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 금융지주 '황제경영' 병 주고 약 주나

금융당국이 금융지주 회장의 '황제경영'을 막기 위해 지배구조개선안을 내놓을 모양이다. 금융지주사가 100% 지분을 가진 자회사 은행에서 지주 회장의 '대리인' 역할이나 하는 사외이사를 없애는 한편 자회사 경영에 관여할 때 경영관리위원회 등을 통해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권한을 행사하라는 게 골자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 측이 전산 시스템 교체 등을 둘러싸고 볼썽사나운 암투를 벌여온 것이 계기가 됐다. 권한행사에 따른 책임을 지라는 기본취지에는 누구나 찬성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도로 황제경영 문제가 해소될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금융지주 회장이 은행 사내외이사 인선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현행 지배구조를 만든 것이나, 이제 와서 개선 운운하는 것도 모두 금융당국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4대 천왕'으로 불렸던 금융지주 회장들의 위세에 눌려 제대로 감독조차 못한 것도 당국 아닌가.

한마디로 '병 주고 약 주는' 셈인데 약효가 잘 들을 것 같지도 않다. 회장이 금융지주는 물론 자회사의 사내외이사 인선을 좌지우지하는 마당에 금융당국의 지배구조개선안은 한계가 뻔하다. 권한 행사에 따른 책임은 당연하고 바람직하지만 효용가치는 거기까지다. 은행 자회사의 비중이 워낙 커 많은 금융그룹이 금융지주 체제를 선택할 필요가 없는데도 청와대·금융당국이 낙하산에게 회장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한 통로로 사용해온 점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금융당국은 지주회사제가 자회사인 증권사 등의 부실이 모회사인 은행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고 건전성 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황제경영과 그에 따른 회장·행장 간 갈등을 막으려면 회장의 권한행사를 투명화하는 것은 물론 '사외 공익이사' 도입도 빼놓을 수 없다. 사외이사가 회장의 거수기로 전락한 현실을 외면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은행의 자산 비중이 일정 비율을 밑도는 경우에만 금융지주 체제를 선택하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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