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日 바둑 영웅전] 갑자기 이상하게 되었다

제8보(101~116)



이창호의 선택은 실전보의 흑1이었다. 검토실의 서봉수가 예측한 바로 그 자리였다. 중앙의 백을 후수로 살려주고 상변의 큰끝내기를 흑이 해치운다는 각본 그대로였다. 그 속셈을 간파한 이세돌이 중앙을 얼른 살지 않고 백2로 딴전을 부렸다. 일종의 흔들기였다. 이렇게 되면 흑도 자존심이 있다. 얼른 살지 않고 딴전을 부리다니. 혼을 좀 내주어야겠군. 이창호는 흑3으로 추궁에 나섰다. "들여다보고 싶은 자리지요. 제일감입니다."(홍성지) 그러나 흑3은 이세돌의 주문에 말려든 수였다. 백이 2로 살그머니 올라서자 갑자기 응수하기가 난처하게 되었다. 이창호가 상상한 진행은 참고도1의 백1과 흑2였는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창호는 서둘러 흑5로 몰았지만 이세돌은 유유히 6으로 끼워넣었다. 이창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였다. 순식간에 백12까지의 바꿔치기가 일어났다. 이창호는 좌변의 흑대마가 걱정되어 흑13으로 후수보강을 했고 대망의 상변 끝내기는 이세돌의 권리가 되고 말았다. 프로라면 누구나 몸살을 하며 탐내는 그 큰끝내기. 백14. 복기 때 이창호는 말했다. "한 수간에 바둑이 이상하게 되었다. 역전패의 예감이 뇌리에 스쳤다."(이창호) 흑3으로는 참고도2의 흑1부터 두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었다. 백은 2, 4로 수습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때 흑5 이하 9로 두었으면 깨끗한 흑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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