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라래도 인간이다.
입력 2003.11.24 00:00:00
수정
2003.11.24 00:00:00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으로 우리 곁으로 찾아 왔던, 스튜디오 지브리가 첫 실사영화 `사토라래(Satorare, 의지전파 과잉 증후군) 로 이 겨울, 우리의 문턱을 두드린다. 원래 `사토라래`는 일본의 `모닝 유 매그넘`지에 연재되었던 만화 에피소드 중 하나로, `춤추는 대수사선`의 모토히로 카츠유키 감독의 유쾌한 손길이 느껴진다.
의지전파과잉증후군, 사토라래는 생각하는 모든 것이 사념파로 변환되어, 반경 10m 이내에 있는 사람들에 모두 전달되는 이상현상으로, 1000만명의 1의 확률로 존재하는 이들로, 평균 IQ 180 이상의 천재들로 국가 발전에 혁혁히 이바지하는 바, 일본 정부에 의해 보호, 관리된다.
사토라래의 첫 장면은 마치 존 우감독의 `윈드 토커`와 같은 숲 속의 헬리콥터 신으로 시작한다. 일본 자위대의 군인들이 보이고, 추락한 비행기가 보인다. 군인들은 생존자를 찾고자 하나, 아이의 사고 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이렇게 구출된 유일한 생존자, 3살의 켄이치는 `사토라래`로 파악되어, 인구 3만명 미만의 희망 도시, 할머니의 품에 배정되어 자신이 사토라래라는 것을 모른 채, 평범한 외과의사 청년으로 자란다.
그러나, 정부의 `사토라래 특별 관리 위원회`는 켄이치가 평범한 외과의사로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켄이치가 신약개발위원에서 그 천재성을 발휘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정신과 의사 코마츠 요꼬를 파견, 켄이치를 본래의 사토라래의 자리로 옮기도록 지시한다. 요꼬는 본래의 의도를 숨긴 채, 켄이치에게 접근하지만, 점차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들려오는 그의 마음 속 소리 때문에 전 마을이 당황하고, 잠 못 이루지만, 본인은 정작 `짝사랑`에 전전긍긍하는 목소리 크고, 솔직한 청년 의사이다. 그러나, 정작 모든 부분에서 수석을 할 정도로 뛰어난 인턴임에도 그에겐 수술의 기회가 주어지진 않는다. 추운 겨울 밤, 병이 난 자신을 업고 어두운 벗꽃 아래를 뛰어가던 할머니를 잊지 않고, 훌륭한 의사가 되는 것이 자신이 사는 이유라고 생각하는 켄이치이었기에 더욱 실망한다. 정부의 특사인 요꼬와 켄이치의 갖가지 헤프닝을 통해, 요꼬는 `사토라래`의 이면을 깨닫는다.
이 엉뚱하고 착한 청년, 켄이치는 정부와 병원의 협력 관계 속에서, 정작 할머니의 병명도 모른 채, 파면당한 의사로 `신약개발위원회`로 출발한다. 그러나, 켄이치의 순수와 뜻을 깨달은 요꼬는 정부를 설득한다. “사토라래, 그들도 인간입니다.” 어느새 언제나 켄이치의 주변을 맴돌던 정부요원들마저도 켄이치의 신약개발위원회로 가는 차를 멈춘다. 할머니의 실제 병명을 안 켄이치, 발걸음을 돌려 자신이 할머니를 수술하고자 간청한다.
켄이치의 할머니 수술시간. 마을의 모든 사람들은 그의 생각이 가는 소리를 듣는다. 할머니에 대한 사랑과 후회, 뛰어난 의사로서의 탁월한 수술. 비록 이미 늦어 버린 할머니의 수술이었지만, 어느새 마을 사람들은 그를 의사로서 신뢰하게 된다. `사토라래`에게 수술을 맡길 수 없다던 병원도, 사토라래 특별위원회도 이제야 그를 사토라래가 아닌, 청년 켄이치로 보게 된다. 지금쯤 켄이치는 냇물이 흐르고, 벗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일본의 작은 마을에서 아직도 자신이 사토라레인 것을 모른 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웰컴 투 멕도날드`의 히로인인었던 스즈키 교카의 `요꼬`와 우리 나라 배우, 원빈과 많이 닮았단 소리를 듣던 배우, 안도 마사노부의 `켄이치`는 일본의 작은 마을의 냇가를 배경으로 아주 천천히, 어느새 관객의 눈 앞으로 다가 왔다. 한마디로 재밌고, 유쾌함에서 따뜻한 `사람 사는 맛`까지도 느끼게 하는 그들의 영화는 어느새 일본문화4차 개방을 앞두고, 어느새 우리의 코 앞으로 다가 왔다. 그 내용이 만화이던, TV시리즈물이던, 애니메이션이던 합종연횡의 `컨텐츠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일본의 풍부한 컨텐츠 자원이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두려워 할 필요도, 애써 우리 것을 방어할 필요도 없다. 특히 최근 한국 영화 시장은 팽배해 있는 자만감! 영화 주간지의 어떤 기자는 `일본영화, 한국시장에 죽 쭤`라는 식의 기사를 쓸 정도의 오만함마저도 보여주었다. 우리 관객은 천천히 웃고, 울고, 느낄 것이다. 스쿼린 쿼터로 더 이상 우리의 눈을 가리지 마라! 우리 생각의 소리를 듣는 그들이라면, 충분히 좋은 작품으로 우리의 눈 앞에 다가 올 것이다. 그 작품이 일본산이던, 한국산이던. “ 지금 내 마음의 소리! 이제 들리십니까?”
Mocalie@magic.com
<모칼리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