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대응 준비돼 있다"

[중동 정세 불안 심화… 물가 비상]
유가등 원자재값 고공행진에
"성장세 둔화·물가 자극 우려"
FRB, 미묘한 입장변화 시사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인플레이션을 공개적으로 걱정하기 시작했다.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 미국의 양적완화에 따른 이지머니 유입 등으로 신흥국들이 물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을 때도 FRB는 미국 경제에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중동 문제로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다른 원자재 가격도 지속적으로 강세를 유지함에 따라 상황이 바뀌고 있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은 1일(현지시간) 상원금융위원회에 출석, 미리 준비한 서면증언을 통해 FRB는 중동 지역의 정세불안 등으로 글로벌 상품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데 대해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상황전개를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경제회복세를 유지하고 가격안정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원자재 가격 상승이 일시적인 물가상승을 야기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최근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상승은 기껏해야 일시적이고 비교적 완만한 소비자물가 상승을 초래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유가상승이 지속되면 성장세를 약화시키고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우려와 관련, FRB의 팽창적인 통화정책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 최근의 유가상승이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의 정정불안으로 야기된 현상임을 지적하면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한 원자재 수요 확대와 일부 공급제약이 빚어낸 것이라고 진단했다.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배제한 점도 주목된다. 그는 "경기하강 리스크가 줄어들었다"면서 "저성장과 함께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의 위험성은 무시해도 될 정도가 됐다"고 밝혔다. 디플레이션 우려는 FRB의 6,000억달러에 달하는 국채매입에 대한 명분이 됐다. 이날 버냉키의 증언은 FRB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입장에 미묘한 변화가 있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FRB는 그동안 국내외에서 제기되는 인플레이션 우려에도 불구하고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핵심물가를 기준으로 그 가능성을 일축해왔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달 9일 미 하원 예산위원회 청문회에서도 "신흥시장의 인플레이션 상승은 인지하고 있지만 현재 인플레이션 수준이나 앞으로의 전망치가 미국 경제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밝혔다. FRB가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응을 준비하더라도 국채매입 축소 등 기존 정책에 대한 변경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버냉키 의장은 앞으로 몇 달 동안 FRB가 팽창정책을 되감을 수 있을 정도로 현재의 경제회복세가 지속적인지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들어 미국 경제의 회복속도가 가팔라지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면서 시장에서는 2차 양적완화가 종료되는 오는 6월 말 이후 FRB가 어떤 정책을 취할지를 주목해왔다. 월스리트저널(WSJ)은 시장에서는 FRB가 오는 연말께부터 자금회수에 나서고 금리를 '제로' 수준에서 점진적으로 인상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해왔으며 이날 버냉키 의장의 답변은 이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짐 오설리반 엠에프 글로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버냉키 발언의 방점은 상품가격 움직임을 주시하겠지만 그 영향이 일시적일 것이라는 데 있다"며 "갑자기 고삐를 죄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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