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와 신용경색에 대한 공포가 뉴욕 증시를 짓누르고 있다. 최근 발표된 경제지표들은 하나같이 미국 경제가 침체에 이미 돌입했거나 그 징후를 강하게 예고하고 있다. 설상사상으로 금융시장의 신용 경색이 6개월째 이어지면서 새로운 부실 요인을 끊임없이 양산하고 있어 뉴욕 증시에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아시아 증시는 상당 기간 뉴욕 월가와의 동조화(커플링ㆍcoupling) 경향을 강하게 띠며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까지 12개월간 경기침체를 예상했던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1년 이상 갈 수 도 있다”며 “앞으로는 신용카드 연체와 기업 및 가계 대출 부실 등으로 지금까지 신용경색으로 금융기관이 입은 손실액 1,000억달러보다 10배 많은 부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주 뉴욕증시에서 투자 심리를 얼어붙게 만든 최대 요인은 미 경제를 지탱해주는 소비 침체가 확연해졌다는 점이었다. 추락하는 주택 가격은 바닥 확인이 한참 멀었으며, 실업률은 치솟고 제조업 및 서비스업 경기는 물론 소매 판매까지 부진한 게 미국 경제의 현주소다. 미 국제쇼핑센터(ICSC)가 발표한 지난 1월 중 소매업체의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0.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지난 70년 이후 38년 만에 최악의 실적이다. 주택 가격 하락이 일자리를 줄이고 실업자를 늘리더니만 소비자의 지갑까지 닫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소비 지표가 하염없이 추락하자 관련 주식도 곤두박질쳤다. 미 최대 백화점인 메이시의 주가는 지난주 14% 폭락, 6년 만에 주간 단위로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메이시는 1월 중 판매액이 7.1% 하락하자 사업부 통폐합과 감원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선언했다. 미 최대 신용 카드업체인 아멕스의 상황도 비슷하다. 유럽계 UBS가 투자 등급을 매수에서 매도로 강등하자 주가가 일주일 새 9.3% 빠졌다. 신용카드 연체율 급증과 대출 감소가 투자 등급 하향 조정의 배경이다.
서비스업 경기도 사실상 침체 국면에 돌입했다. 미 공급관리협회(ISM)가 발표한 1월 서비스업지수는 41.9를 기록했다. 이 지수가 50을 밑돌면 경기수축을 의미한다. 지난달의 54.4에서 급락한 것일 뿐만 아니라 당초 월가 예상치가 53이어서 서비스업 경기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악화하고 있음이 확인돼 뉴욕증시의 충격이 컸다.
사정이 급속히 악화되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고위간부들도 급기야 ‘경기침체 가능성’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재닛 옐런 샌프란스시코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7일 “최근 경기 지표들은 올 상반기까지 성장이 계속 위축될 것을 예고한다”면서 “미국이 침체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앞서 5일 제프리 래커 리치몬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경미한(mild) 경기침체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며 FRB 고위인사로는 처음으로 경기침체 가능성을 공식 언급했다.
금융시장의 새로운 뇌관인 모노라인발 부실도 확대되고 있다. 뉴욕 주정부가 추진하는 모노라인 구제금융 방안은 금융기관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미 최대 모노라인인 MBIA는 6일 7억5,000만달러의 자금을 유치했지만 신용등급 하향 조정에 대한 경고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피치는 MBIA가 보증한 모기지담보부증권(MBS)을 ‘부정적 관찰 대상’에 올려 보증채권 신용등급 하락을 예고했다. 전날에는 무디스가 시큐리티 캐피털 어슈어런스에 대한 신용등급을 강등시켰다. 이미 최고 신용등급(AAA)을 상실한 암박 등 다른 모노라인은 이달 중으로 신용등급이 추가로 하락할 것이라는 분석도 잇따르고 있다. 영국계 바클레이스는 모노라인의 신용등급 강등만으로도 금융기관들이 1,430억달러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