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캐시카우 오늘과 내일] 2-3. 성장엔진 멈추나

`아스카(ASUKA)`프로젝트. 2005년까지 초미세 가공기술을 세계 표준화하기 위해 2,000억엔을 쏟아붓는 일본의 반도체산업 육성계획이다. 2005년의 중국. 100억달러를 투입해 60여개의 반도체공장을 새로 짓는 `반도체산업프로젝트`가 완결된다. 한국의 2005년. 삼성전자가 화성에 차세대메모리공장 증설에 착수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계획은 수도권 개발제한에 묶어 물거품이 될 처지다. ◇한국 반도체, 성장엔진 꺼지나=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의 성장엔진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 2000년 이후 IT경기 침체로 우리나라의 반도체 수출은 수출액ㆍ수출비중에서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 95년 17.7%에 달했던 전체수출 대비 반도체수출 비중은 지난해 10.2%로 주저앉았고, 2000년 260억달러를 기록했던 반도체수출액도 지난해 166억달러로 급감했다. 이 같은 반도체산업의 후퇴는 IT산업의 성장한계와 맞물려 있다. 사상초유의 IT장기불황에 세계 반도체업계가 동반침체 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침체 터널을 지나면 분명 IT산업에 새 지평이 열릴 것이다. 세계각국은 미래 반도체산업의 주역이 되기 위해 차세대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미국ㆍ일본ㆍ타이완ㆍ중국 등은 반도체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삼아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반도체산업 미래전략이 빈곤하다. 정부가 성장엔진이 약해지고 있는 업계를 돕기는 커녕 각종 규제로 업계의 미래투자를 가로막기 일쑤다. ▲삼성전자의 화성반도체공장 증설 불허 ▲동부아남반도체의 첨단 파운드리공장 가동 지연 등이 대표적이 사례다. 한국의 대표적인 `캐시카우`인 반도체산업은 이렇게 안팎의 시련으로 성장 원동력을 상실하고 있다. ◇세계 각국 미래투자 앞다퉈= 반도체산업에는 영원한 강자가 없다. 머뭇거리다가는 영원한 낙오자로 처질 수 밖에 없다. 이런 현실 때문에 미국ㆍ일본ㆍ타이완ㆍ중국 등은 미래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에 국가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87년부터 10여개 업체와 연구기관이 참여, 반도체 기술ㆍ장비 연구를 하는 세마텍(SEMATECH)을 가동했다. 96년부터는 제조기술ㆍ장비개발을 위해 민관협력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국가전략으로 `아스카(ASUKA)`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11개 반도체 회사와 대학 연구소를 총동원해 2001년부터 5년간 회로선폭을 줄이는 초미세 가공기술을 세계 표준화하는 연구에 2,000억엔을 투자한다. 타이완은 `아스트로(ASTRO)`프로젝트를 2000년부터 시작했다.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이 사업에 정부가 절반의 비용을 부담한다. 윈본드ㆍ난야 등 D램업체들은 선진업체와 차세대기술 공동개발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오는 2005년까지 100억달러를 쏟아붓는 반도체산업 육성사업을 펼친다. 이 사업에 모토롤라ㆍIBMㆍ히타치ㆍ후지츠 등 세계 굴지의 반도체업체들이 참여해 2005년께는 중국에 반도체 공장이 60여개가 새로 세워질 전망이다. ◇한국은 `규제 공화국`= “정부의 지원은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발목이나 잡지 않으면 좋지요.” 업계 관계자의 불만이다. 삼성전자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화성공장에 6개의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생산라인을 증설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는 수도권 공장증설을 제한하고 있는 현행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입법예고된 `공업배치 및 공장증설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은 삼성의 공장 증설을 불허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화성공장 증설이 제 때에 이뤄지지 않을 경우 엄청난 기회상실이 예상된다”며 “정부가 대승적인 관점에서 이를 허용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동부아남반도체의 충북 상우공장의 가동이 늦어지고 있는 것도 정부가 업계의 앞길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동부아남은 97년 상우공장에 0.13미크론(1미크론=100만분의1미터)급 미세회로 공정 도입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98년 `한강수계 상수원 수질 관리 특별종합대책`이라는 법령이 제정됨으로써 설비도입이 가로막혔다. 이에 동부는 IBMㆍTI 등 선진국 반도체업체들이 도입하고 있는 `무방류시스템`으로 유해물질 배출을 막겠다며 2001년 정부에 규제완화를 건의했으나, 아직도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반도체산업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는 `국가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규제완화가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동부아남의 설비투자가 적기에 이뤄지지 않아 선점이익을 누릴 기회를 상실했다”며 “이 같은 잘못이 삼성의 화성공장에 반복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세계 플래시메모리 시장 경쟁가열 메모리 강국 코리아를 이끄는 삼성전자는 플래시 메모리분야에서도 인텔에 이어 세계2위를 달리고 있다. 플래시메모리는 핸드폰ㆍPDA 등 휴대용 기기가 확산되면서 내년 이후 세계 시장규모가 D램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최근 이 분야에서 후발주자들의 추격이 무섭다. 우선 지난 4월 미국의 AMD(5위)와 일본의 후지쓰(6위)가 합작을 통한 `삼성추월`을 선언했다. 양사는 플래시메모리를 통합하기 위한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하고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두 회사가 합쳐지면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2위업체로 뛰어오르게 된다. 세계 3위 반도체업체인 ST마이크로는 하이닉스와 플래시분야에서 손을 잡고, 삼성의 안방공략에 나설 태세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후발주자들의 추격을 멀찍이 따돌리고, 내친김에 1위업체인 인텔 추격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삼성은 오는 7월부터 경기도 화성의 12라인에서 세계최초로 12인치 웨이퍼에 회선폭 90나노(1나노=10억분의 1m)를 적용한 반도체생산라인을 가동할 예정이다. 이 공장에서는 주로 휴대폰ㆍ디지털카메라 등에 쓰이는 플래시메모리가 생산된다. 12인치웨이퍼는 기존의 8인치에 비해 면적이 2.5배 커 생산량도 그만큼 늘릴 수 있다. 또한 회선폭이 0.2미크론 줄 경우 25%정도의 비용절감이 기대된다. 삼성은 12인치-90나노 공장 가동으로 2배이상의 플래시 생산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현재 삼성과 인텔의 플래시메모리 시장점유율은 14% 대 27%이고, 인텔의 90나노 양산은 삼성에 비해 6개월가량 늦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후식 동양증권 투자분석가는 “이번 12인치-90나노의 생산라인 가동으로 삼성은 플래시메모리 분야에서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며 “이르면 올해 안에 인텔을 제치고 세계 1위(분기 순위) 플래시메모리 업체로 올라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쑥쑥크는 `파운드리` 한국은 아직 걸음마 반도체 파운드리(수탁가공)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세계 파운드리 시장규모는 2002년 102억달러에서 오는 2006년 245억달러로 연평균 20%대의 고성장이 예상된다. 메모리ㆍ비메모리를 포함한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02년 7.9% 수준에서 2006년 15%로 급증할 전망이다. 이는 반도체공장들이 큰 돈이 들어가는 공장을 짓지 않고 파운드리업체에 주문생산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핸드폰 칩을 생산하는 미국의 퀄컴처럼 공장없이 설계기술로만 한해 수 백억달러를 벌어들이는 팹리스(fabless) 반도체업체들이 약진하면서 수탁생산이 크게 늘고, 모토로라ㆍ도시바 등 굴지의 반도체업체들도 전체 생산량의 50% 이상을 파운드리업체에 넘기고 있다. 파운드리의 최강국은 세계시장의 70%를 석권한 타이완이다. 타이완은 비메모리 주문생산 위주의 파운드리를 국가 전략사업으로 집중 육성, IT산업 전반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키워냈다. 우리나라의 파운드리는 타이완에 비하면 산업규모나 정부지원 면에서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국내업체로는 동부아남반도체가 파운드리 도약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동부아남은 오는 2006년까지 1조6,000억원을 충북 상우공장에 투자해 최첨단 파운드리 생산설비를 갖출 계획이다. 또 올해 3ㆍ4분기에 0.13미크론(1미크론=100만분의1미터) 개발을 마무리짓고, 내년부터는 90나노(1나노=10억분의1미터) 공정기술을 확보할 예정이다. 동부는 ▲메이저 해외고객 유치를 통한 안정적 판로 확보 ▲CMOS 이미지센서(CIS)ㆍ고전압칩 등 주력제품 경쟁력 제고 등에도 전력을 쏟을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동부아남은 2~3년내 TSMCㆍUMC 등 세계 파운드리 1, 2위를 달리는 타이완 업체들과 본격적인 경쟁에 나설 수 있게 된다. 2005년을 흑자원년으로 삼은 동부는 세계 3대 파운드리업체로 도약한다는 중장기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이 같은 목표를 위해서는 정부 등의 도움이 필요하다. 동부의 매출규모는 1~2위 업체의 10분의 1에도 못미치는데다 각종 규제로 설비증설이 지연되고 있다. 한국반도체협회 관계자는 “타이완과 싱가포르 등은 반도체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정부가 지분참여를 포함해, 조세ㆍ금융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서 “WTO회원국인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의 직접지원은 여의치 않겠지만, 규제완화 등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성진기자 hns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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