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퍼라면 누구나 한번쯤 잊을 수 없는 라운드를 경험했을 것이다. 40대 초반 늦게 골프를 시작해 이제 7, 8년 정도의 구력인 나 자신도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종종 겪었고 기억에 남는 동반자를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이 만났다. 하지만 숫제 생업을 골프 관련 분야로 바꾸게 만들었던 라운드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되고 있다.
`초보 골퍼` 시절 이맘 때인 3월 초 어느 주말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연습장에서 땀을 흘리면서 가물에 콩 나듯 필드에 나가곤 했던 나는 한 선배와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인천 근교의 골프장엘 가게 됐다.
파티라도 가듯 나름대로 최대한 멋을 내고 얼굴에 선크림도 잔뜩 발라 외모만큼은 `고수` 수준으로 꾸몄다. 드라이버를 세워 들고 공략 지점을 노려본 뒤 `붕붕` 소리를 내면서 연습 스윙을 한 다음 어드레스를 취했다. `그립은 가볍게 쥐고 다리는 어깨 넓이만큼 벌리고…….` 배웠던 내용을 하나 둘 점검하면서 백스윙을 했다가 온 힘을 다해 휘둘렀다. 그런데 기대했던 “굿 샷” 소리는커녕 볼 맞는 소리도 안 들렸다. 그 정도면 괜찮았겠지만 스윙을 하면서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그만 몸이 공중에서 360도 회전을 하면서 그대로 티박스 위에 철퍼덕 누워버리고 만 것이었다. 동반자들은 파안대소했고 캐디 아가씨는 웃음을 참느라 애를 쓰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평소 승부욕이 남다른 나는 집에 돌아와 밤잠을 설치며 그날의 치욕을 분석했고 결국 초보 골퍼들에게 도움이 되는 신발을 개발해보자고 결심하게 됐다. 하던 사업을 뒷전으로 한 채 7년여의 연구와 시행착오를 거쳐 올해 밑창이 안정된 어드레스를 잡아주도록 설계된 기능성 골프화를 만들어내는데 이르렀다.
어릴 적 쓰던 지우개 달린 연필도 아주 단순하지만 발상 전환에서 탄생한 것처럼 골프에서도 경험을 통해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골프뿐 아니라 매사를 관심 있게 관찰할 때 인간 생활을 편리하게 개선할 수 있는 길이 보이는 것 아닐까.
<이연선기자 bluedash@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