 설치하거나 위탁한 곳은 180개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보육수당을 지급하거나 아예 설치를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정부청사나 공기업 등 공공 일터를 제외한 사기업 직장인이 직장 내 어린이집 혜택을 누리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서울지역 총 38개 직장 내 어린이집 중 사기업 어린이집은 17개에 불과하다. 비용부담이 크기 때문에 기업이 선뜻 나서기 힘들다는 게 이유다. 복지부가 지난해 처음 실시한 '가족친화 우수기업' 인증을 받은 기업이 단 14곳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기업이 저출산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킨다고까지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남성중심적 직장문화 바꿔야"=과천 정부청사에는 유난히 임신한 직원이 많다. 직장 내 보육시설이 잘돼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법이 정해놓은 대로 육아휴직을 눈치보지 않고 쓸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출산 후 석 달 만에 회사에 나와 격무에 시달려야 하는 직장과 1년간 휴직한 뒤 나와 보육시설을 활용할 수 있는 직장은 출산에 대한 의지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지난 2007년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산전휴가를 잘 보장하는 직장 여성의 출산율(81.6%)이 그렇지 못한 회사 여성의 출산율(27.3%)보다 3배가량 높았다. 노동부가 조사한 지난해 육아휴직 사용 근로자 비율은 42.5%. 2006년 27.9%, 2007년 36.3%보다는 높아졌지만 여전히 여성이 육아휴직을 챙기기에는 넘어야 할 벽이 많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업의 양육에 대한 몰이해와 여성의 지나친 양육부담은 결국 여성들의 출산기피를 초래하는 원인"이라며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같은 모성보호정책이 현실적으로 잘 적용되지 못하는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들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지만 이른바 '가족친화적' 직장문화가 정착되도록 기업이 스스로 나서 노력해야 저출산 문제의 현실적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끝없는 야근과 반복되는 잔업이 근로자의 '미덕'인 우리나라 직장에서 아이를 위해 일찍 퇴근하는 것조차 '배부른 일'로 치부되기 일쑤다. 최숙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출산과 육아 문제를 가정에만 돌리기 때문에 정부의 저출산대책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이라며 "육아휴직제도 활용도를 보다 높이고 파트타임 근무 및 탄력근무제를 확산해 근로환경 자체가 가족친화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