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일류(日流)가 범람하는 진짜 이유

“엔저(低) 때문에 대일 수출기업들은 ‘피 말리는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천원숍 ‘다이소’로 유명한 다이소아성산업의 안웅걸 이사는 “엔화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일본 다이소에 수출하는 한국 협력업체 숫자가 지난 2005년 800개에서 현재 250개로 급감했다”며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2년 전만해도 절반 이상(55%)이 ‘메이드 인 코리아’로 채워졌던 일본 다이소 매장 내 한국산 비중이 30% 수준으로 떨어지는 사이, 국내 380개 다이소 매장에 깔리는 일본 상품숫자는 전년대비 100%나 급증했다”고 덧붙였다. 조만간 사상 최고치인 300억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대일(對日) 무역적자의 실태가 피부로 와 닿는 대목이다. 천원숍 다이소뿐만 아니라 최근 국내 유통가는 ‘일류(日流)의 물결’로 출렁이고 있다. 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은 일본산 된장ㆍ술ㆍ조미료들로 넘쳐난 지 오래고 드러그 스토어ㆍ편의점 등에서도 캔음료와 샴푸ㆍ기저귀는 물론이고 이쑤시개까지 일본산이 판매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일본 패션상품의 국내 잠식도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롯데닷컴은 지난달 일본 마루이백화점과 손잡고 일본 패션상품을 집중 소개하는 구매대행몰 ‘도쿄홀릭’을 오픈했고, 옥션ㆍ엠플에서도 ‘일본판 리바이스 청바지’ ‘버버리 재팬’ 등 일본 패션 인기가 급상승 중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통가를 달구던 ‘한류(韓流)쇼핑’ ‘한국원정쇼핑족(族)’ 등의 단어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식품ㆍ생활용품ㆍ패션 등 전방위로 일본상품이 범람하고 있다. 대일수입이 기술ㆍ부품ㆍ소재산업에 집중됐던 예전과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다. 하지만 일류의 확산을 엔저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변명이 궁색한 이유가 있다. 최근 아이를 가진 엄마들은 유독 일본상품을 선호한다고 한다. 일본산 기저귀ㆍ과자ㆍ장난감 등은 품질을 속이지 않고 유기농ㆍ친환경 등 믿을 수 있는 원료를 사용해 안전하기 때문이란다. 일본패션의 인기도 단순히 가격경쟁력에서만 찾기 어렵다. ‘히어로’ 등 ‘일드(일본드라마)’ 열풍이 홍보역할을 톡톡히 한 데다 일본이 글로벌 패션 메카로 자리잡으면서 품질과 디자인 경쟁력이 더해진 결과다. 반면 국산 소비재는 여전히 가격 빼곤 내세울 게 없다. 일본에 밀리고 중국에 쫓긴다는 ‘샌드위치 무역’ 신세가 엔저를 타고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디자인ㆍ품질 개발을 통해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이 엔저 때문에 중국ㆍ베트남산에 밀리지 않도록 정부 및 업계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모든 것을 엔저 탓으로만 돌리기 전에 일류의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되새겨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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