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긴축 성난 민심 달래자" 유럽 각국 앞다퉈 경기부양

스페인 법인세 5%P 낮추고 佛·이탈리아 세금 감면 단행
ECB 5일 통화정책회의서 수천억유로 규모 부양책 예상


최근 유럽의회 선거에서 긴축정책에 성난 민심으로부터 된서리를 맞은 유럽 각국에 경기부양 바람이 불고 있다. 스페인이 수조원 규모의 부양책을 시행하기로 결정했으며 선거에서 드러난 반(反)긴축 여론으로 유럽중앙은행(ECB)에 대한 추가 부양 압박은 한층 거세졌다.

5월31일(현지시간) 외신들에 따르면 유럽연합(EU) 내 5위 경제국인 스페인은 수조원 규모의 부양책을 준비 중이다. 스페인 내각이 전날 승인한 내용에 따르면 정부는 민간투자 26억7,000만유로를 더해 총 63억유로(약 8조7,450억원)에 달하는 공공·민간 투자 계획을 시행하고 법인세를 현행 30%에서 25%로 5%포인트 낮추기로 했다. 여기에 오는 8월까지 노동규제 완화에 관한 개정법을 내놓는 한편 기업에 대한 세제혜택을 확대하고 자동차 구입 보조금도 늘릴 계획이다.

스페인 경제는 3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겉으로는 굳건한 회복세다. 그러나 저물가 현상이 고착화하면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대비 0.2%에 불과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평균치를 크게 밑돌고 있다. 실업률 역시 유럽 평균의 두 배가 넘는 26% 수준이다.

EU의 또 다른 주요 경제국인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이미 경기부양 카드를 꺼내들었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는 지난달 초 세금 110억유로를 감면하겠다고 발표하고 2020년까지는 현행 33%인 일반 법인세율을 28%까지 낮추고 대기업에 물리는 기타 세금도 폐지해 기업들에 60억유로를 돌려주기로 했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도 취임 19일 만인 올 3월 소득세 100억유로를 감면하고 지방기업 법인세율도 10%포인트 낮추기로 했다.

특히 지난달 25일 끝난 유럽의회 선거를 기점으로 부양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긴축을 통한 재정건전화를 추진해온 각국의 중도 좌·우파 정당이 줄줄이 참패하고 극우·극좌 정당이 대거 득세한 탓이다. 이에 따라 ECB의 추가 부양에 대한 압박이 거세질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유럽의회가 ECB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ECB 지도부가 여론의 향배를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이미 6월5일 열리는 ECB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현 0.25%), 예치금리(0.0%), 한계대출금리(0.75%) 등 정책금리가 일제히 0.1~0.15%포인트 인하되고 중소기업을 위한 저금리장기대출(LRTO)이 실시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ECB가 영국중앙은행(BOE)과 협력해 지난달 31일 자산유동화증권(ABS) 시장 부활을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침체된 ABS 시장을 되살려 중소기업 대출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EU 차원의 경기부양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피에르 카를로 파도안 이탈리아 경제장관은 EU 회원국이 자금을 대 설립한 유럽투자은행(EIB)의 역내 투자규모를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탈리아는 순회 EU 의장국을 맡는 7월에 이 방안을 적극 밀어붙일 것으로 유로권 언론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 밖에도 그간 EU 회원국 가운데 비교적 탄탄한 경제를 자랑해온 북유럽 국가마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유럽 각국의 부양 기조는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2년 이후 침체 논란에 시달리는 핀란드는 내년까지도 불안감이 해소되지 못할 것으로 우려되며 네덜란드는 부동산 시장 침체의 여파로 소비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유럽의 실질적 지도국이자 긴축을 주도해온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성장과 일자리 창출이 유권자의 마음을 사는 최고의 수단"이라며 경기부양으로 돌아설 뜻을 내비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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