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창조한 모험가들] (1) '대학생 창업1호' 비트컴퓨터 회장

조현정 회장 "꼭 필요한 영역서 독자 아이템 찾아라"
유사한 기술로 선두주자 따라하기는 대부분 실패
남들 가지않는 길서 혁신제품 만들어야 성공 가능



■ 신화를 창조한 모험가들 벤처의 생명은 모험이다. 수많은 벤처기업인들은 요즘같은 위기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는 신화를 창조하며 우리 경제의 버팀목으로 자리잡고 있다. 진정한 챔피온을 목표로 오늘도 현장에서 뛰고있는 벤처기업인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소개한다. "죽을 목숨을 다해서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라." "무조건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라." 26년 전 호텔 객실에 무작정 사무실을 차리고 사업에 뛰어든 '당돌한' 대학생에서 국내 대표 의료정보기업인 비트컴퓨터 회장이자 대한민국 벤처업계의 살아있는 역사로 우뚝 선 조현정(52ㆍ사진) 회장이 미래의 벤처 CEO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컴퓨터=오락기' 정도로 여겨지던 1983년 당시 대학교 3학년이던 조 회장은 평범하게 월급을 타는 직장생활 대신 창업의 길을 택했다. 단돈 450만원과 직원 2명을 데리고 아직 개념조차 생소했던 '소프트웨어' 사업을 시작한 그의 첫 사무실은 청량리 인근의 한 호텔 객실. 조 회장은 "제조업에 승부를 걸었다면 졸업 후 어느 정도 재력을 모으고 공장을 지을 능력을 갖춘 다음에야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겠지만, 소프트웨어는 PC 1, 2대만 있으면 창업이 가능했다"며 "남들이 잘 하지 않던 분야였지만 그래서 오히려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우리나라의 '대학생 창업 1호' 조현정 회장이 설립한 '소프트웨어 개발회사 1호' 기업은 그렇게 벤처기업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PC 몇 대를 앞세워 그가 뛰어든 분야는 의료정보 소프트웨어라는 매우 특화된 틈새 시장이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질병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병원의 구매수요는 유지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초창기에는 보험청구, 원무과계산 프로그램 등 간단한 프로그램으로 시작했지만, 26년간이 지난 지금 그가 설립한 회사 비트컴퓨터는 의사가 진료실에서 처방을 하면서 필요한 OCS프로그램까지 손을 뻗치는 대표 의료정보기업으로 훌쩍 커버렸다. 벤처생태계의 영욕을 줄곧 지켜봤던 조 회장은 벤처기업의 성패여부는 아이템을 선택하는 단계부터 일찌감치 갈린다며 '비타민과 아스피린 이론'을 내세우곤 한다. 비타민은 없어도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지만 해열제인 아스피린은 열이 나면 꼭 먹어야 한다는 얘기다. "아스피린처럼 모두에게 절실한 영역의 사업 아이템을 연구해서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 99년의 벤처 붐에 설립됐던 무수한 기업들이 사라져간 것도 이렇게 꼭 필요시되는 독자 영역을 찾아내기 보다 이미 성공한 모델을 따라가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사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조 회장은 "당시에는 인터넷 비즈니스와 관련해서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아이템'을 단지 먼저 생각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특허 등록을 하고 창업에 뛰어든 사람이 많았다"며 "그들 대부분이 결국은 실패의 쓴 맛을 봤다"고 지적했다. 벤처 붐만 있었지 벤처생태계 환경이 성숙하지 못한 데서 온 시행착오였다. 비트컴퓨터 역시 이로 인해 상당기간 어려움을 겪었다. 비트컴퓨터가 성공을 거두자 비슷한 유형의 의료정보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이 업체들은 벤처캐피털이 제공한 자금으로 가격경쟁에 나서면서 시장을 왜곡시킨 것이다. 이런 기업들이 대부분 사라져버린 지금도 비트컴퓨터는 굳건히 대표기업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 회장은 "유사한 기술로 선두주자가 있는 시장에서 뛰어들어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며 "후발주자는 선두주자가 간과하는 틈새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선두주자는 이미 틈새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벤처기업의 역사를 연 조 회장의 또 하나의 중요한 업적은 IT인재 육성이다. 그는 사업 초기부터 사회공헌 경영에 관심을 두고 '인재기부'라는 방식을 선택했다. 인재를 키워 산업육성에 이바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취지로 지난 90년에 설립한 비트컴퓨터교육센터는 비록 수익을 안겨다주지 못했지만 올해 졸업생이 8,000명을 넘어서는 등 IT업계 인력 양성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또 지난 2000년 20억원의 사재를 털어 만든 장학재단 '조현정재단'은 178명의 학생에게 장학금 혜택을 제공하며 훌륭한 인재를 키워 내고 있다. 조 회장은 "기업은 세금만 잘 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공헌을 위해 공익적 역할을 해야 한다"며 "가끔 다른 회사 CEO로부터 비트교육센터 출신 직원들이 일을 잘 해줘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면 벤처인으로서 더할 수 없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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