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부진을 놓고 정부와 재계가 또 한차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기업들이 투자를 안하는 것은 수익성 있는 사업을 찾지 못해서라는 것이 정부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재계는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수도권규제와 같은 규제 때문이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원인이 무엇이든 기업차원에서건 국가경제를 위해서건 투자가 안된다는 것은 불길한 일이다.
더구나 올해 경제성장이 4%도 안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면서 투자와 소비부진의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상반기 성장률이 3%니까 하반기에 5%성장을 해야 연간으로 4%성장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소비는 거의 제로증가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기업들의 설비투자도 지난 6월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투자 소비 부진속 부동산은 호황
추경예산 편성, 예산의 조기집행, 민자유치사업 등 다양한 경기부양책과 함께 저금리 기조의 유지를 위해 중앙은행에 대한 압력도 마다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갑갑하게 느끼질 만도 하다. 성장 제일주의의 개발연대가 아니라도 경제성장률은 경제성적표를 좌우하는 스타 지표이기 때문이다. 다른 지표들이 아무리 좋아도 성장률이 낮으면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사실 소비와 투자만 슬쩍 밀쳐놓으면 전체적으로 경제지표들이 크게 나쁜 것은 아니다. 고유가와 같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국제수지는 흑자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물가도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더욱 흥미 있는 현상은 불황이라는 진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강력한 토지공개념 도입이 요구될 정도로 부동산시장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7월 중에도 부동산가격은 0.8%나 치솟아 기록을 경신했다. 비록 성장률은 낮아 소득증가율은 낮아도 자산가치 기준으로는 부자가 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 경제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곰곰 생각해보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상충되는 현상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구체적으로 통상적인 소비와 투자활동은 극도로 위축되고 있는 반면에 부동산을 사들이는 활동은 매우 활발하다는 점이다. 이는 부가가치 창출을 통해 정상적인 수익을 올리는 이윤추구(Profit-seeking) 활동은 외면되고 투기이익이나 불로소득을 노리는 지대추구(Rent-seeking) 활동이 그만큼 왕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과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이윤추구 활동은 왕성하고 지대추구 활동은 최대한 억제돼야 경제가 건전한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 투기 등으로 얻어지는 불로소득이 생산활동을 통해 얻어지는 이윤을 압도하는 경제에서는 개인이나 기업은 땀 흘려 일하거나 기술개발 같은 어려운 일을 할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개인들이 은행돈을 빌려서까지 땅이나 주택구입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것은 내 집 마련이라는 소박한 꿈의 실현보다는 기본적으로 부동산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에서 기대되는 막대한 불로소득을 챙기기 위해 일상적인 소비는 얼마든지 희생할 용의가 있는 상황에서 소비가 부진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윤추구 활동 촉진하는 개혁 절실
기업들도 사정은 비슷해보인다. 막대한 잉여금을 쌓아놓고 있는 기업들은 해외투자에는 비교적 높은 관심을 보이면서도 국내투자에는 흥미를 잃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크게 이상한 현상도 아니다. 치솟는 부동산가격 등 손쉽게 돈 벌 수 있는 지대추구의 기회가 널려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도 굳이 힘든 이윤추구 활동에 매달릴 필요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수출로 수익을 올려 자사주 매입과 배당금 지급 등을 통해 주가관리를 잘하는 것이 유능한 기업인으로 평가받는 풍토라면 굳이 불확실한 사업을 벌여 마음 졸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투자와 소비부진의 늪에서 우리 경제를 회생시키는 길은 바로 우리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지대추구 활동은 최대한 억제하고 이윤추구 활동을 촉진하는 쪽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개혁의 일차적인 과제는 부동산투기를 근절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