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학생 아버님이십니까?” 인력 파견 및 관리 기업인 ㈜NBS산업의 김남배(66ㆍ사진) 회장이 지난 99년 12월 LA인근 토렌스의 LAGC(Los Angeles Golf College)를 찾았을 때 들었던 말이다. 서울 경찰청 외사과장을 끝으로 28년 동안의 경찰 공무원 생활을 마친 뒤 우리 나이로 예순에 찾아갔던 길이었다. ‘실력을 본 뒤 결정하자’는 바람에 입학 시험처럼 라운드를 한 뒤 학생이 됐던 김 회장은 아들 뻘도 안 되는 10대, 20대의 어린 동료들과 어울려 골프 이론 공부를 했고 새벽 샷 연습도 성에 안차 원룸 숙소에서 카페트를 깔고 숏 게임 연습을 하다가 아래 위층으로부터 항의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이순(耳順)의 학생’이 됐던 김 회장은 “미국PGA시험에 합격하면 학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 길래” 6개월 만에 PGA of America의 예비 티칭 프로 1차 관문을 통과했고 실기시험인 PAT(Playing Ability Test)도 치러 112명 중 9명뿐인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금은 “논문을 내고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PGA 티칭 프로 클래스A 멤버 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다. 알음알음으로 찾아온 ‘높은 자리’의 제자들을 일주일에 2번씩 ‘비싸게’가르치고 있다는 김 회장은 “서울 인근에 27홀 규모의 골프장과 골프스쿨을 만들려고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귀국해서 차린 NBS산업 일에 티칭, 골프장 준비 등으로 매우 바쁘다”는 그는 “가르쳐 달라고 더 찾아와도 봐줄 수가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경찰 공무원에서 티칭 프로골퍼로 인생을 전환한 그의 말을 들으면서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헛 말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냥 나이만 든다고 되는 일은 결코 아니다. 그에게는 “미쳤냐는 소리까지 들었던” 결단과 추진력이 있었고 “무조건 하고 싶은” 열정이 있었다. 김 회장이 골프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70년대 후반. 성균관대 법대 58학번으로 사시에 도전하다가 경찰 간부후보생 18기로 진로를 바꾼 그는 당시 경찰학교 학생 대장으로 일하며 경찰대학 창설 준비를 위해 육ㆍ해ㆍ공사에 4주씩 파견 나갔다고 했다. 그는 “그 때 사관학교에서는 골프를 가르치고 있었다”며 “보는 순간 세계적인 추세가 될 것을 직감했다”고 했다. 그 길로 김 회장은 골퍼가 됐다. “영월, 춘천 경찰서장을 하던 80년대 후반 이진삼 당시 군 사령관 초청으로 라운드를 하면 남들은 긴장해서 미스 샷을 연발했지만 보기 플레이는 너끈히 했다”는 것이 그의 말. “서슬 퍼렇던 전두환 정권시절은 시위 진입을 하느라, 김영삼 정권시절은 공직자 골프 금지령 때문에 연습장만 잠깐씩 갈 정도”였던 그는 지방 경찰서장부터 정부종합청사 경비대장, 서울경찰청 경비1과장과 경무과장, 외사과장 등을 두루 거쳐 99년 정년 퇴임했고 그제서야 마음 놓고 골프에 매달렸다. 그 해 7월 USGTF(미국 골프지도자)한국 지부에서 주는 골프 지도자 자격증과 3급 생활체육 지도자자격을 땄다. “검도 6단에 유도, 태권도도 능하다”는 그는 “요즘도 새벽5시30분이면 산에 올랐다가 반신 욕으로 하루를 여는 등 체력에 자신 있었던 덕”이라고 했다. 이어 “그 동안 스윙을 3번 바꾸면서 스스로 터득한 것과 학교에서 배운 것, 미국PGA자격을 따기 위해 익힌 것 등 다양한 노하우를 쏟아 미국PGA무대를 호령할 선수 2명만 키워내는 것이 내 남은 꿈”이라며 아직도 끝나지 않은 도전 목표를 털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