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정부가 전격적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됐던 4대 선결조건이 결국 한미간 통상전쟁의 불씨가 되고 거꾸로 한미 FTA 협상 전반을 위협하게 됐다. 4대 선결조건 중 하나인 쇠고기 시장 재개방이 약속(?)과 달리 사실상 막히자 미측이 강력 반발, 양국간 통상마찰이 심화될 조짐이며 한미 FTA 협상 자체도 난항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우병 파동으로 지난 2003년 말 수입이 중단된 쇠고기 시장 재개방 문제는 스크린쿼터 축소,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 강화 연기, 의약품 가격인하 정책 중지 등과 함께 소위 한미 FTA 협상 출범의 ‘4대 선결조건’으로 논란이 됐다. 우리 정부가 한미 FTA를 위해 이들을 미측에 우선 양보했다는 지적이었다.
실제 올 1월 미국 쇠고기 수입재개 결정이 내려지는 등 2월 초 한미 FTA 협상 출범 선언에 앞서 4대 선결조건이 차례로 해결돼 국민적 의혹은 커져갔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도 4대 선결조건에 대한 해석을 수용한다고 밝혀 이를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4대 선결조건 중 스크린쿼터 축소와 더불어 가장 폭발력이 큰 쇠고기 수입재개가 잇따라 뼛조각이 발견돼 불발되자 미측은 FTA 협상의 전제조건이 무너진 것으로 보고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마이크 조핸스 미 농무장관은 6일(현지시간) 한국의 3차 쇠고기 통관 금지조치에 대해 “한국은 실제 (쇠고기) 교역이 이뤄지는 것은 허용하지 않으면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했다고 주장하려 한다”며 “무역대표부와 협력해 한국 쇠고기 시장을 정당하게 열기 위한 모든 가능한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며 선전포고를 했다. 검역과 관련된 안전성 문제는 FTA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미측이 지속적으로 쇠고기 수입재개 문제를 FTA와 연계시키는 것 역시 4대 선결조건과의 연관성 때문이다. 웬디 커틀러 한미 FTA 미측 수석대표는 이날 “쇠고기 문제에 있어 (한국이) 퇴보하는 것 같다”며 “미 의회로부터 FTA 비준에 대한 지지를 얻고자 한다면 쇠고기 시장의 전면적인 개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내 미 쇠고기가 국내에 들어와 판매될 것으로 예상했던 우리 정부 역시 예상치 않은 검역상의 문제가 불거져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7일 기자간담회에서 “일단 (양측이 합의한 검역) 조건대로 가야 한다고 본다”면서도 “농림부가 유연성을 갖고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한미 FTA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과 맞물려 광우병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를 가볍게 처리하고 넘길 수도 없어 정부가 미측의 반발을 순순히 수용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농림부의 한 핵심관계자는 “연이어 뼛조각이 나오는 등 수입재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은 분명 미측에 책임이 있다”며 “당장 미측의 요구대로 수입조건 재협상에 나서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농촌경제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미 쇠고기 수입재개를 둘러싼 뾰족한 돌파구가 현재로선 보이지 않아 한미간 통상마찰과 한미 FTA 협상 파행에 대한 우려는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