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을 돕는 얼굴 없는 천사.'
조영식(54·사진) 에스디바이오센서 회장이 후원하는 고려인(러시아 및 독립국가연합에서 사는 한국인 교포)들 사이에서 조 회장을 일컫는 별칭이다.
조 회장은 최첨단 진단시약을 만드는 기업가로 국내외에 잘 알려진 인물. 하지만 그가 고려인 동포들을 남몰래 도와온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지난 2010년 잘나가던 모기업을 외국에 매각한 뒤 큰돈을 만질 수 있었던 그는 회사 밖으로 눈을 돌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만난 것이 바로 고려인들이었다. 경기도 안산 '땟골'을 방문했을 당시 고려인 야학방을 운영하던 '너머'라는 단체를 알게 됐고 너머의 김승력 대표를 만나 초면에 도움을 주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는 "고려인들이 한국말을 모르니 고국에 와서도 막노동밖에 할 수 없다"며 "마땅한 지원도 없어 한국말을 배울 수 없다 보니 억울한 일도 많이 당한다"고 설명했다. 조 회장은 당시 김 대표에게 매달 500만원씩 3년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여기에 사무실 컴퓨터와 책상 등 집기를 마련하라고 매년 초 1,000만원씩 3,000만원을 내겠다고도 했다. 그가 내기로 한 기부액은 모두 2억1,000만원이다.
여전히 지하공간에서 야학을 열고는 있지만 같은 건물 1층에 사무실을 차릴 수 있었다. 컴퓨터도 새로 들여오고 책상과 의자도 샀다. 너머를 찾아오는 고려인들을 위해 '사랑방'도 꾸몄고 동아리도 꾸렸다. 고려인 밴드와 고려인 어린이 축구단은 조 회장과 너머가 만들어낸 결실이다.
땟골에 사는 고려인들은 누군가가 자신들을 돕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정작 얼굴을 본 적은 없다고 한다. 무엇을 해도 겉으로 잘 티를 내지 않으려는 조 회장의 성격 탓이다.
"그냥 돕고만 싶어요. 돈 낸다고 거기(땟골) 가서 이래라저래라 하면 우습잖아요. 가면 부담을 느낄 수도 있어요. 지금은 너머가 잘하고 있어요."
어린시절을 무척 가난하게 보낸 조 회장은 삶을 위한 '인프라'를 중요시한다. 본인이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장학금으로 다녔는데 그렇게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준, 이런 '인프라'를 만들어놓은 학교와 사회가 고마웠다는 것.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게 고려인 전용학교를 세우는 일"이라며 "젊은이들·어린이들이 한글을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국내와 고려인들이 많이 사는 해외 현지에서 동시에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