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파워 코리아를 향해]<4>기업, 소프트경영에 눈 돌려라

창조경영으로 고객 감성 파고들어야


컴퓨터 회사인 애플은 지난 2001년 말 신개념의 MP3플레이어인 ‘아이팟’을 출시, 미디어기기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기존에는 기기의 성능 향상이 중심이었는데 애플은 고객이 얼마나 쉽게 음악을 이용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춘 것. 즉 휴대 음악기기의 하드웨어 비즈니스를 콘텐츠 기반의 음악서비스(iTunes)와 세련된 디자인 조합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탄생시켰다. 이는 비용절감이나 독자적 기술개발을 통해 제품혁신을 달성하고 고객가치를 제고했던 과거의 경영혁신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방식이다. 경영혁신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품질혁신ㆍ원가절감 등 효율성이 주였지만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이 대두되고 기술이 범용화되며 소비자의 요구가 까다로워지면서 단순한 제품 품질보다 새로운 고객가치를 창조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는 오늘날 하드웨어 경영시대가 저물고 소프트웨어 경영시대가 본격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 기업들도 제품과 기능 중심의 경영환경에서 적용했던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여 경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창조경영ㆍ아이디어경영ㆍ감성경영 등 대표적인 소프트경영이 새롭게 주목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잭 웰치’ 경영방식을 버려라=과거 경영혁신의 초점은 누가 빨리 실행하느냐에 맞춰졌지만 지금은 누가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방향을 설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경영혁신의 초점이 ‘실행’에서 ‘창조’로 바뀐 것이다. 이는 미국의 대표기업인 GE의 변화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GE의 CEO였던 잭 웰치는 2000년 말 CEO 자리를 물려주면서 3명의 후보자 가운데 경영성과가 가장 우수한 ‘리틀 잭’이라고 불리던 봅 나달리 GE 발전설비 부문장을 제치고 오히려 사업성과가 덜한 제프리 이멜트 GE 의료기기 부문장을 후계자로 선택했다. 이유는 웰치가 경영혁신의 패러다임이 ‘창조’로 전환되는 시대적 흐름을 읽었기 때문이다. 나달리의 성과는 주로 효율성을 개선하거나 제품 판매를 극대화한 데 반해 이멜트는 창의적인 사고로 기존의 사업구조를 바꾸는 데 뛰어난 역량을 보였다. 성과의 질적인 측면에서 이멜트의 창조적 경영이 더 높이 평가받은 것이다. 그동안 잭 웰치의 경영방식은 한국기업에 모범답안이었다. 국내기업들은 선두기업이 아닌 사업은 구조조정하고, 거대화된 조직을 슬림화하고, 제품력을 향상시키고 원가를 절감시키는 방식을 IMF 이후 10년간 따라 했다. 그러나 경영환경이 달라지면서 잭 웰치식 방식은 한계에 봉착했다. 기술 속도가 빨라져 제품 성능은 소비자가 원하는 수준을 넘어섰고 기술도 범용화되면서 후발기업과의 격차도 빠르게 좁혀졌다. 제품의 제조 경쟁력만으로 이기기 어려워졌고 마케팅ㆍ디자인ㆍ창의성 등 소프트한 측면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실제로 GE는 이멜트 취임 이후 의료장비에서 컨설팅과 대여 금융 서비스의 의료종합 솔루션 그룹으로 변모하는 한편 창의력으로 무장한 조직으로 탈바꿈하면서 5위권으로 추락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순위 1위를 탈환했다. 이병주 LG경제연구원의 선임연구원은 “과거 실행 중심의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업들이 서서히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경영활동 전반에서 창조 중심의 경영혁신을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디어 경제 시대 온다=요즘 인터넷과 통신기술 확산 등으로 정보와 지식의 빠른 범용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보와 지식 대신 아이디어가 새로운 경쟁 우위 요소이자 부 창출의 원천으로 부상하는 아이디어 경제 시대가 열리고 있다. 기업 부문이 대표적이다. 전통적인 생산요소인 노동ㆍ자본ㆍ기술ㆍ정보의 독점적 소유에 따른 경쟁 우위는 점차 힘을 잃고 있다. 글로벌화와 정보화로 보다 저렴한 해외의 생산요소를 활용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 외부의 생산요소들을 효과적으로 결합하는 아이디어 기반형 경쟁 우위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아이디어가 신시장을 창출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단적인 예가 교토의정서 체결 이후 유럽에서 빠르게 확대 중인 탄소배출권 시장이다. 기업별로 온실가스 의무감축량을 할당해 감축 목표를 초과 달성한 기업은 초과분을 배출권 형태로 팔고 달성하지 못한 기업은 배출권을 살 수 있다. 이는 발상의 전환 덕분이다.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정책 목표를 탄소세 부과 등 전통적 규제 대신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해 자발적 감축 유도와 새로운 유망 시장을 창출한 것이다. 앞으로 아이디어는 국가경쟁력까지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전망이다. 성장잠재력이 둔화되고 있는 우리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한국 산업의 역동성을 유지하려면 고성장의 신산업 육성이 필요하다. 나노, 바이오, 신규 IT 서비스, 환경ㆍ에너지 분야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는 수요처 개발을 지원하고 수요를 자극하는 창의적인 정책 아이디어가 필수적이다. 아이디어는 한ㆍ중ㆍ일 역학관계에서도 중요한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일본은 기술경쟁력, 중국은 제조경쟁력을 내세울 때 한국은 아이디어를 강화해 차별화할 수 있다. 기술의 상업화 단계에서 적극적인 수요처 및 응용방식 개발, 비즈니스 모델의 선점, 신속한 산업화 로드맵 구축 및 실행 등 아이디어로 승부해 성장 시장을 장악하자는 것이다. ◇고객의 감성을 파고들어라=지난해 개봉한 로봇영화 ‘트랜스포머’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 로봇 만화를 보고 자라난 30~40대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남자의 로망’이라는 미묘한 코드를 잡아내 이에 호소했기 때문이다. 기능ㆍ성능 대신 새로운 감성 가치를 창조하거나 차세대 기술ㆍ제품의 추구 대신 새로운 제품 콘셉트를 창조하는 감성경영이 뜨고 있다. 즉 사회와 소비자들의 시대적 변화 속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소비자의 감성적 니즈를 기회로 포착하고 그에 맞는 콘셉트의 제품을 구현해내거나 고객에게 가격과 품질 이상의 무엇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심리적ㆍ감성적ㆍ무형적 가치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차별화와 경쟁의 틀은 감성적 가치와 새로운 제품ㆍ서비스 콘셉트 중심으로 고도화되고, 이런 과정에서 고객과의 감성적 교감과 시대를 앞서는 콘셉트 창조는 핵심적인 시장 성공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마켓 셰어보다는 마인드 셰어의 확대가, 기술적 혁신보다는 브랜드의 정체성 강화가 기업의 경쟁력을 판가름하는 주요한 지표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기업들은 고객에게 디자인ㆍ꿈ㆍ스토리 등 감성적 가치를 줘야 한다. 일본의 유명한 디자인 가전브랜드인 아마다나가 디자인 강화와 함께 스토리가 가미된 코믹한 제품설명서를 통해 재미와 즐거움이라는 감성적 경험을 제공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애플 역시 고객의 감성적 가치를 높여주는 제품 디자인 혁신에 매진해 제품을 사기 위해 밤새워 줄을 서는 충성도 높은 고객들을 확보했다. 소비자들은 감성적으로 애플이라는 기업과 그들의 제품에 끌리고 열광하는 것이다. Ben&Jerry 아이스크림 회사가 이익의 일부를 글로벌 빈곤계층 타파에 사용하고 있다는 스토리에 고객은 감동하고 제품을 구매하고 가치를 느낀다. 결국 전통적 기업들의 기술혁신 우위가 감성과 콘셉트 혁신의 우위에 점차 무력화될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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