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러시아의 등급이 투기 수준으로 강등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S&P는 앞서 러시아의 등급을 투자 수준으로는 가장 낮은 BBB 마이너스로 유지하면서 대외 채무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신용 전망은 부정적이라고 밝혀 등급 강등 가능성을 예고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에 의하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채 비율은 지난 6월 현재 순기준으로 35%이다. S&P의 크리스티안 에스터스 애널리스트는 지난 25일(이하 현지시간) 모스크바 회견에서 러시아가 저유가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국부펀드에서 돈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을 부각하면서 이같이 경고했다. 러시아는 저유가 때문에 기금이 820억 달러로 3년 전보다 13% 이상 줄어든 ‘국가웰빙펀드’에서 약 20%인 160억 달러를 꺼내 유가와 제재 충격으로 허덕이는 거대 국영기업들을 지원하기로 했다.
당국에 긴급 지원을 요청한 기업에는 석유회사 OAO 로즈네프트와 OAO 국영철도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몇백 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SOS를 친 상태다. 애스터스는 “펀드 자금이 이런 식으로 쓰이는 것은 러시아의 재정 운용과 관련해 우리가 예상했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가웰빙펀드는 애초 연금 지원 등 장기적인 사회적 지출을 뒷받침하기 위한 목적으로 석유 수입을 갹출해 조성됐다.
S&P는 유가가 배럴당 평균 90달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산정해 러시아가 올해 0.3%, 내년에는 0.6% 성장할 것으로 앞서 전망했다. 그러나 유가는 북해 브렌트유 기준으로 현재 78달러대로 폭락했다. 러시아의 GDP는 지난 3분기 연율로 0.7% 늘어나 2009년 침체 이후 최소 폭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중앙은행이 유가 충격 등으로 말미암은 루블화 가치 폭락을 저지하기 위해 올해 들어 보유 외환 가운데 약 900억 달러를 투입했으나 소기의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달러에 대한 루블화 가치는 이미 30%가량 하락했다. 루블화는 26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절충 불발설이 퍼지면서 이틀째 하락했다. 루블은 달러에 대해 이날 정오 무렵 달러당 46.81로 1.2% 하락했다. 유로에 대해서도 유로당 58.29로 1.3% 하락했다. 크레디트스위스의 드미트리 디브 환 딜러는 “OPEC의 감산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관측이 루블화 약세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