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건강보험 재정이 1조2,994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드러나 건보재정개선대책이 발등의 불이 됐다. 남은 적립금은 9,562억원에 불과해 2주 정도면 바닥이 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000년 지역과 직장의보 통합으로 직장의보 적립금이 소진된 후 맞은 최악의 위기다. 정부는 의료기관 재정립을 통해 경증환자의 대형병원 진료 억제, 보험료 징수 독려 등으로 올해는 적자규모를 5,100억원 정도로 줄일 계획이지만 이 같은 건보재정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건보재정 악화의 근본 원인은 보험료 수입이 연평균 11% 정도 늘어나는 데 비해 진료비는 13%씩이나 증가한다는 것.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동안 국고지원과 담배건강증진기금을 투입해 적자급증을 막아왔다. 그러나 급속한 고령화와 함께 이 같은 땜질처방이 한계를 맞고 있다. 인구의 10%에 달하는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진료비는 전체의 3분의1을 넘어설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평균수명 100세'까지 예상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진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이 같은 환경변화에 걸맞게 건보체계를 뜯어고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년간 적자구조가 계속됐는데도 정부가 한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의료 포퓰리즘'을 통해 문제를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자는 대형병원으로 몰리고 병원은 고가장비를 경쟁적으로 도입해 검사비 등으로 건보재정을 압박했다. 대형병원과 동네의원의 약값 본인부담(30%) 등이 같아 대학병원 등을 매일 순례하는 '병원중독환자'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병원과 약국은 진료와 처방 등의 행위마다 돈을 청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보니 건보재정이 줄줄 새는 것이다.
건보재정 적자 해결을 위해서는 우선 과도한 지출을 과감하게 줄여야 한다. 특히 과다 의료소비, 과당 진료 및 진료비 청구, 고가장비 도입 통제 등을 통해 지출을 줄여야 한다. 동네의원 이용자에게 진료비 등의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것도 의료서비스 과소비를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앞으로 가속화될 노령화 추세에 맞춰 건보제도 자체의 대수술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시기를 놓치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