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금의 느슨한 통화정책 때문에 전세계가 10년 후 또 다른 위기를 겪을 수 있다며 유럽중앙은행(ECB) 및 다른 중앙은행들에 비판을 가했다. 메르켈 총리의 이번 비판은 독일 국가정책의 첫번째 원칙인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조한 것이다. 총리는 이번주 진행되는 유럽의회 선거와 3개월 후 독일 총선에 대비, 자신의 정치적 지지도를 올리고자 ECB를 비판한 것 같다.
독일은 지난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하이퍼인플레이션(극단적인 물가폭등)으로 나라가 엉망이 된 아픈 기억을 갖고 있어 안정적인 통화운용을 매우 중시한다. 독일 중앙은행은 균형 잡힌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데 주력해왔으며 이는 전후 경제의 부흥에 밑받침됐다.
독일의 다른 정치인들도 오는 9월 예정된 독일 총선을 앞두고 다른 나라들의 막대한 재정지출이 물가 폭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을 해왔다. 페어 슈타인브뤼크 재무장관도 영국의 경기부양안을 ‘어리석은 케인스 주의’라고 공격했다.
경제회복을 위해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것은 분명 걱정스럽다. 이는 이번 글로벌 경기침체의 근본적 원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중앙은행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게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ECB가 그동안 지나치게 많은 일들을 너무 빠르게 해치워버렸고 재정지출을 줄여야 할 시점을 놓칠 것이라는 우려도 특별한 근거가 없다. 유로존의 향후 10년간 평균 인플레이션 예상치는 1.97%에 불과하다.
현재 유럽 경제는 수요가 매우 부족한 상태다. 독일은 가계 부문의 최종 수요를 더욱 부양, 유럽 경제를 견인해야 하지만 이는 분명 물가상승을 부추기게 될 것이다. 독일 노동자들은 다른 유럽국가들보다 높은 노동생산성을 바탕으로 더 많은 소득 증대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독일이 다른 나라들보다 임금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 높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CB가 몇몇 주요 국가들이 아닌 전체 유로존 국가들을 위한 통화정책을 펼치려면 다른 나라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독일의 인플레이션율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독일은 물론 이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겠지만 유로존 전체의 공동 이익을 위해 타협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