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인사 특별인터뷰] 설치작가 서도호

"실력있는 예술가들 해외로 영역 넓혀야"
화랑·비평 역할 유기적 연결등 국내는 인프라 부족해 아쉬워
경방스퀘어에 들어설 '카르마' 철학적 사색 주는 작품이 되길


“실력 있는 작가들이 더 크게 성장할 풍토가 필요합니다. 미술관과 화랑, 컬렉터와 비평, 저널의 역할과 교육 등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런 인프라가 아직 취약합니다.” 서울경제 창간 49주년을 맞아 ‘글로벌 아티스트’인 설치작가 서도호(47ㆍ사진)씨를 그의 성북동 본가 한옥 사랑채에서 만났다. 그는 국내 미술계의 현실과 관련 “국토와 인구의 열세 때문에라도 우리 예술가들은 밖으로 영역을 넓혀야 한다”면서 “동시에 미술이 한국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는 기회로 작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서씨는 서울대 회화과와 예일대 조소과 등지에서 학ㆍ석사를 마친 뒤 2001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로 세계적 입지를 다졌고 뉴욕을 거점으로 미대륙과 유럽, 아시아를 국경 없이 넘나들며 활동 중이다. 지금도 로스엔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에서는 그의 작품이 호기심과 관심을 품은 외국인 관람객들 만나고 있다. 서양식 사고가 밴 듯하지만 그의 예술 ‘진원지’는 바로 이 한옥집이다. 세계를 바람처럼 떠돌아다니지만 튼실한 정신적 뿌리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열살 때 이사온 집은, 부친인 한국화가 서세옥 화백이 창덕궁 내 연경당 사랑채를 모델로 지은 한옥이다. 아버지가 1960년대에 헐린 한옥의 자재를 모아오는 것부터 인간문화재인 도편수가 하얀 한복을 입고 손수 작업하는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그가 옥색 은조사(銀造紗)를 재단해 ‘집 모양’으로 만든 섬유 설치작품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아파트에 한옥집이 날아와 박힌 사실적인 조각으로 서양인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작품의 배경이 됐다. 서씨는 “집은 개인적 공간인 동시에 문화의 결정판이고 옷은 몸을 보호하는 것이되 신체에 대한 해석이자 몸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며 “(내 작품 속) 건축과 옷은 이 같은 동서양의 시선 차이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요즘 그의 관심사 중 하나는 공공미술이다.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 공공미술이며 그 같은 작품이 공공장소의 성격까지 지배한다”라며 그는 “장소를 구성하는 주체는 사람인데 이들을 고려하지 않은 일부 작품들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는 28일 오픈하는 영등포동 경방타임스퀘어에 들어설 그의 작품 ‘카르마’(Karmaㆍ업)가 오가는 시민들에게 어떤 벗이 될지 궁금하다. 사방으로 줄지어 걸어가는 사람들, 앞에 앉은 이의 눈을 가린 채 쭈그리고 앉은 군상. 이들의 긴 줄은 역사를 그려가고 앞 사람의 눈을 가린 손은 사회적 규약과 문화적 관습을 은유한다. 작가는 ‘단 몇 초라도 철학적 생각, 휴식 같은 사색을 제공하는 작품이기를’ 바라고 있다. 한편 비(非)일상적이고 독창적인 문제 해결방식과 그 같은 삶을 결과물로 창출한다는 점에서 일반인들은 예술가들을 동경한다. 이런 점에서 금융위기를 넘기고 있는 동시대인들에게 전하는 조언을 묻자 서씨는 “과정을 아끼라”고 말했다. “작품을 만드는 데 길게는 7년이 걸리기도 했는데, 결과는 내 힘으로 안 된다손 치더라도 과정을 즐기고 만족하면 충분하더라”면서 “벽에 부딪혀 내 능력의 한계를 느끼는 순간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과정에)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서씨는 인터뷰 직후 독일 베를린으로 떠났다.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그에게 1년간의 베를린 현지 아티스트 레지던시 지원이 주어졌기 때문. “뉴욕과는 달리 상업성보다 사색적 분위기가 강하다”는 베를린에서 ‘사색하는 작가’인 그가 철학자가 되어 돌아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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