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말도 빙빙 돌려 어렵게 설명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려운 내용을 알기 쉽게 조리해 전달하는 이도 있다. 쉽게 설명하는 사람들은 대게 일상의 친숙한 소재를 끌어다 상황이나 개념을 풀어나간다. 예컨대 '2-1'의 정답을 수식으로 푸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사탕 두 개 중 한 개를 동생에게 주면 나의 사탕은 몇 개가 되는가'로 설명하는 식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외우기도, 그리기도(?) 어려운 한자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도 자취를 남겼고 지금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한자. 우리말을 보다 정확하게 사용하고 풍부하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한자 이해는 필수다. 문제는 어떻게 이해하느냐다. 천자문을 통해? 논어와 맹자, 한자 시문(詩文)을 통해? 책은 이런 "흥미 떨어지고 별 호응 없는" 방식보단 우리의 실제 생활과 바짝 붙어있는 소재로 한자에 접근할 것을 권유한다.
'지하철 한자 여행'은 한자와 그에 얽힌 각종 동북아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대중의 발이라 불리는 '지하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1호선'이라는 일상 소재를 선택했다. 한자로 된 지하철 1호선 역(驛) 이름을 풀이하면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그와 관련된 동북아 문화와 역사 이야기를 정리한다. 마침 오는 15일이 1호선 개통 40주년이라 그 의미가 더욱 깊게 다가온다.
1호선과 2호선이 만나는 시청역의 '시'는 시장을 의미하는 한자 '市'를 쓴다. 과거 市는 우물을 뜻하는 井(정)이라는 글자와 붙어 다녔다. 그래서 동양 초기의 시장은 市井(시정)이라고 적는 경우가 많았다. 왜 井이 붙었을까. 책에 따르면, 옛날 동양사회에서는 시장을 조성할 때 정전제(井 田制)의 토지구획처럼 일정하게 구역을 나눠 만들었다. 시장을 뜻하는 市와 정전을 의미하는 井을 붙여 市井이 됐다는 가설의 배경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같은 팍팍한 유래보다는 '사람이 삶을 이어가는 데 중요한 게 물이고, 사람이 사는 곳엔 반드시 우물이 있게 마련'이라는 생각에서 어원을 찾는다. 우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면서 장터, 즉 市井이 들어섰다는 것이다.
시청을 이루는 또 다른 한자 청(廳)에 대한 해석도 흥미롭다. 廳은 堂(당)의 다른 말로 쓰임새와 의미도 같다. 특정 건축물에서 웅장하고 그럴듯한 곳엔 室(실)보다는 堂(당)을 쓴다. 이 堂은 정정당당(正正堂堂)을 쓸 때 사용되는 단어다. 사람이 모이는 곳 중 웅장한 그곳. 저자는 "서울의 시청도 그리 당당하고, 그 안에서 공무를 집행하는 모든 공무원도 정정당당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시청 편을 마무리한다.
이처럼 책은 한자로 이뤄진 역명의 유래를 먼저 풀고, 역명을 이루는 한자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설명한다. 설명을 통해 독자는 자연스레 한국과 중국 등 동북아 역사 이야기도 접하게 된다.
저자는 "사람이 낯설더라도 그 속사정을 이해하면 한결 친근해지듯 한자도 그 안에 담긴 곡절을 알면 우리에게 바짝 다가설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의 순서를 무시하고 본인이 사는 곳, 회사와 가까운 곳, 관심 있는 역의 '이름 풀이'를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1호선으로 의미 있는 한자 공부의 첫 테이프를 끊은 저자는 앞으로 나머지 노선에 대한 정리도 출간할 예정이다. 1만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