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약이행 속도전만이 능사 아니다

박근혜 당선인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210개 공약이행 계획을 확정하고 이 가운데 164개(78%)를 올해 상반기에 실행하기로 했다. 박 당선인은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일수록 정권 초 3개월, 6개월 안에 사활을 걸고 추진해야 한다며 속도전을 주문했다. 맞는 말이다. 공약 중에는 기존 정부에서 놓친 참신하고 합리적인 것들도 적잖다.

하지만 형평성에 문제가 있고 재원조달의 지속가능성이 떨어지는 공약까지 시한을 두고 밀어붙여서는 곤란하다. 새로 도입되는 기초연금만 하더라도 인수위가 국민연금 미가입자에게 가장 큰 혜택을 주고 국민연금 보험료로 일부 재원을 충당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 벌써부터 가입자들의 반발이 만만찮다. 저소득층의 국민연금 이탈을 조장하고 정부재정 부담과 국민연금기금 고갈을 가속화할 가능성도 높다. 이처럼 완벽하지도, 충분히 검증되지도 않은 공약을 대선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무리하게 강행하면 예산만 낭비되고 국민대통합의 효과도, 정부ㆍ정책의 신뢰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박 당선인은 대선공약이든 정부조직 개편안이든 새누리당 안에서 수정론을 지적할 때마다 원안고수 지침을 내려 합리적 논의를 막고 여야 협상을 꼬이게 만들곤 한다. 정부조직 개편안 협상이 타결되기 전인데도 미래창조과학부 등 쟁점 부처 장관 내정자까지 일괄 발표해 민주통합당으로부터 "야당마저 거수기로 생각하고 국회를 통법부로 전락시키려 하느냐"는 비판까지 듣고 있다. 총리와 내각ㆍ청와대 인선도 국민대통합ㆍ대탕평 인사나 책임총리ㆍ장관제와 거리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지금 우리는 침체된 세계경제와 원고ㆍ엔저로 법인세 등 정부 세입에 빨간불이 켜지고 북핵 대처를 위한 국방예산 확대의 필요성에 직면했다. 복지재원 확보는 갈수록 살얼음판이다. 국민은 국회와 야당을 존중하고 상생을 추구하는 대통령, 이견이 큰 공약은 충분한 논의와 의견수렴을 거쳐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길을 모색하는 합리적 리더십의 대통령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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