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이 만난 사람] 김석동 금융위원장

유럽사태로 세계불황 길게 갈 것… 규제 완화해 성장 에너지 키워야
금융·사회시스템 개혁 등 돈 풀기보다 구조개편 시급
우리금융 매각 작년과 달라… FI참가 등 다양한 전략 가능



김석동(59ㆍ사진) 금융위원장은 1년 전 취임 이후 언론으로는 처음 서울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유럽 사태에 대해 시장의 예상보다 훨씬 길고 수위가 높게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시만 해도 청와대 등에서 과도한 불안감을 불러 올 수 있다며 관료들의 입조심을 당부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발언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23일 서울경제신문과 다시 만난 김 위원장은 이번에도 특유의 예리함으로 유럽 사태를 분석했다. 그는 "유럽사태로 인한 세계적인 불황과 저성장 국면이 적어도 내년 이후까지 이어질 것"이라며 상당히 길게 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들도 현 상황이 상당히 어렵고 앞으로도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가 됐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 같은 불황에 대비해 현실적으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은 '규제완화'가 최적이라고 진단했다.

우리금융지주 매각을 정권 말에 다시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는 "금융지주나 사모펀드(PEF)가 좋은 재무적투자자(FI)를 참여시켜 다양한 전략을 짜서 들어올 것으로 본다"며 "지난해와 여건이 아주 다른 만큼 충분히 진행할 환경이 된다"고 자신했다.

김 위원장은 먼저 지금의 그리스 사태가 처음부터 처방을 잘못 쓴 데서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당초 그리스ㆍ아일랜드 사태가 터졌을 때 초기에 강력하게 대응해야 했어요. 유동성만 붓고 결국 잘못된 처방 때문에 사태가 지금까지 악화된 거죠. 한 국가가 아니라 여러 나라가 얽혀진 다원국가라 문제해결이 더 쉽지 않아요."

그러면서 앞으로의 유럽 사태 진로에 대해 두 가지 가능성을 나눠 설명했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면 강력한 예금인출(뱅크런)이 일어나 한꺼번에 엄청난 대가를 치르겠지만 치유가 빠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로존에 잔류하면 마치 암처럼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 스페인 등 다른 국가로 전염돼 문제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김 위원장은 그리스와 우리나라를 '돌멩이와 금가락지'라고 비교하기도 했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는 금리와 환율, 재정정책을 통해 극복했습니다. 무엇보다 정부는 민간 분야에 빚을 졌습니다. 국민과 기업들은 수입물가 부담과 고금리를 감당했고 그것도 모자라 금가락지까지 들고 나와 단합된 에너지를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는 유럽연합에 속한 국가이다 보니 금리와 환율정책을 쓸 수 없고 재정정책에만 의존하다 보니 모든 부담이 결과적으로 국가부채 문제로 귀결됐죠. 여기에 위기극복을 위해 단합해야 할 국민들은 오히려 돌멩이를 들고 거리로 나오고 있으니 '금가락지와 돌멩이'의 차이가 큰 것 아니겠어요."

돈 들어가는 것보다 규제혁파 초점

김 위원장은 불황 국면이 내년 이후에도 상당히 오래갈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적으로 불황 국면은 오래 갈 것"이라며 "신자유주의가 끝나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날 때까지는 과거에 기대했던 성장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안정화'와 '사회적 약자 배려'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가 세계 4번째로 많고 교육비 투자도 3~4번째로 많아 중장기적으로 대단한 저력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세계의 장기적 불황 국면에 우리나라가 쓸 수 있는 정책 툴은 뭐가 있을지 물어봤다.

"돈을 쓰는 것보다 구조개편을 서둘러야 합니다. 금융산업 개혁, 사회 시스템 개혁, 구조조정 등을 통해 엔진을 튼튼하게 만들어두면 폭풍우(유럽위기)가 그쳤을 때 가장 빨리 치고 나갈 수 있습니다. 성장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규제를 풀어야 합니다. "

구조개편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서비스업을 들었다.

"서비스업만 해도 애니메이션ㆍ게임산업 등은 인허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규제를 혁파해 성장에너지를 만들고 사회적 약자인 중소기업과 창업기업들을 지원하는 등 돈이 들어가는 것보다 규제완화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긴요합니다."

우리금융 인수 금융지주·PEF 짝짓기 기대

우리금융지주 매각으로 화제를 돌렸다. 굳이 안 될 것을 알면서 추진하는 이유가 뭔지 물었다. 김 위원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국내 금융시장의 폭과 깊이가 과거와 다르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회사ㆍ시장ㆍ경쟁 등 3가지를 따져보면 우리금융지주 매각을 왜 추진하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우리금융지주 내용이 좋아졌고 지난해보다 시장여건이 나으며 NH금융지주 출범과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인수로 금융지주들이 많이 형성된 상황이라는 얘기다.

누가 관심을 갖겠냐고 대뜸 물어봤다.

"다른 금융지주회사도 관심이 있을 것이고 사모펀드(PEF)도 관심이 있을 텐데 이들이 달랑 혼자들어오겠습니까. 금융지주회사와 PEF가 전략적 제휴를 할 수도 있고 금융지주회사들이 필요한 부분을 갖기 위해 다양한 재무적투자자들을 묶어 입찰에 참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PEF와 외국계 은행이 국내 은행을 인수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겠느냐고 다시 물어보았다.

"법에 분명 3년 이상 된 PEF라면 입찰에 참가할 수 있다고 적시돼 있어요. 오히려 못 들어오게 하는 게 문제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저축銀 구조조정 마무리… 먹거리 만들어 줄 것

김 위원장은 지난해 1월4일 취임한 후 14일 삼화저축은행을 시작으로 20개 저축은행 문을 닫았다. 자산 기준으로는 40%다. 저축은행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던 1년 4개월에 대한 소회를 물어봤다. 대형 저축은행 퇴출 후 예상보다 후폭풍이 덜했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저축은행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여전히 불안해한다고 전했다.

"남은 숙제는 이제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법 개정을 통해 대주주 견제장치를 확실하게 해놓는 것, 또 하나는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하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저축은행이 문제가 된 것은 과도하게 덩치를 키우고 부동산에 몰빵하고 부동산 값이 급격히 떨어지니까 사고가 난 것입니다. 영업 비즈니스 기회를 더 주기로 방침을 정한 만큼 이것을 해결하고 나면 안정기로 접어들 것이고 시장에서 상시적으로 구조조정이나 인수합병(M&A)이 이뤄질 것으로 봅니다.

현재 저축은행은 점포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대출모집인에게 7%씩 수수료를 주고 있어요. 여신출장소를 내준다던가 제한적으로 할부금융업을 허용해주는 방안을 지난해 마련했는데 늦어지긴 했지만 먹거리 마련 차원에서 계속 추진할 것입니다."

건설 등 취약업종 대책 내놓을 것

이번에는 경기불황과 함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설과 해운 등 취약업종 지원을 위한 대책을 물어 보았다.

"곧 대책을 내놓을 것입니다. 건설을 비롯한 취약 업종을 지원하기 위해 프라이머리CBO(P-CBOㆍ채권담보부증권)를 조만간 작동시키려 합니다. 지난해 설립한 PF 정상화뱅크도 더 활성화시키고 지원의 폭을 늘릴 생각이에요."

금융당국은 건설사 자금난이 심화되고 있는 만큼 당초 올해 1조원으로 계획했던 P-CBO 발행물량을 최대 2조원까지 늘리는 한편 시중은행에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채권을 일괄 인수하는 PF 정상화뱅크를 추가로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다음달 말까지 채권은행이 신용공여 500억원 이상인 기업을 대상으로 신용평가위험을 완료할 예정입니다. 특히 건설ㆍ조선ㆍ해운ㆍ항공ㆍ디스플레이ㆍ반도체 등 6개 업종에 대해 집중점검을 벌이고 있어요."

강남3구 투기지역 해제 먼저 제안

부동산 시장에 대한 대책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은 명쾌하게 답변을 이어갔다.

"강남 3구 투기지역 해제 대책은 사실 제가 먼저 풀자고 제안을 한 겁니다. 하지만 총부채상환비율(DTI)은 전혀 다른 얘기예요. DTI는 금융회사 건전성뿐 아니라 대출 받는 사람이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조치한 측면도 있어요. 못 갚을 것을 알면서도 돈을 빌려주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요. 가계부채 수준도 아직 확고한 관리가 필요하구요. "

마지막으로 김 위원장이 요즘 관심을 부쩍 기울이고 있는 서민금융에 대해 물어봤다.

"유럽사태는 취약계층에 치명상을 줄 수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저축은행ㆍ가계부채 등에 정책적 노력을 기울인 것도 이 때문이죠. 서민금융 지원기준을 좀 더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불법사금융 피해 신고자뿐 아니라 일반인도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이번 기회에 서민금융지원 체계를 손볼 계획입니다."




이젠 부실 털어서 매각… 금융지주·보험회사서 지금도 사겠다고 제안

■ 영업정지 저축銀 처리는

저축은행 구조조정이 끝나자 시장의 관심은 시장에 나올 저축은행 매물이 누구에게 돌아갈지에 쏠리고 있다. 특히 지난달 영업정지된 솔로몬ㆍ한국ㆍ미래저축은행의 경우 업계 수위를 달리던 대형업체라 인수할 경우 단번에 업계 상위권에 진입할 수 있다.

하지만 덩치가 큰 저축은행을 떠안을 후보가 마땅치 않을 것이라는 게 금융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유력한 인수후보인 금융지주회사들은 이미 지난해 저축은행을 하나씩 떠안은 상태다. 이에 대해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금도 금융지주와 보험회사가 저축은행 인수에 관심이 있다. 지금도 제안(오퍼)하는 곳이 있다"며 우려를 일축했다. 김 위원장은 "예전에 부실저축은행을 그냥 받으라 그러니까 트라우마(충격)가 생긴 것은 이해한다"면서 "이제는 부실을 완전히 털어서 주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관심 있는 곳이 있는 것"이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계약이전(P&A) 매각방식이 인수자 부담을 확실히 덜어준다는 뜻이다.

다만 건설회사와 저축은행의 저축은행 인수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그동안 저축은행이 문제가 된 것은 건설회사ㆍ저축은행이 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저축은행 업계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저축은행업 자체는 분명히 시장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또 은행이 물론 성장도 해야겠지만 사회적 책임감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은행이 신용도 높은 사람만 대상으로 영업해야 하겠느냐"며 "은행창구에서 취급 못하는 고객은 계열 저축은행이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미 저축은행을 인수한 금융지주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표정관리일 것이다. 원래 정부하고 거래(딜)하고 나서 돈을 벌었다고 떠벌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저축은행 매물이 너무 많다는 말에 "그래도 지금 나와 있는 매물의 일정 부분은 시장에서 소화될 수 있다"고 했다.

저축은행 구조조정으로 예금보험공사 재원이 고갈됐다는 얘기로 화제가 전환됐다. 김 위원장은 "현재로서는 유동성에 문제가 없지만 부담이 돌아올 것을 대비해 저축은행 특별계정을 5년 남짓 연장해야 한다"며 "지난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가 있었기 때문에 19대 국회도 이해해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또 다음달까지 예보기금에 대한 무이자 재정융자 1,000억원 출연도 예정대로 지원하고 추가 지원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내년 예산에도 정부가 추가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넣어야 한다고 요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약력

▦1953년 부산 ▦1972년 서울 경기고 졸업 ▦1978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1980년 행시 23회 ▦2001년 재정경제부 감독정책1국장 ▦2004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2005년 금융감독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장 ▦2005년 금감위 차관보 ▦2006년 금감위 부위원장 ▦2007년 재경부 제1차관 ▦2008년 농협경제연구소 대표이사 ▦2011년 금융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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