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8홀 라운드에 보통 5~6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대표적인 늑장 골퍼인 셈이다. 과거에도 슬로 플레이로 악명 높던 그는 최근 하와이 겨울휴가 때도 6시간을 찍었다. 뉴욕타임스는 "대부분의 골프 코스는 4시간30분이면 마칠 수 있게 설계돼 있다"며 "6시간은 해도 너무하다"고 꼬집었다. 그렇게 꼼꼼하게 치고도 오바마의 평균 스코어는 90대 중반이다.
골프에 있어 최대의 적은 해저드도, 아웃오브바운스(OB)도 아닌 슬로 플레이라는 말이 있다. 연습 스윙 두세 번은 기본이고 왜글(클럽 헤드를 앞뒤로 흔드는 준비동작)을 반복하는 슬로 플레이는 동반자들에게 예의가 아니다. 뒤 조와의 시비를 넘어 끔찍한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골프 입문자들을 질리게 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슬로 플레이와 대척점에 있는 '스피드 골프'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1974년 시작돼 1990년대 말 '반짝' 인기를 끌었던 스피드 골프는 지난해 상금 5만달러가 걸린 '스피드 골프 월드챔피언십'이 생기고 대회가 온라인으로 중계되면서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슬로 플레이에 대한 반감이 스피드 골프의 인기로 이어진 것이라는 의견도 설득력이 있다.
18홀을 50분 안에 끝낸다는 스피드 골퍼들의 얘기를 들으면 오바마의 플레이 시간은 조금 단축되지 않을까. 대통령도 아니면서 '세월아 네월아'인 주말골퍼들은 더더욱 가슴 뜨끔할 일이다. 지난해 10월 25명이 출전한 월드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롭 호건(아일랜드)은 39분31초 만에 18홀을 마치고 77타를 기록했다.
서울경제골프매거진은 2월호에서 슬로 플레이로 인한 골프의 위기에 대해 스피드 골프를 대안으로 소개했다. 룰은 단순하다. 미국에는 '스피드 골프 인터내셔널'이라는 단체도 있는데 이 단체에 따르면 작은 골프백에 최대 7개의 클럽만 허용되며 골프화 대신 러닝화를 신는 게 좋다. 카트 등 이동수단과 캐디 동반도 일절 금지. 퍼트 때도 깃대를 뽑지 않으며 OB는 1벌타다. 전부 시간 단축을 위해 마련된 룰이다. 스피드 골프는 타수 계산도 특이하다. 타수에 걸린 시간을 더한다. 60분 만에 80타를 쳤다면 스피드 골프 스코어(SGS)는 140이다. 뛰어도 모자란 스피드 골프에서 연습 스윙과 왜글 반복은 남의 나라 얘기다.
이렇다 보니 스피드 골프 마니아들 중에는 전 육상 국가대표도, 특공대 출신도 있다. 8㎞의 코스를 헉헉대며 뛰어다니는 이들을 보면 골프는 스포츠도 아니라는 말은 쏙 들어갈 것 같다.
전력질주 뒤 정확한 샷이 어떻게 가능할까. 미국 골프매거진이 뽑은 100대 교습가 중 한 명인 크리스토퍼 스미스는 "빠른 플레이는 머리를 어지럽히는 잡념을 없애주고 현명한 직관을 일깨우며 가장 중요한 순간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망설임을 해결해준다"고 말했다. 전속력으로 뛰었더라도 공 앞에서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라앉히면 샷이나 퍼트에 전혀 방해되지 않는다는 게 스미스의 주장이다. "사람들은 반복된 연습 스윙 등의 일반적인 습관들이 더 좋은 플레이를 돕는다고 생각하나 봐요. 하지만 정반대예요. 생산성을 떨어뜨릴 뿐입니다."