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가 전고점 부근에서 상승세가 둔화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최근 주가 둔화를 국내 소비 침체 및 국내 투자자들의 참여 지연 등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한국 증시의 방향성은 기본적으로 글로벌 증시 환경이 결정한다는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그렇다면 글로벌 증시환경의 맥락에서 한국 증시는 이제 단기적으로 고점을 친 것인가. 이를 위해 최근 세계 증시의 몇 가지 화두를 정리해 보자.
올해 세계 증시의 랠리는 과거 어느 때 보다도 국가별 수익률 편차가 적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그만큼 미국 증시를 축으로 세계 각국의 증시가 골고루 상승했다는 이야기다. 평균 50% 상승률 주위로 촘촘히 모여 있다. 그러나 유동성의 흐름은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미국 주식형 뮤추얼 펀드의 유입액 중 미국 이외의 지역에 투자하는 이른바 `인터내셔날 펀드`의 자금 유입 비중이 90년대 이후 최고치를 보이고 있다. 즉 표면적으로는 세계 증시의 동반 상승으로 비춰지지만 자금의 흐름은 확실히 미국 이외의 자산 선호도가 어느 때 보다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국제 상품가격의 이상 급등 현상 역시 중국의 수요 증가 이외에도 달러 약세 베팅의 성격이 가세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달러화 자산 군에 대한 선호가 이번 세계 금융시장의 커다란 흐름임을 뒷바침한다.
이러한 비달러화 자산으로의 자금 이동 흐름의 핵심에는 중국이 있다. 중국 단독 펀드의 펀딩 규모가 아시아(일본제외) 펀드의 유입규모에 육박하는 점을 본란을 통해 여러 차례 지적해 왔다. 이러한 자금흐름의 배경은 장기적으로는 중국 경제와 증시의 중장기 성장 가능성과 중기적으로는 위앤화 절상 가능성을 노린 투자 행태로 보여지는데, 한국을 비롯한 여타 아시아 증시 역시 이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 증시 단기 고점론과 연관해서 흥미로운 것은 중국 경제와 증시, 그리고 최근 중국으로의 자금이동을 가장 잘 반영하는 홍콩 H주식(홍콩증시에 상장되어 있는 중국기업) 주가가 9월초 단기 고점을 형성한 것이 아니냐는 약세론자들의 시각이었다.
중국 증시를 둘러싼 약세론자들의 가장 큰 논점은 중국 경제가 단기적으로 경기 하강국면으로 진입하고 있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중국의 수입증가율은 2분기말 고점을 형성했으며 중국 경제성장의 핵인 외국인 직접투자 금액 역시 6월에 피크를 친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때마침 중국 통화당국도 긴축정책으로 전환하면서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어 주었다.
하지만 홍콩 H주식은 9월초 고점을 보기 좋게 돌파해 최근까지 큰 폭의 상승세를 이어 갔다. 또한 중국 수요의 리트머스 시험지인 철광석 수입량과 이를 운반하는 벌크선 운임이 9월 이후 미증유의 폭등세를 보인 점은 약세론자의 기존 가정을 무색케 했다. 이어서 9월 외국인 직접투자 금액 역시 재차 증가세로 전환한 점도 주목할 만한 뉴스다. 10월 들어 한국의 5일 단위 수출증가율도 견조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10월에도 이러한 흐름이 지속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주 아시아 증시는 대체로 단기 고점을 형성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추세의 붕괴 여부는 홍콩 H주식의 기존 추세 붕괴 여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현재 수준에서 약 10%의 추가 하락 이후 주가 추이가 주목된다. 9월 이후 발견되고 있는 중국 경기의 견조한 흐름이 하강 기조 내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구조적으로 강한 흐름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크게 봐서는 중국경기의 하강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문제는 타이밍이다. 단기적으로는 일단 상승추세가 아직 유효한 점에 무게를 두면서 중국 증시 동향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이정호 미래에셋증권 투자전략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