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아전인수'식 한미 FTA 여론몰이

일반 국민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논란을 명쾌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찬성 측이나 반대 측이나 이슈에 따라 '자기 논에 물대기'식 여론몰이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 통상전문지가 지난주 말 "한미 FTA 발효 시기를 미 측은 내년 2월 중순으로 우리 정부 목표(내년 1월1일)보다 한달 이상 늦춰 잡고 있다"고 보도하자 나타나는 국내 반응도 마찬가지다. 일부에서는 "그렇게 서두르더니 발효 목표 시기도 못 맞추느냐"고 타박하거나 "정부가 내년 총선을 의식해 조기 발효를 추진했다가 미국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게 꼬여 있지도 멀리 있지도 않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달 29일 본지와 단독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한미 FTA 발효가 한 달 가량 늦어질 수 있다"고 이미 밝혔다. 내년 1월 한미 FTA 발효가 정부의 지상과제였다면 이런 발언을 했을 리 없다. 정부나 미 행정부 모두 연휴가 낀 연말연시를 고려해 양국이 협정 이행사항을 점검ㆍ검증하려면 '시간이 더 걸린다'는 현실론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협상 타결 후 격렬한 정치적 논란 속에 비준까지 4년이 더 걸린 FTA가 고작 1~2달로 또 예상하지 않은 문제에 직면해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도 깔려있다. 명확하고 단순한 해명도 민심을 선동하는 자극적 주장이 앞서면 먹히지 않는다. 김 본부장이 FTA에 따른 정국 대치를 타개하기 위해 "날 밟고 가도 좋다"고 하자 한 유명 영화감독은 "밟아줄 테니 시간과 장소를 알려달라"고 대꾸했다. 반대 측에는 통쾌한 일갈이었을지 모르지만 씁쓸하기 그지 없다. 어쨌든 참여정부부터 현 정부까지 최대 국정과제인 한미 FTA를 마무리한 1등 공신이 공을 다투지 않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침을 뱉고 거기에 호응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진영이 갈렸다고 시시비비가 함께 묻혀서는 곤란하다. 한미 FTA를 둘러싼 논란은 외눈박이가 아닌 두 눈으로, 찬성과 반대가 각각 '피해'와 '이익'을 응시하며 성숙하게 나아간다면 우리 경제와 사회 발전에 또 다른 기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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