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의 국회 처리를 놓고 정부와 국회가 정면충돌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회는 동의안의 소관 상임위인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남경필 위원장을 중심으로 추가 협상 비준안을 본회의에 계류된 본협상 비준안과 묶어 외통위에서 재논의ㆍ의결한 뒤 본회의에서 병합처리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남 위원장은 이를 위해 관련 국회법 조문과 역대 비준안 처리사례 순석에 들어갔다. 특히 그는 필요할 경우 민주당 등 야당의 협조를 받는 것까지 검토하기로 해 소속 정당인 한나라당 지도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그러나 정부는 추가 협상 비준안을 따로 마련, 본협상 비준안과 별도의 비준절차를 밟기로 하고 조만간 추가 협상 비준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에 앞서 지난 8일 국무회의에서 추가 협상 비준안을 의결했다. 정부는 또 외통위 의결을 거쳐 본회의로 올라간 본협상 비준안을 외통위로 되돌려 추가 협상 비준안과 함께 처리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 지도부도 정부의 이런 입장을 적극 뒷받침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국회가 소신을 끝까지 유지하고 야당이 정부의 비준안 분리처리 방침에 위헌소송을 제기할 경우 헌법기관인 국회와 정부 간 전례 없는 다툼으로 번져 결국 헌법재판소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미국 의회에 비해 한국 국회는 FTA 협상 과정에 관여하기 어려워 불평등 비준 논란도 불거진다. ◇한 묶음이냐 VS 별개냐=국회 제출을 앞둔 한미 FTA 추가 협상안은 원래 협상안과 내용은 한 묶음이지만 형식은 분리돼 있다. 실제 추가 협상안을 보면 원안에서 한미 양국은 승용차 관세를 오는 2015년 철폐한다는 조항을 지적한 뒤 '한미 양국이 양허했음에도 불구하고 4년 후 철폐하기로 한다'고 적혀 있다. 추가 협상안을 만드는 과정과 결과물의 형식만 보면 완전한 별도의 조약이지만 원안이 없이는 추가 협상안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남경필 위원장을 비롯해 유기준 한나라당 간사 등 한나라당 일부, 야당ㆍ국회 입법조사처는 둘을 한 묶음으로 놓고 살펴야 한다는 쪽이다. 심재철 정책위의장은 11일 주요당직자 회의에서"이번 추가 협정문의 성격은 부록 형태가 아닌 독립적 서한의 형태인 만큼 국제법적으로 별개의 조약"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한나라당 지도부는 분리처리를 주장하고 있지만 외통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 가운데에는 몸싸움을 통한 강행처리에 거부감을 갖는 의원들이 많다. ◇본협상안과 추가 협상안 상충=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지적한 대로 원안과 추가 협상안은 내용이 상충한다. 추가 협정문에서는 미국의 안전기준을 준수하면 우리나라의 자동차 안전기준을 준수하는 것으로 인정하는 미국 자동차 회사의 기준을 '직전년도 2만5,000대 이하 판매 제작사'로 명시하고 있으나 기존 협정문에서 '직전년도 6,500대 초과 판매 제작사'에 대해 우리나라의 안전기준을 지키도록 한 조항이 그대로 살아 있다. 이를 그대로 통과시키면 6,500대를 초과해 판매한 미국 자동차 제작사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안전기준'을 지켜야 하지만 동시에 '미국의 안전기준'을 따라도 인정해주는 상황이 발생한다. 유기준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원래 조항과 추가 협상한 게 상호 모순되는 부분을 한목에 논의해야 한다는 게 다수의 견해"라고 설명했다. ◇한미 간 불평등 비준 논란=한미 FTA가 사실상 불평등 조약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의회가 협상 전부터 행정부와 수시로 논의하는 것과 달리 우리 국회는 사전 논의는 물론 사후에도 조약에 손 하나 대지 못하는 점 때문이다. 입법조사처는 'FTA 체결 과정과 국회의 역할 강화 필요성' 보고서에서 미국과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통상협상과정에 국민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장치가 미흡하고, 특히 국회의 역할이 극히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양국의 헌법에 따르면 미국은 FTA 체결에 따른 법 개정안을 의회가 논의하는 형식이어서 우리처럼 분리 처리ㆍ병합 처리 논란이 일지 않는다. 반면 한국 국회는 비준 동의안에 대해 찬반 여부만 묻게 돼 있다. 이 때문에 원래 협상과 추가 협상안을 묶으려고 해도 "미국의 입장이 있기 때문에(김무성 원내대표)" 어렵다는 게 정부와 한나라당의 토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